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게 뭐 어때요
"OO 씨, 어떻게 아직도 학생 만나? 대단해"
"OO 씨, 다른 사람에 대한 마음의 문도 열어는 놔ㅋㅋ"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친해진 직장 선배들에게 종종 들었던 말이다.
한 가지 먼저 짚고 넘어갈 부분은 직장인이 학생과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는 것과, 둘 다 학생 때 만나 연애하다 한 명이 먼저 직장인이 되어서도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 이 두 가지는 다른 것 같다. 나는 후자의 케이스지만, 모르긴 몰라도 전자가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입사한 나는 우리 본부에서 가장 막내였고, 풋내기 대학생 티를 다 못 벗은 단발머리 신입사원은 단연 어딜 가나 회사 안에서 눈에 띄는 존재였던 것 같다. 젊은 조직인 우리 회사는 퇴근 후 어울려 노는 모임이 많았는데, 입사 후 첫 1년 나도 여기저기 많이 껴서 직장 동료들과 시간을 보내고 친분을 쌓았다.
한잔 두 잔 술을 기울이며 사담을 나누다 보니 연애 이야기도 하게 되었는데, 당시 나의 남자 친구(지금의 남편)는 대학 졸업반에 석사과정 입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나도 얼마 전까지 대학생 신분이다가 회사원이 된 것이기에 직장인에게 학생을 만난다는 것이 어떻게 다가올지 전혀 생각을 못하고 선배들의 물음에 그저 솔직하게 지금 남자 친구는 학생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반응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OO 씨, 우리 회사에 괜찮은 남자들 진짜 많은데 헤어지고 사내연애 노려봐~"
"현실적으로 직장인이 학생 만나기 힘들지."
"OO 씨 제가 소개팅 해줄까요? 굳이 헤어지지 말고 그냥 밥이나 한 끼 가볍게 먹어봐요!"
"언제 졸업하고 취업한대?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겠어? 진짜 대단한 거 같아~"
전부 나를 생각해주는 뉘앙스의 반응들이었지만 어리고 순수한(?) 당시의 나는 어떻게 나에게 이런 말들을 할 수 있는지 이해도 되지 않고 조금은 화도 났다. 멀쩡히 잘 만나고 있는 내 남자 친구가 학생 신분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마치 내가 연애에 있어 시간낭비를 하고 있다는 듯한 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걱정 어린 말들을 웃어넘기며 속으로 늘 생각했다. 사내의 이미 갖출 것 다 갖춘 결혼 적령기의 수많은 남자 직원들보다 나는 지금의 남자 친구가 가장 반짝반짝 빛난다고.
어쨌든 결과적으로 내가 오랜 기간 재직하는 동안 석사를 거쳐 박사과정까지 진행 중인 현 남편, 생각해보면 우리의 지난 8년간 남편은 쭉 학생이었는데..
내가 학생과 쭉 연애할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첫째는 물질적인 부분에서의 갈등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회사에 다니면서 나는 돈을 벌기 시작했지만 남편은 가끔 알바를 하고 주로는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 썼는데,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나 나나 씀씀이가 비슷해서 내가 돈 없는 학생을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크게 없었던 점도 우리 관계를 쭉 유지하게 하는 데 큰 일조를 한 것 같다. 연애 기간 중 학생인 남편에게 명품 선물 같은 건 딱히 받아본 적 없지만, 내가 그런 것을 크게 기대하거나 원하지 않는 스타일이기도 했다.
둘째로는 남편과 나는 언제나 가치관이 맞았는데, 가장 큰 방향성은 바로 현재의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기보다는 조금 불안정해도 미래에 투자하고 계속 새로운 도전을 하고자 하는 점이었다. 이런 성향의 나에게는 지금 당장 결혼 준비가 되고 갖출 만큼 갖춘 그 어느 사람보다 미래가 정해지지 않은 지금의 남편이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왜인지 나는 계획과 예측이 가능한 삶은 아직 그리 원하지 않았다. 항상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고 서로 자극을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원했고, 지금은 공부하고 있지만 이게 끝나면 나중에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모르는 열린 결말의(?) 남편이 나의 뮤즈였다. 반복되는 회사일에 지칠 때 남편을 만나 데이트를 하면 새로운 영감이 마구 샘솟았고 다시 월요일을 맞이할 힘이 마구 솟았다.
남편의 눈은 회사에서 만난 그 어떤 남자들의 눈보다 순수했다. 돈을 벌지 않는다고 야망이 없는 게 아니었다. 그의 앞날이 너무 기대되고 항상 함께하고 싶었다. 직장 선배님들은 결혼 준비가 된 남자와 연애하라고 조언하셨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아직도 학생인 남자와 결혼해서 일상을 꾸려가고 있다. 후회는 없다.
사실 학생을 만나고 있다고 했을 때 직장에서의 걱정 어린 시선은 처음 1-2년 정도면 끝이라, 나도 그것에 많이 시달린 편은 아니다. 하지만 번듯한 직장인이 미래가 불투명한 학생과 연애하고 있다고 하면 한 번씩은 들어보셨을 법한 걱정들인 것 같아 이번 글을 쓰게 되었다.
사람 성향 따라 다르겠지만 독자님이 나와 비슷한 성격이시라면, 혹은 아직 학생인 연인을 조금 더 지켜봐 줄 물질적 심적 여유가 있는 상황이시라면 주변에 너무 휘둘리시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