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도살장> - 커트 보니컷(1969)
'바베트의 만찬' 책방에서 진행하는 독서모임 중에 <제5도살장> 책모임을 신청하게 되었고 그렇게 사전지식 없이 이 책을 열게 되었다.
전쟁에 대한 이야기인거 같아서 참혹하고 많이 다크한 느낌이진 않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무겁지 않고 어둡지 않았다. 마치 죽음은 별거 아닌 것마냥 죽음 뒤에 ’뭐 그런 거지.‘라는 말이 붙어있다. 꼭 개콘에서 ’하고 있는데~~~~‘ ’고맙습니다람쥐~~~~‘ 처럼 유행어 밀때 어떤 상황이면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넣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 덕에 정말 죽음이 가볍게 느껴지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서도 그 말이 꼭 붙게 되니 죽음에 대한 표시를 한 것 같기도 하다. 덕분에 꽤 많은 죽음있었다는 것을 더 알게 된다.
이 책은 직접 드레스덴 폭격 사건을 경험한 작가가 썼다. 본인은 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 먹었는데 생각보다 잘 쓰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예전에 함께 그 자리에 있었던 동료도 만나고 그 때 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생각보다 먼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거나 딱 정리되는 느낌은 아니다. 그래도 어찌저찌 책을 쓰기 시작하는데 그 책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 그 전쟁에 있었던 빌리 필그림이다.
빌리는 드레스덴 폭격 사건에도 있었고 우주인에게 납치 되어 본적도 있는데 외계인들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말하려고 하면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고 딸에게 원망을 듣는다. 이 빌리는 아주 특이한 점이 있는데 바로 시간을 초월해서 다니는 것이다. 과거부터 죽을 때까지의 자신의 삶에 중에 빌리의 의지와 상관 없이 어느 시간대로 가 있다. 그래서 치열하고 긴장되는 전쟁터에 있다가 갑자기 넘 편안하게 재미없고 무기력한 자신의 노년 시절로 가있음! 요런 구성이 꽤 흥미롭다. <문나이트>의 스티븐도 생각나고 <로키 2>의 로키도 생각난다. 미래의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과거로 돌아와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 사건은 그렇게 일어나기로 이미 구조화 되어있기 때문에 건드릴 수 없고 바꿀 수 없다는 것. 그래서 계속 비행기 사고를 당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두려웠던 그 시간을 똑같이 겪는다.
그것이 구조화 되서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음을 알고 있어서인지 빌리는 정말정말 무기력하다. 특히 전쟁터에 나갔을 때 그는 군종이어서 제대로 무장하지도 않았다. 동료에게 제발 좀 자기 좀 죽게 내비 두라고 하지만 동료는 빌리를 그냥 두고 갈 수 없어서 거의 줘패면서 끌고 가는데 그 덕분에 빌리는 죽지 않는다. 오히려 동료가 죽게 되는데 빌리 때문에 그래도 잘 지내게 되었던 다른 동료들와 사이가 틀어진 것에 대한 원망과 자신을 고생시킨 것에 대한 원망이 있어서인지 죽기 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빌리가 원수이니 자신 대신 복수 해달라고 유언한다. 정말 그 유언을 기억한 병사가 전쟁이 끝나고 시간이 한참 지나서 사람을 보내 빌리를 죽이고 그렇게 빌리는 죽게 된다. 하지만 그는 죽어서 자라지지 않는다. 과거의 시간 안에 그는 영원히 존재하기 때문에 다시 태어났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의 시간을 돌아다닌다. 이렇게 모든 사람은 아무도 사라지지 않고 자신의 시간 속에 영원히 존재한다.
이 부분은 나도 공감한다. 지금 현재 다른 사람과 나의 관계가 틀어져 좋지 않고 너무 고생스럽고 정말 힘들어도 옛 추억은, 그 때 시간은 계속 그 사람과 행복하고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가 힘들다고 그 시간을 부정하고 버리는 것은 잘못 됐다고 생각한다.
또 재밌는 부분은 빌리를 납치해간 외계인들은 시간을 흘러가듯이 보는 것이 아니라 높은 산위에서 밑을 내려보면 한 눈에 쫙 펼쳐져 있는 것처럼 인지한다. 요런 시간에 대한 아이디어가 흥미롭다.
제목이 <제5도살장>이어서 그 곳에서 얼마나 끔찍한 일을 당했을까 싶은 생각이 처음에 드는데 글을 읽어보면 정말 아이러니 하게도 그 사건의 생존자들은 그 도살장 지하 저장고에 숨었기 때문에 목숨을 건진다. 그 지하 저장고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다 죽었다.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어 시 사망했던 사람보다 더 많이 죽었다는 것!! 이게 정말 깜놀했던 부분이었고 정말 흥미롭게 느껴졌다. 죽으러 들어가는 곳에 구원이 있었고 평화로웠던 곳은 죽음이 되었음....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부분 (도살장이나 죽음)에 대해 그거 아닌데? 라고 계속 말해주는 느낌이었다. 그 새로운 이야기들이 넘 진지하거나 무겁지 않은 블랙 코미디 같으면서도 그러네~ 하게 만드는 마력이있다. 또 재밌는 부분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설명이다.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은 잘못했는데 왜 잘못했냐면 예수님이 연줄이 시원찮은지 확인을 안한것이 잘못했다는 것이다. 우주 최강의 존재의 아들이어서 그들은 망했다 느낌!! 이런 해석은 처음이라 정말 신박해서 재밌었다.
빌리의 동료중 에드거 더비가 있었는데 그의 수식어는 항상 ’가엾은 늙은‘가 붙었다. 더비는 그 힘든 시기를 넘기고 심지어 드레스덴 폭격에도 살아남았는데 폐허에서 찻주전자를 가져간 이유로 총살 당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나올 때마다 작가는 가엾은 늙은 에드거 더비라고 말하고 처음부터 이 책을 쓸 때 그의 이야기를 클라이맥스 부분에 쓰겠다고 마음 먹는다. 그의 죽음이 부조리의 절정이라고 생각된 듯 싶다.
더비의 이야기는 너무나 안타까운데 전쟁에서는 워낙 이런 상황이 많아서 나에겐 크게 와닿지 않은 듯하다. 예전에 나는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있거라>에서 앞뒤 문맥 확인 안하고 아군도 막 쏴죽이는 장면이 너무 분노가 났었고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때 그런 부조리를 쎄게 맛봐서인지 더비 이야기는 전쟁터에선 놀랄 만한 이야기는 아니지 않나 라는 생각이... 그래도 든든한 자신의 동료 중에 그런 일을 겪는다면 분명 트라우마가 크게 남을 것 같긴 하다.
이 작품의 또 다른 재미는 표현을 감각적으로 해서 마치 세련되고 스타일리쉬한 작품을 보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표현 그대로 영화로 만들어도 되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영화화 되어서 상까지 받았더라는 ㅎㅎ
전쟁 이야기였지만 너무 무겁지 않고 시간 여행자 컨셉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고 틈틈히 블랙코미디로 허허허가 끊이지 않게 나왔던 <제5도살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