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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아브 Dec 16. 2022

결혼식 시작부터 춤출 뻔한 썰

신부의 데뷔 무대

때는 지난 5월, 

하마터면 시작부터 신부가 춤을 추는 진귀한 광경의 결혼식이 될 뻔한 그날.




갑작스러운 박사과정 합격 발표로 3개월 만에 속전속결로 결혼 준비를 마치고 그는 바로 미국으로 떠났고, 그때부터 약 9개월 정도 떨어져 지내다가 결혼식을 위해 남편이 한국에 들어왔다.


롱디 기간 동안 보고 싶기도 했지만 사실 나는 서프라이즈로 결혼식 당일에 친한 친구들과 댄스타임을 계획하고 있었기에 그 점에서는 오히려 남편과 떨어져 있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시차 때문에 연락도 어려웠고 친구들과 춤 연습하러 만날 때에도 그냥 잠깐 친구 만나서 밥 먹으러 나왔어~ 해 버리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친한 친구들과 에이핑크의 <미스터 츄> 안무를 연습하면서 그 나름대로 친구들과의 추억도 되고 다 함께 결혼식 날 놀랄 남자 친구의 표정을 상상하면서 깔깔거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결혼식이 2주 앞으로 다가올 시점부터 실감이 나면서 너무 떨리기 시작했다. 사실 결혼식 자체 때문에 떨렸다기보다는 몰래 춤을 준비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어야 하는 점과 당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약간의 걱정이 더해져 그랬다. 진짜로 결혼식 자체는 1도 안 떨렸음.ㅋㅋ 솔직히 말하면 나와 친구들에게 점점 '나의 결혼'이라는 이벤트는 흐릿해지면서 매번 외친 구호는..


우리 데뷔 무대 잘 치르자. (비장)



결혼식 당일이 되었다. 남자 친구도 나도 초대한 하객이 많아 신랑 신부 입장 직전까지 나는 대기실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시간이 지나 드디어 신부 입장 하기 약 5분 전이 되어 대기실 문을 닫고 드레스샵 이모님과 담소를 나누며 긴장을 풀고 있는데, 예식장 스텝 분이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신부님, 저.. 지금 주례 선생님이 아직도 도착을 안 하셨다고 해서 사회자님이 성혼 선언을 해 주시고 그다음에 주례사를 진행해야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 그래요?"


사실 나는 식순을 외우지도 못했고 그냥 다들 전문가 선생님들이시니 잘 진행해 주시겠지, 하는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오늘을 맞이했기 때문에 사회자가 성혼 선언을 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크게 당황하거나 스트레스받지도 않았다. 그냥 어쩔 수 없지 뭐, 하고 넘기고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데 다시 들어오신 스텝분.


"저 신부님, 죄송한데 주례 선생님께 연락해 보니 차가 많이 밀려 30분 이상 늦으실 것 같다고 하셔서, 사회자가 성혼선언 해주신 뒤에 바로 축가랑 신부님 공연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친구분들께 미리 말씀드려 놓았어요"

"네..? (동공 지진)" 


주례 다음 축가, 그리고 축가 중간에 MR이 바뀌면서 친구들이 등장해 축무를 시작하고 내가 중간에 끼어 들어가 같이 춤을 추는 흐름이었는데 춤을 먼저 추고 주례사를 들어야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심장이 쿵쾅거리면서 마구마구 떨리기 시작했지만 내 앞의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기로 하고 아빠와 함께 신부 입장을 대기했다..


이때의 마음이 아직도 생각남.ㅋㅋ



우리가 춤을 준비한 건 엄마 아빠도 모르시고, 정말 우리끼리만 알고 있었기에 더 떨렸다. 신부 입장하는 버진로드에서 친구들과 아이컨택을 했다. 무언의 눈빛 속에서 우리 잘 해내자는 응원과 격려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예상보다 일찍 깜짝 공연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심장이 왈칵왈칵 요동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춤출 생각에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사회자의 말들이 지나가고, 갑자기 스텝분이 사회자에게 달려오시더니 귓속말로 무슨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 너무나 다행히도 주례 선생님이 도착하셨다. (전날 늦게까지 술을 드셨다는 주례 선생님....^^)




- 주례사가 있겠습니다.


".. 아이고 네, 늦어서 죄송합니다. 저는 OOO입니다. 오늘 이렇게 뜻깊은 자리에~ (중략)"


내 심장을 들었다 놨다 하신 주례 선생님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너무 좋은 말씀 해주셔서 차분한 마음으로 귀담아 들었는데, 중반부터는 이다음 축가를 거쳐 춤을 춰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아주 혼란스러웠다. 중간에는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긴장을 심하게 해서 약간 혼절할 것 같은 느낌도 들었음...ㅋㅋ


결혼한다는 사실보다 더 떨렸던 나의 데뷔 무대(?)를 확 앞당겨 치를 뻔한, 근래 들어 가장 심장이 철렁했던 이벤트. 결혼식 이모저모가 속속들이 기억나진 않지만 이 기억 하나만큼은 평생 가져갈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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