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 나는 신문방송학과 교수님으로부터 제안을 받았고, 그 교수님은 EBS 펭수신화를 만드셨던 김명중 교수님이셨다. 또, 사회복지학과 학과장님으로부터 전과를 하지 않으면 취업을 시켜주겠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갑작스레 닥쳐온 스무살의 첫번째 선택은...
- EP.2 - 첫
나는 마음이 가는대로 선택했다. 어쩌면 그 때 이 길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16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나는 방송을 선택했고, 그에 따른 심한 압박감, 긴장감, 두려움, 흥분, 오만함 등 인간이 겪는 어두운 면들에 둘러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얻은 것은 공황장애였다.
2남 1녀 중 막내, 그리고 아빠는 공무원 외벌이로 우리 식구들은 빠듯하게 살아왔다. 엄마는 내가 4학년 때 유방암에 걸려 오른쪽 가슴을 절제하셨고, 그때부터 엄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우울감을 느꼈던 것 같다. 다행히 그 감기같은 감정은 오래가지 않았던 것 같다. 해맑고 순수했던 시간들은 '생방송 투데이' 리포터 하는 2년동안이었던 것 같다.
부모님의 큰 경제적 지원 없이 그저 피디님과 작가님이 밀어주어 한 코너를 맡게 되었고, 나는 그 리포터 시절을 계기로 시골밥상의 맛도, 멋도, 자연의 아름다움도 알게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남도여행을 하는 코너 였는데, 자연스럽게 운동도 좋아졌다. 프로그램에 스며들수록 나의 꿈은 조금씩 커져갔다. 그것은 돈도 명예도 아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열린것이다. 물론 긍정적인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다 보니 매번 프로그램 나갈 때 어떤 옷을 입고 싶어도 사지 못해서 집에 있는 옷으로 대충 차려입고 나갔었다. 헤어며 메이크업이며 그런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도 피디님과 작가님이 왜 나를 선택했고 생방송 코너를 믿고 진행하셨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단지 낮은 출연료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생방송 투데이는 방송국의 메인 데일리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왜 나를 선택했는지 알아가고자 하는 여정 가운데 있다.
내가 정의하는 '나'말고 남들이 정의했던 '나'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돌아본다. 스무살의 풋풋했던 나는 순수했고, 호기심이 많았고, 조용하지만 두려움이 없었다. 상황이 어려우면 어렵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던 솔직함도 있었다. 남들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 아닌 내가 살아가고자 하는 방식의 내가 '나'였던 것이다. 나의 모습을 타인의 시선에 100% 맞추지 않았다. 주어진 기회가 내가 잘나서가 아닌 언제나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마음의 준비가 있었고, 그 기회와 내가 만났을 때 격렬히 환영했다. '실패'라는 단어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펼쳐질 일들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했다. 어쩌면 피디님과 작가님은 나의 환경, 나의 외적인 모습 보다는 그 시절, 어른들이 아주 잃어버렸던 순수함, 호기심, 당돌함, 기대심들을 볼 줄 아는 눈이 있으셨던 것 아닐까? 16년이 지난 지금, 어쩌면 나는 피디님과 작가님의 사람보는 눈의 위대함을 처음으로 느껴본다.
연예인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야...
그분들께 감사함을 느끼지만 그 당시 리포터로 활동하는 것은 쉬운일만은 아니었다. 방송 아카데미를 나와서 전문적인 발성, 연기 등을 배운 것도 아니었고, 새벽에 출발할 때 주신 대본을 바로 외워서 하루종일 방송해야한다는 점과 시키는 대로 해야한다는 점은 지금 생각해도 어렵다. 대본 외우는 것은 그때 기억력이 좋아서 바로바로 외웠지만, 가끔 ENG 카메라가 돌아가고 엔딩멘트 할 때쯤 대사를 몇번씩 틀리곤 했는데 그 때 피디님께 꿀밤을 맞은적도 있었다. 또, 내가 5-6살 때쯤 수영장 5m깊이에 강제 다이빙을 해야하는 상황이 있었는데 그때 생긴 물고포증을 숨기고, 보트타고 강가에서 다이빙을 해야하는 촬영, 작은 오빠가 자전거 타다가 끔찍한 사고가 나서 자전거 공포심이 있었던 나에게 삐그덕 거리는 자전거를 타고 비포장 된 경사의 산길에서 즐겁게 타고 내려와야 했던 촬영, 위험천만한 스키장에서 스키도 배워보지 못한 내가 행복한 척 타고 내려와야 했던 촬영, 버티지 못할 것 같은 뜨거운 온도에서 버텨야 했던 순간들로 나는 방송을 즐기면서 많은 고민을 시작했다. 그 당시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이 가장 인기 있었을 때였는데 우리는 그들의 우스꽝 스러운 모습을 보고 웃었지만 그들은 정말 고통이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연예인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야...' 라는 결론을 정의했고, 글쓰는 것과 촬영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더 큰 세상을 여행하는 PD가 되어야 겠다고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