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어.
'당신의 리즈 시절은 언제입니까?'
난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어. 20대 초중반이라고.
왜 그때를 리즈 시절이라고 말했을까?
무식이 용감하다고 그땐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막 덤비던 시절이었거든.
실수투성이에 잘하지 못해도 청춘이라는 이름 하나로 용서받던 때였으니 얼마나 근사해?
그땐 정말이지 무서운 것도 없고 거침도 없었어.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건 그대로 밀고 나가는 폐기도 있었고.
그 덕에 싸움닭이라는 별명도 생겼지만 오히려 난 그 별명이 자랑스러웠어.
일과 학업과 연애라는 세 마리 토끼를 쫓으면서도 피곤한 줄 모르고 냅다 달리던 체력과 열정도 있었지.
사람들과의 만남은 또 얼마나 좋아했게?
낯선 사람들과의 합석이 아무렇지도 않았어. 오히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
지금은 죽었다 깨어나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예전에 난 그랬더라고.
자뻑이겠지만 인기 또한 상당했어.
날 만나기 위해 집 앞까지 찾아오는 남자들도 많았고, 길 가다 헌팅을 당한 적도 더러 있었지. (이 글을 남편이 싫어합니다)
그래서 난 지금까지도 짝사랑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어. 내가 찍은 사람은 무조건 날 좋아해 줬거든.
그러다 보니 난 내가 엄청 예쁘고 잘난 줄 알았어.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다 보니 나 자신이 화려한 꽃인 줄 알았던 거지.
당연히 내 인생도 화려한 꽃밭이 될 거라 믿었어.
20대 초반에 친구들과 진지하게 나눈 화두가 이거였어.
'나의 30대는 어떨까?'
당시 친구들은 서른 넘은 자신의 모습을 궁금해했지만 난 마흔 넘은 내 모습이 궁금했어.
30대까지는 빡세게 구를 거라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거지.
그렇기에 난 마흔 넘은 내 모습이 너무 기대됐어.
지금은 비록 노가리에 소주를 마시지만 그땐 고급 레스토랑에서 우아하게 와인을 마시고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근데 막상 마흔이 넘고 나니 별반 다를 거 없더라.
와인이 마시고 싶으면 마트 가서 할인하는 와인을 사다 마시면 그뿐, 왜 그런 거에 의미를 두고 살았는지 몰라.
사실 좀 씁쓸하긴 했어. 내가 기대했던 사십 대랑 달라서.
그렇다고 지금의 내 모습이 실망스럽다고 말하는 건 아니니까 오해는 금물.
난 지금 20대 때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멋진 인생을 살고 있지.
내 인생이 비록 꽃밭은 아니었지만 거친 가시밭길이 아니었다는 것에 감사해.
살다 보니 화려한 꽃만 예쁜 게 아니더라.
아스팔트 위에 핀 작은 민들레가 얼마나 예쁜지 아니?
산에 핀 이름 모를 들꽃은 또 얼마나 작고 소중한지.
그리고 또 꽃이 아니면 어때?
가끔은 아무렇게나 피어난 풀떼기도 예뻐 보이더라니까.
이런 소소한 것들 속에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인생도 썩 괜찮은 거 같아.
왜 어른들이 봄이면 꽃구경을 떠나고, 가을이면 단풍놀이를 가는지 이제 조금은 알 것도 같아.
누군가 내게 리즈 시절이 언제였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할래.
"오늘이요!"
내 인생의 전성기는 바로 오늘이야.
매일이 전성기라고 생각하고 사는 삶이 얼마나 신날지 기대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