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혈병 걸린 엄마를 돌보는 철부지 딸의 육모 일기 -
“시신 기증을 하겠다고? 아니, 왜?”
“죽어서라도 좋은 일 하려고.”
“이미 많이 했는데 뭘 죽어서까지 해?”
“엄만 죄가 많아. 너한테도 미안하고.”
“나한테 미안하면 하지 마. 그거 자식한테 못할 짓이래.”
“왜?”
“죽어서 편히 쉬지도 못하고 실험용으로 쓰이는데 자식 맘이 편하겠어?”
“엄마 맘은 편할 거 같은데.”
“하여간 엄마는 끝까지 이기적이지.”
평소에도 엄마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 꽤나 의연하고 주체적이셨다.
엄마가 시신 기증서에 직접 서명해서 가톨릭 의과대학에 접수한 게 무려 10년 전 일이다.
김수환 추기경님처럼 장기 기증만 하는 것도 있노라고 누차 말씀드렸지만, 엄마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전신 기증을 선택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혹시라도 나중에 중환자실에 가게 되거든 생명 연장을 위한 호스 같은 거 끼우지 말라고.
엄마는 또래 친구들과 종종 이런 대화를 나누곤 하셨다.
‘죽음에 이르렀을 때 아무 고통 없이 잠자듯 떠날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네.’
누구나 평안한 죽음을 바라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최근 입원했을 때의 일이다.
암병동에 있다 보면 종종 환자의 위급 상황을 알리는 방송이 송출되는 걸 들을 수 있다.
일명, ‘코드 블루’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위급 환자가 발생했을 때 의료진들이 들을 수 있게 병원 전체에 울리곤 한다.
방송이 끝나기가 무섭게 담당 간호사들과 의사들이 일제히 달려와 응급처치를 하는데,
그럴 때면 병동 전체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곤 한다.
보호자들은 남의 일이 아닌 듯 깊은 한숨을 내쉬고, 침대에 옴짝달싹 못하고 누워 있는 환자들은 그 침대가 자신의 관이라도 되는 양 굳은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조용한 가운데 어디선가 꺼억꺽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멀거니 의료진들의 등만 지켜보고 서 있던 보호자의 울음소리였다.
조만간 퇴원한다며 좋아하던 분이 갑자기 저렇게 됐다며 옆 병실 보호자가 눈시울을 붉혔다.
숨소리를 내는 것조차 미안해지는 순간이다.
조용히 병실로 돌아가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엄마 말대로 이제부턴 '어떻게 사느냐'가 아닌 '어떻게 죽느냐'를 고민해 봐야 할 때가 왔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안고 살았다면,
앞으로는 ‘남은 인생 어떻게 하면 인간답게 죽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지점에 도달하고 만 것이다.
더 이상 난 철부지가 아니다.
어리광을 부릴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싫어! 절대 엄마 못 보내!’ 언제까지 우길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히 약속할 수 있다.
엄마를 끝까지 붙잡을 순 없지만, 마지막 순간 엄마가 외롭지 않게 옆에서 지켜주겠노라고.
퇴원한 지 41일째 되던 날,
엄마의 숨소리가 평소와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엄마 침대 아래에서 자던 나는 불안감에 벌떡 일어나 불을 켰다.
새벽 1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
- 왜? 숨 쉬는 거 힘들어?
- 토할 거 같아......
나는 엄마 베개 아래 비닐을 깔며 말했다.
- 비닐 깔았으니까 그냥 누워서 해도 돼.
엄마는 고개를 돌리더니 힘겹게 웩웩 소리를 냈다.
하지만 마른입에선 약간의 피가 섞인 침밖에 나오지 않았다.
- 목 아프겠다. 이제 그만하고 자.
- 어.
짧은 대답과 함께 엄마는 다시 천장을 보고 누우셨다.
- 옆에 있을 거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
하지만 엄마는 아무 대답이 없으셨다.
엄마가 통증 때문에 잠을 설칠까 싶어 가슴에 붙이는 마약성 패치를 새것으로 교체해 드렸다.
원래는 내일이 교체하는 날인데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불안감을 주던 엄마의 숨소리가 차분해졌다.
그제야 나도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하지만 도통 잠이 오질 않았다.
엄마는 그새 잠이 드신 듯 조용했다.
나는 엄마의 숨소리를 듣기 위해 온정신을 집중시켰다.
엄마의 숨소리가 너무도 평안한 나머지 잘 들리지가 않았다.
- 엄마 자?”
역시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벌써 잠이 드신 건가? 아님 기력이 없어서? 아님...
더 이상 생각할 것 없이 조용히 일어나 불을 켰다.
엄마의 얼굴은 깊은 잠에 빠진 듯 평온해 보였다.
- 엄마... 엄마?
나는 털썩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언젠간 이런 날이 올 거라 예상은 했지만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은 없었다.
엄마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지, 그걸 지켜보는 나의 모습은 또 어떨지.
엄마의 모습은 감히 상상할 수 없었지만 내 모습은 불 보듯 뻔했다.
보나 마나 대성통곡하며 질질 짜고 있을 게 분명했다.
내가 워낙의 울보라는 걸 이미 잘 아는지라 엄마는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 엄마 죽으면 울지 마.
그 말이 마치 유언처럼 어찌나 가슴에 박히던지.
그래서였을까? 그 순간 난 이를 악물고 울음을 삼키고 또 삼켜야만 했다.
임종 시 마지막까지 살아 있는 게 청력이라는 말을 익히 들어온지라 섣불리 우는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문득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잠들다 죽으면 소원이 없겠다고.
그런 의미에선 엄마의 소망이 이뤄진 셈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울 수가 없었다.
내 울음소리에 놀란 엄마가 현실을 자각하는 순간 엄마의 소망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 테니까.
혹시라도 엄마가 죽음을 자각하게 될까 봐 최대한 숨을 죽이고 자장가처럼 잔잔한 성음악을 틀었다.
그저 편하게 보내드리고 싶었다.
엄마가 놀라지 않게 최대한 안심시켜 드리고 싶은 마음만이 가득했다.
그래서 엄마 가슴을 가만가만 토닥이며 조용히 속삭였다.
- 자장... 자장... 잘 자 엄마. 아무 걱정 말고... 푹 자... 이제 안 아플 거야... 고생 많았어...”
아주 오래전,
어린 나를 재우기 위해 엄마가 했던 것처럼 난 엄마의 가슴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자장가를 읊조렸다.
엄마를 위해 해 드릴 수 있는 거라고는 그게 전부였다.
토닥... 토닥...
엄마의 심장박동수가 서서히 떨어질수록 내 심장박동수는 빠르게 요동치고 있었다.
이대로 엄마랑 헤어질 생각을 하니 울컥하는 감정이 터져 나왔다.
아무렇지 않은 듯 자장가를 부르고 있는 내 목소리완 달리 눈에서는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꺼져가는 엄마의 청력이라도 붙잡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아무 말이나 횡설수설 떠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못했던 말이 떠올랐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말은 꼭 해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말보다 울음이 먼저 터져 나올까 봐 도저히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엄마가 떠나는 마지막 길에 고생했다며 꽃길은 깔아드리지 못할망정 눈물을 뿌릴 순 없었다.
눈물을 훔치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엄마 귀에 대고 속삭였다.
- 엄마... 엄마가 내 엄마여서 고마워. 사랑해 엄마... 영원히.
그렇게 나의 엄마는 태어나기 전의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 버렸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픔이 없는 곳임에는 틀림없다.
이제 엄마는 더 이상 병마와 싸우느라 힘겨워하지 않아도 된다.
독한 약을 먹으며 고통을 버텨내지 않아도 되고, 통증에 괴로워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온종일 따라다니며 안 된다고 떠드는 딸의 잔소리를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된다.
이제야 속 시원하다며 미소 짓는 엄마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엄마 얼굴이 비로소 편안해 보이는 걸 보니, 이제는 정말로 엄마를 떠나보내드려야 할 때가 오긴 왔나 보다.
놓칠세라 꼭 잡고 있던 엄마의 손을 이제는 놔야 한다.
모든 것이 무(無)에서 나와서 무(無)로 돌아간다.
그래서 아무런 집착도 할 필요가 없다.
집착은 그저 불행만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사라질 것이다.
아침에 활짝 핀 꽃도 밤이 되면 시들어 버린다.
- 달마 어록 중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먼저 떠난 이를 추모한다.
나에게 있어 엄마를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오직 미천한 글재주 밖에 없다.
'무소유'라는 책을 쓰셨던 법정스님은 유언으로 글도 빚이니 아무것도 남기지 말라며 절판을 요청하셨다고 한다.
우리 엄마는 법정스님처럼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며 살진 않으셨지만 마지막엔 달랑 하나 남은 육신까지 아낌없이 내어놓으며 무소유로 떠나셨다.
그렇기에 작은 글 빚 하나쯤은 남겨도 되지 않을까 싶다.
난 앞으로 엄마가 보고 싶어 눈물이 날 때마다 눈물 대신 엄마에 관한 글을 쓸 예정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도 주인공이었던 적 없는 내 하나뿐인 엄마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