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위한 이유식

- 백혈병 걸린 엄마를 돌보는 철부지 딸의 육모 일기 -

by 정희리


“엄마, 밥 먹었어?”

“어.”

“뭐 먹었는데?”

“귀찮게 뭘 물어. 그냥 밥 먹었지.”

“나 시장 왔는데 뭐 사갈까?”

“아무거나 사와.”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없어.”



내 인생에서 엄마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이 ‘밥 먹었어?’가 아닌가 싶다.

혼자 계신 엄마가 식사를 제대로 챙겨 드셨는지, 아님 대충 때웠는지가 늘 신경 쓰이고 걱정됐다.

그래서 매일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가장 첫마디는,

밥 먹었어?


우리나라만의 특이한 인사말이 있다고 한다.

- 식사하셨어요?

헤어질 때의 인사말도 있다.

- 조만간 밥 한 번 먹자.

생일 안부 인사도 밥과 관련이 있다.

- 미역국은 먹었어?

고마울 땐,

- 나중에 밥 한 번 살게.

걱정될 땐,

- 밥은 먹고 다니냐?

심지어 나쁜 짓을 하면,

- 너 그러다 콩밥 먹는다?

이밖에도 밥에 관련된 인사말은 무수히도 많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은 밥에 진심이다.


나 역시 먹는 거에 대해 꽤나 진심인 편이다.

‘먹는 게 남는 거다! 기왕 먹는 거 제대로 먹자!’는 주의라 하루 세 끼를 챙겨 먹지 않으면 큰일 난다.

한 끼라도 거르면 체력이 뚝 떨어지면서 감정을 조절하는 회로에 문제가 생겨 아주 예민하고 까칠해진다.

이런 나의 생리를 너무도 잘 아는 내 옆지기는 나의 예민 수치가 평균보다 올라갔다 싶으면 재빠르게 입에 먹을 걸 넣어주곤 한다.

요즘 트렌드답게 소식좌 대열에 합류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내 위장이 허락해주질 않으니 어쩔 수 없다.


‘밥이 보약이다!’

우리 엄마 역시 밥에 진심이었다.

엄마는 돈 버느라 바쁘고, 나는 노느라 바쁘고. 그런 이유로 우리 모녀가 마주 앉아 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아침이 유일했다.

그래서였을까?

엄마는 아침밥을 항상 푸지게 차리곤 하셨다.

아무리 학교에 늦어도 밥은 꼭 먹고 가야 한다며 꾸역꾸역 먹여 보냈다.

이른 아침 어디선가 생선 굽는 냄새가 난다면 그건 십중팔구 우리 집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생선 냄새에 잠을 깬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달콤한 단잠을 깨우는 게 비릿한 생선 냄새라니. 너무 싫었다.

옷에 냄새 밴다며 온갖 짜증을 부려도 엄마는 굴하지 않고 생선을 구우셨다.

아침을 황제처럼 먹어야 하루가 든든하다며 있는 반찬 없는 반찬을 다 꺼내 아침을 차리시곤 하셨다.


- 아~ 몰라. 더 잘 거야. 밥 안 먹어!


10분이라도 더 자기 위해 버티는 딸 vs 반드시 아침밥을 먹여 보내겠다는 엄마의 신경전.

대부분의 결말은 엄마의 승으로 마무리됐다.

철없는 딸은 졸린 눈을 반쯤 뜨고 엄마가 정성껏 차려준 밥을 투덜거리며 먹곤 했다.


그땐 알지 못했다.

그 밥상의 의미를.


세월이 흘러...

엄마의 밥상을 귀찮아하던 딸은 이제 엄마의 밥상을 차려 드려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엄마는, 밥 먹으라고 재촉하는 딸을 귀찮아하는 아이가 되어 버렸다.


그 시절, 딸이 건강하게 잘 자라길 바라는 마음으로 엄마가 정성스레 밥상을 차려줬듯

나 또한 엄마가 건강히 살아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 최선을 다해 밥상을 차리고 있다.

엄마는 그 마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아무리 입맛이 없어도 꾸역꾸역 입에 넣고 계신다.

병원에서 처방해준 입맛이 도는 약을 드셔 가면서까지 딸이 차린 밥을 꼭꼭 씹어 삼키고 계신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점점 떨어지는 체력 앞에 인간의 정신력은 너무도 나약했다.

모든 건 정신력의 문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파보지 않은 건강한 사람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건강한 몸이 있어야 건강한 정신도 있다는 말이 새삼 실감 났다.

엄마는 죽도 넘기기 힘들다며 식사하는 자체를 버거워하기 시작했다.

식사 대용으로 영양음료라도 드셔주시면 좋겠지만 질려서 냄새도 맡기 싫다고 하시니 방법이 없었다.


이제 어떡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쌀을 곱게 갈아 미음을 끓였다.

엄마는 희멀건 미음을 보자마자 구역질 난다며 치우란다.

아무리 항암 부작용이라 치부해도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기껏 끓였더니.

아깝다고 투덜거리며 엄마 보는 앞에서 미음을 퍼먹었다. 두어 번 먹다가 조용히 수저를 내려놨다.

식욕이 뚝 떨어지는 비주얼답게 맛대가리라곤 하나도 없었다.

내가 너무 했네. 가뜩이나 식욕이 없는 사람한테 이런 걸 먹으라고 내놨으니.

의사에게 말해 식욕 돋는 약의 용량을 늘려봤지만 그마저도 소용없었다.

그렇다고 쫄쫄 굶길 수도 없고...


안 먹으면 죽는다! 먹어야 산다!


그때부터 엄마를 위한 이유식(?)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검색을 해보니 아이들 이유식 정보는 넘쳐나는데 노인을 위한 영양식 정보는 별로 없었다.

아이들용 이유식이 엄마 입맛에 맛을 리 없다.

그렇다고 내가 엄마 입맛을 끌어올릴 마법의 손을 가진 요리사도 아니고...


이럴 땐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마트로 달려가 대기업에서 만든 분말 수프를 하나 샀다.

뒷면에 적힌 레시피대로 끓이면서 양파와 양송이버섯을 얇게 슬라이스로 잘라 끓고 있는 수프 속으로 풍덩~

맛있는 양송이 수프의 탄생이다.

예쁜 색감을 위해 브로콜리와 당근까지 넣으니 제법 먹음직스럽다.

수프에 찍어 드실 수 있게 부드러운 빵까지 함께 내어 놓으니 다행스럽게도 엄마가 숟가락을 드신다.


이거다 싶어 수프를 종류별로 사 와 이것저것 시도를 해 봤다.

토마토와 양파 등을 넣어 토마토 수프를 만들고, 소고기 간 것과 야채 등을 넣어 소고기 야채수프 만들었다.

어떤 수프와 식재료를 조합하느냐에 따라 브로콜리 치즈 수프, 단호박 수프, 감자 수프, 고구마 수프 등 다양한 변신이 가능하다.

탄수화물 섭취를 위해 담백한 빵이나 비스킷 추가는 필수다.

수프가 질린다 싶으면 카레나 짜장도 있다.

특히 건더기를 싹 다 갈아서 만든 인도식 카레는 아주 별미다.


감자, 고구마, 단호박을 으깬 후 치즈랑 같이 폭신폭신하게 익혀 드리는 방법도 있다.

감자가 남아 감자전을 구워드렸더니 의외로 반응이 좋다.

여러 장을 구우면 힘들겠지만 한 번에 한 장만 구우면 되니 부담도 덜했다.

이제부터 1일 1감자전이다.


감자전이 질린다 싶으면 이번엔 채소전이 기다리고 있다.

섬유질 섭취를 위해 채소를 드셔야 하건만 엄마는 이제 나물 씹는 것도 힘들어하셨다.

부추를 아주 잘게 잘라 전을 부쳤는데도 힘들어하시기에 부추를 그냥 믹서기에 갈아버렸다.

그랬더니 초록의 예쁜 전이 탄생됐다.

두릅 등 각종 채소들도 싹 다 갈아서 전으로 부쳐봤는데 의외로 색다른 맛이 일품이다.

내친김에 단백질 섭취를 위해 소고기도 갈고, 생선도 갈아서 부쳐봤다.

엄마가 좋아하는 골뱅이도 잘게 다져서 부쳤더니 또 색다른 부침의 탄생이다.

들어는 봤나. 골뱅이 전.

기름을 많이 쓰지 않아 느끼하진 않았지만 가끔 청양고추로 매콤함을 더해주니 질릴 틈이 없다.


그렇게 엄마는 일주일간 딸이 해주는 이유식을 드시며 기력을 회복하셨다.

하지만 계속해서 묽은 식사만 하다 보니 엄마의 장이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건더기를 좀 드셔 주시면 좋을 텐데...


걱정이 무르익기도 전에 다행히 엄마 입맛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드시고 싶은 음식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의 식사량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치지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뭐든 갈고, 다져서 만든 내 맘대로 이유식이 나름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아 뿌듯했다.

시중에 파는 제품을 구입해 엄마 입맛에 맞춰 재조리를 한 것도 도움이 됐다.


내일은 엄마의 요청대로 성게알 미역국을 끓일 생각이다.

모레는 엄마 좋아하는 항정살을 구워야지.

이제 갈고 다지는 이유식은 그만 졸업하고 일반식으로 돌아가게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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