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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아브 Dec 14. 2022

화합물의 연애, 혼합물의 연애

1+1은 1이 아니라 2다

기초 화학을 배운 분들이라면 혼합물과 화합물을 기억하실 것이다.

화합물은 서로 다른 두 물질이 섞여 화학반응을 통해 새로운 성질의 물질로 탄생하는 것이다. 반면 혼합물은, 서로 다른 두 물질이 각자의 특성을 유지하며 그저 함께하는 것이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오빠랑 오래 만나?"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도 연애 2-3년 차 까지다. 이 시기를 지나 4년, 5년, 그리고 우리처럼 7~8년이 넘어가면 친구들도 더 이상 우리 커플이 잘 만나고 있는지 혹은 어떻게 이렇게까지 오래 연애할 수 있는지를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왜냐? 묻지 않아도, 궁금해하지 않아도 너무 당연히 잘 만나고 있는 이상적인 커플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만나 놀 때 남자 친구 자랑을 듣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 생각엔 질투보다도, 무엇보다 자극 없이 아름답기만 한 이야기는 재미가 없어서인 것 같다. 나처럼 오래 연애를 한 사람은 더욱 이 긴 관계를 끝맺을 만한 큰 불화의 에피소드가 있는 게 아니라면, 모임에 나가 남자 친구 관련해서는 할 이야기가 없는 게 사실이다. 실제 지인들은 더 이상 내게 장수 연애의 비결을 묻지 않으니 브런치의 불특정 다수 독자님들께 내 비법을 풀고 싶다. 이거 진짜 중요한 이야기인데, 아는 만큼 행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혹시 가수이자 프로듀서 박진영(JYP)이 예전에 쓴 책, <미안해>를 아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지금 찾아보니 출간이 2008년이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우연히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책 속 어느 한 구절이 성인이 된 나의 연애 가치관을 단단히 정립할 수 있게 도와준 길라잡이가 되었다. 정확한 워딩은 아니겠지만, 내용은 이러하다.



사람이 배가 너무 고플 때는 맛없는 것도 맛있게 느껴진다. 사랑과 연애도 마찬가지다. 너무 외로울 때는 판단이 흐려져 좋은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나 혼자도 잘할 수 있고 충분히 행복할 때 건강한 연애를 할 수 있다.



이전 글에서도 밝혔듯 지금의 남편을 만날 당시 이전 연애를 끝낸 지 1년쯤 되던 때였다. 이전 연애가 고통이었기에, 해방감에 취한 그 1년의 솔로 기간 동안 나는 정말 오롯이 나로서 행복했고, 나로서 자유로웠다. 연애는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들어오는 소개팅도 모두 거절했다. 크고 작은 인생의 모든 결정권이 오로지 나에게만 귀속된 솔로의 삶이 너무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러다 지금의 남편을 자연스러운 계기로 만날 시점의 나에게 남자 친구란 '있어도 되고 없어도 괜찮은 존재' 쯤으로 규정되었고 바로 그 시점에 그와의 교제가 시작됐다.


바로 이, '있어도 되고 없어도 괜찮은 존재'로 남자 친구를 인식하던 시기가 내게 가장 연애를 시작하기 좋은 적기였다. 연애에 갈급한 상황이 아니었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상대를 알아볼 수 있었으며, 가끔 찾아오는 그와의 다툼에도 내 정신 건강이나 일상이 흔들리는 불안함은 없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솔직한 내 모습을 그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관계가 깊어질수록 내 인생에 그가 스며드는 비중이 커져 '우리'로써 정의되는 화합물 단계에 접어들게 되었지만, 매우 독립적인 성향의 그와 나는 꽤 오랜 기간, 거의 2년가량 혼합물 단계로 보낸 것 같다. 나는 혼합물과 같은 연애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우리가 있기까지 단단한 주춧돌이 되어준 시기가 바로 이 혼합물 시기였다. 서로가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인지 찬찬히 탐구하고 받아들이기 전 성급하게 1+1이 1이 되는 화합물 단계로 뛰어들었다면 지금의 우리처럼 건강한 관계를 이룰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주변에, 연애 시작부터 떨어질 수 없는 한 쌍인 것처럼 섣불리 스스로를 상대의 반쪽이라 여기는 친구들이 종종 있다. 사랑하는 이를 찾은 행복함이 뚝뚝 묻어나는 그런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모습 말고, 관계 시작부터 상대와 섞여 내 특성을 바꾸고 화합물이 되려 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상대에게 맞춰줄 수 있는 유연한 성격인 것은 좋지만, 연인 관계에서 서로에게 맞춘다는 것은 우선 너와 나의 독립적 특성이 어떤지부터 파악하고 그 사이 어느 높이에서 마주할 수 있는지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많은 분들이 충분한 혼합물 단계를 거치고 나를 잃지 않으면서 건강한 관계를 맺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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