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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한 외로움에 대하여

외로움을 대하는 올바르고 슬기로운 자세

by 은수자

젊은 날의 나는, 외롭다는 말을 하는 것이 수치스럽다고 생각했었다.

뭐랄까, 사바나 야생 한 가운데서 초식동물이 절뚝이는 다리를 내보이는 것처럼, 그런 언행은 사회생활에서 큰 약점이자 치부를 경쟁자들에게 드러내는 일처럼 느껴졌었다. 그 시절의 나는, 회사에서는 약도 탕비실에서 나 혼자 남이 보지 않을 때 먹곤 했다. 남 앞에서는 함부로 약도 먹지 않았다.


사람들은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정말 많은 것들을 시도해 보고, 혼자 되기 않으려 노력하고, 또 세상도 더불어 사는 것이 맞다고 하고, 외로움을 때때로 무언가 해치워야 할 감기처럼 터부시하는 듯했던 젊은 시절.

여행을 싫어했던 나는 20대에도 크게 여행을 다니지 않았고, 얇고 넓게 많은 친구들을 사귀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무슨 신념이었다기보다, 내 에너지가 그것들에 크게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참 직장생활이 익숙해졌을 30대 중반 무렵, 인터넷 동호회가 한참 유행했다. 회사 동료들은 각각 무슨 무슨 동호회를 가입해 몰려 다니고, 싸이월드에 일촌을 맺으며 다들 커뮤니티에 열을 올렸다. 또 사내에서도 동호회 같은 게 생겨서, 당구며 스키며 등산이며 다들 주말까지 몰려 다녔다. 역시 내 에너지는 거기까지는 닿지 못해서, 나는 겨우겨우 회사 워크샵까지만 참석하며 살았다.


40대 중반이 되자, 주변 사람들이 등산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비싼 등산복이 대유행을 타고, 다들 주말마다 각종 산행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프로그램에 다니며 친구들을 사귄다고 했다. 그 즈음의 나는, 디스크가 생겨서 매일 2만보쯤 걷기운동에 공을 들이던 때여서, 등산 프로그램은 약간의 호기심이 생겼다. 그렇게해서, 어렵지 않은 코스 위주로 40대 후반에 숲길 트레킹에 입문했다. 내가 몰랐던 나의 취향을 디스크 통증이 길잡이가 되어 알게 해준 격이었다고나 할까, 나는 내가 그렇게 숲길을 좋아하는지 몰랐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 아는 사람들이 뒤섞인 모임 문화가 나는 내내 편하지는 않았고, 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뒤풀이며 술자리는 더더욱 피하게 되었다. 그렇게 10여년이 넘는 숲길 취미에도 내게는 그냥 숲만 남았고, 사람들은 크게 남지 않았다. (웃음) 다른 사람들은 단짝 친구를 만들고, 그 중에는 연애도 하고, 그 중에는 그러다가 웬수사이가 되어 의절도 하는 동안, 내게는 그냥 숲이 남았다.


50대 중후반을 넘어서고 있다. 수십년 해 온 일인데도, 가끔씩 회사일이 체력에 부친다. 수요일 쯤 되면 하루는 그냥 퇴근 후 피곤해서 그냥 10시간 넘게 자야 목요일 금요일이 산뜻하게 넘어가는 주도 있다. 그 와중에 책보는 취미, 글쓰는 취미, 주식창도 들여다 보고 (웃음) 팔자에 없는 투자일기도 쓰고 있으니, 눈이 아프다.

눈이 아픈 주에는, 날씨만 받쳐주면 숲길 트레킹에 신청글을 달고 숲길을 걷고 온다. 띄엄띄엄 나가니, 아는 친구도 잘 안 생기고, 이 나이엔 누가 친구하자고 해도 선뜻 그렇게 누가 맘에 들지도 않는다. 독선과 고집, 아집...나라도 왜 그런게 없을까? 내 맘도 이젠 예전처럼 소프트하지 않구나 느낀다.

중년을 넘어서니, 다들 외롭다고 난리다. 직장을 다녀도 외롭고, 은퇴하면 더 외롭다고 난리다.

음...가끔 그런 기분이 안 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외로움이 꼭 나쁜걸까? 나는 그런 질문을 가끔 스스로에게 한다. 피곤한 5일이 끝나고 맞는 홀가분한 주말이 늘 좋고 감사하기 때문이다. 아무 일정 없이 그냥 늘어지게 자고 김치부침개 하나 해먹고 넷플 영화 한편 보는 날이라도, 그냥 그 하루가 눈부시고 좋고 편하다.


외로움을 반듯하게 잘 관리하면, 번듯한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

그 비밀을 풀어보자. 그 열쇠는 우리 맘 속에 있을지 모른다.

작은 외로움을 해결하려고 사람들은 정말 많은 돈과 시간을 허비한다.

문제는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 외로움이란 감정이 "척결"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런 시간은 "공허함"이란 부작용까지 더해서 부메랑처럼 오는 때도 부지기수이지 않은가?

외로움. 요즘은 감사함으로 상쇄되는 일상이 많다.

젊은 시절이나 지금이나, "외로움을 해결하려 들수록 증폭되는 진리"를 체감한다.

그래서, 지금의 나이가 싫지 않고 좋다. 외로움도 그다지 해결하려하지 않는다. Let it go, Let it be...둔다. 이렇게 평화롭게 늙어야지 생각하니 맘이 편안하다. 직장 은퇴하면 이제 염색은 하지 말아야지 결심도 하고, 그레이 헤어에 관한 멋진 스타일들을 찾아본다. 은퇴하면 고양이 한마리 내 인생에 들여야지 결심도 하고.


반듯한 외로움. 나쁘지 않은 말이지 않은가?


PS) 한달 점 쯤부터 밥을 주기 시작한 울 단지내 고양이 녀석의 얼굴을 어제 우연히 보았는데, 세상에...ㅎㅎㅎ 녀석은 새까만 블랙 캣이었다. 요런 비스무리한 놈이었다. 아직 애기애기한 새끼. 밥 시간과 장소를 칼같이 기억하고 결석없이 밥을 깨끗이 먹고 가는 영리한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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