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저귀 갈 시간

- 백혈병 걸린 엄마를 돌보는 철부지 딸의 육모 일기 -

by 정희리


“울 엄마 기저귀 갈자.”

“아직 안 축축해.”

“축축해지기 전에 갈아야 습진 안 생기지.”

“그래도 아깝잖아.”

“기저귀 박스로 사다 놨는데 언제 다 쓰려고? 안 쓰고 버리면 그게 더 아깝지 않나?”

“그러게 누가 박스로 사래?”

“박스로 사야 싸니까. 나 엄마 닮아 엄청 알뜰하잖아.”




병실에서의 또 하루가 밝았다.

눈 뜨자마자 밤새 가득 찬 엄마의 소변 통을 비우는 걸로 아침을 시작한다.

이건 비단 나만의 루틴이 아니다.

우리 엄마를 포함해 혈액암 병동에는 거동이 힘들어 소변줄을 삽입한 환자들이 대다수다.

그렇기에 매일 아침 복도에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부스스한 몰골의 보호자들이 밤새 가득 찬 환자의 소변통을 비우기 위해 오물실로 모여드는데,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모두 똑같이 생긴 가방을 들고 쇼핑하러 가는 코미디 영화 속 배우들이 연상되면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물론 주인공은 나다.

그들과 똑같은 가방을 들고 중대한 임무를 수행 중인 요원이라고나 할까.

음하하하.


간병을 오래 하다 보면 정신이 피폐해질 수 있기에 유쾌한 상상은 필수다.

지치지 않고,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긍정의 힘!

내가 성격이 좋아서가 아니다.

이건 어찌 보면 생존 본능과도 같다.


하루하루 생존 본능과 씨름하며 지내던 어느 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퇴원 결정이 떨어졌다.

응급실로 입원한 지 57일 만이다.

야호~ 드디어 집에 간다!


그 사이 엄마는 폐렴으로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고, 고열과 치솟는 염증으로 온갖 약을 다 쓰다가 반코마이신 내성 장알균 감염으로 격리되었다가 해제되었다가 또 격리되었다가를 반복했지만 그 또한 멋지게 이겨냈다.

사상 초유의 고혈당으로 새벽마다 생쇼를 하는 등 입원 기간 동안 벌어진 에피소드를 열거하자면 끝도 없을 것 같았던 긴 여정이 드디어 끝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퇴원 소식과 함께 엄마는 활기를 띄었다.

평소 기운 없다며 누워만 있던 엄마가 자진해서 다리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퇴원하면 혼자 힘으로 화장실을 가겠다며 호언장담과 함께 자신만만하게 소변줄을 제거했다.


하지만 마음처럼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는 게 문제다.

그동안 소변줄에 의존하며 지냈던 탓에 소변은 수시로 흘러나왔다.

병원에서는 2시간 정도 참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알려줬지만 엄마는 1시간 참는 것도 버거워하셨다.

난 기저귀를 제안했다.

매번 속옷과 바지뿐 아니라 침대 시트까지 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은 입원 중이라 속옷만 빨면 그만이지만, 퇴원하면 속옷에 바지에 시트까지 빨아야 하는데...

솔직히 자신 없었다.

삼시 세끼 하루 세 번, 매번 새로운 반찬을 지지고 볶아가며 밥상 차리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세균 박멸을 위해 매일 소독하고 청소해야 하느라 허리가 빠질 지경이다.

근데 매일 이불 빨래까지 하라고?

엄마, 나 좀 살려주라...


가만히 내 말을 듣던 엄마는 어쩔 수 없이 기저귀 차는 것에 동의하셨다.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병원 편의점으로 달려가 팬티형 기저귀를 사 왔다.

근데 이거 어떻게 착용하는 거지?

허둥대는 내 모습에 담당 간호사가 노련하게 시범을 보였다.

‘별 거 아니네? 음... 근데 왜 안 되지?’

손에 익지 않아서인지 난 계속 버벅거렸다.

이렇게 했다가... 저렇게 했다가...

몇 번의 시도 끝에 드디어 원리를 깨달았다.

착용법을 알고 나니 그동안 왜 헤맸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너무도 간단했다.


무슨 일이든 모를 땐 어렵게 느껴지지만, 한 번 알고 나면 쉬운 법.

하지만 평생을 살아도 여전히 모르는 게 하나 있다.

앞일.

사람 앞일은 정말 아무도 모른다.


나 역시 몰랐다.

아기 기저귀 한 번 안 갈아본 내가 엄마 기저귀를 갈게 되는 날이 올 줄은.


앞으로 내가 모르는 어떤 일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미리 걱정하지 않을 생각이다.

어둠이 무서운 건 앞에 뭐가 있는지 안 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앞에 뭐가 있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가끔 두렵고 막막한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앞에 뭐가 있는지 알면 이 두려움은 사라질까? 혹시 더 두렵진 않을까?

난 쫄보라 더 두렵다에 한 표.

그래서 난 그냥 이 어두운 터널 같은 인생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앞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까 설레고 더 기대된다는 소녀 감성은 잃은 지 오래지만, 모르는 게 약이라는 선조들의 말씀대로 모르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미리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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