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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리 Sep 18. 2023

부부가 첫 캠핑을 떠납니다

태안 사목공원 캠핑장

캠린이 부부의 첫 캠핑이다.

그간 우리를 거쳐간 텐트는 이번 것까지 해서 무려 세 번째.

첫 번째 텐트는 왕년에 텐트 만드는 회사를 다니셨던 아버님이 선물해 준 럭셔리 텐트였다.

하지만 당시 우리 부부는 둘 다 회사일에 치여 살다 보니 인생의 풍유를 즐길 줄 모르던 때라 쭉 보관만 하다가 신랑 친구에게 선물로 줘버렸다. 한 번 펴보지도 못한 채.

두 번째 텐트는 옆지기가 별 보러 다닌다며 중고마켓에서 멋모르고 구입한 텐트였다.

관측 다니며 서너 번, 해변에서 그늘막 대신 한 번 펴보고는 다시 중고마켓에서 되팔았다.

그리고 우리 인생에 더 이상의 텐트는 없을 줄 알았다.

그러다 문득, 더 나이 들기 전에 캠핑 여행 함 가보자! 싶어 세 번째 텐트를 구입했다.

낯선 서호주에서 캠핑카를 몰고 다니며 캠핑을 했는데, 국내에선 왜 못해?라는 자신감이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중고마켓에서 텐트를 구입했다.

한때 우리나라는 남이 쓰던 중고 물건을 사고파는 걸 터부시 하던 시절이 있었다.

남이 쓰던 물건에는 귀신이 붙어 있어 불길하다며 당장 갖다 버리라며 야단을 맞기도 했었다.

그런 마인드에 젖어 살던 내가 캐나다에 유학 중이던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사용하던 숟가락까지 중고로 파는 걸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벼룩시장이 일상이 되어 작은 손거울 하나까지도 거래의 대상이 된다는 게 실로 놀라웠다. 그리고 수년이 지나 우리나라에서도 중고 물건을 사고팔 수 있는 광경을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되었다.  

우린 아직 쓰던 숟가락까지는 아니지만 중고가 꽤 활성화되고 있어 내심 반갑다.

덕분에 너무도 좋은 텐트를 저렴하게 살 수 있으니 말이다.

텐트를 치자마자 마치 제 방인양 쪼르르 올라가 자리를 잡는 우리 하니.

사실 캠핑 여행을 계획한 이유 중 하나도 하니 때문이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애견 동반 숙소를 찾는 게 하늘의 별따기다.

물론 비싸고 좋은 곳은 많겠지만, 우리 부부는 숙박에 돈 쓰는 걸 무지 아까워한다.

저렴한 숙소 가운데에 애견 동반 숙소를 찾다 보니 여행지가 늘 거기서 거기.

그래서 텐트를 사며 마음이 한결 가벼웠던 게 사실이다.

헌데 이게 웬일?

캠핑장도 애견 동반이 불가능한 곳이 상당수였다.

애견 동반 캠핑장은 열개 중 하나?   

게다가 앞서 말했듯 우리 부부는 숙박에 돈 쓰는 걸 아까워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텐트 치고 자는데 오만 원 이상을 지불해야 하는 게 또 용납이 안 된다.

그러다 보니 선택의 폭은 더 좁아지기 마련이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래도 우리의 첫 캠핑장인데 비싸도 좋은 곳으로 잡자... 해서 잡은 곳이 태안 사목공원 캠핑장이다.

좋은 곳이라 함은...?

1박에 오만 원이 넘었다는 뜻이다. 오만오천 원. 하.하.하.

땀을 뻘뻘 흘리며 텐트를 치니 이제야 보이는 뷰~

오 마이 갓. 서해가 이렇게 멋있어도 되는 거야?

나이가 들면 서해가 좋아진다더니 우리 부부도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바다 색도 너무 예쁘지만, 물이 빠졌다가 들어왔다가 반복하는 게 우리네 인생 같아서 정겹기 그지없다.

물이 빠지자 옆지기가 호미를 들고 해루질에 나선다.

난생처음 해보는 해루질에 신이 나서 나가더니만 돌아올 땐 빈손이다.

조개들도 우리가 초보라는 걸 눈치챈 모양이다.  

남편이 사냥을 나간 사이, 아내는 책을 읽는다...

사실 책을 펴놓기는 했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다만 봐도 좋다. 그냥 숨만 쉬어도 좋다.

캠핑의 꽃은 뭐니 뭐니 해도 바비큐~

오는 길에 태안 서부 시장에 들러 소라 1킬로 1.5, 전어 1킬로 1.5에 구입.

고기는 인근 하나로마트에서 구입. 3박 4일 동안 먹을 거라 닭발과 곱창 등도 구입.

첫 캠핑이라 욕심이 과했나 보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3박 4일 내내 먹다가 쉬다가, 또 먹다가 자고 일어나 또 먹었다고 한다.

이런 뷰를 두고 어찌 먹지 않을 수 있으오리.

이번 캠핑을 통해 서해의 매력에 퐁당 빠져버렸다.

젊은 날엔 동해가 바다의 전부라 믿었는데, 이제 내 원픽은 서해다.

이래놓고 동해 가면 또 동해가 최고라고 말할 수 있지만, 오늘만큼은 서해가 좋다.

바다 위 노을처럼 우리도 익어가는 시간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격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물멍과 불멍.

이번 여행의 콘셉트는 이름하여 멍멍.

밤에 되니 별멍도 하나 추가요~

재밌는 걸 할 때는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고 한다.

멍 때리는 것 말고 아무것도 하는 게 없는데 왜 이리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지.

처음 2박 3일을 계획했다가 1박을 더했는데 벌써 끝나버렸다.

우리 부부는 서로 취향과 성향이 달라서 함께 공유 할 수 있는 취미가 별로 없었는데 드디어 찾았다!

앞으로 우리 부부의 취미 생활은 캠핑!


텐트를 접고 짐을 정리하니 하니가 가장 먼저 타에 올라탄다.

집에 가기 아쉬우니 다른 곳으로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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