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보다 못한 나
캄캄한 방엔 어둠과 나 단 둘 뿐이다.
불빛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 놓고
난, 어둠에게 속상함을 고백한다.
어둠아! 글쎄 내 얘기 좀 들어볼래? 내 입장에선 기가 막힐 일이 있어!
이야기는 이렇다.
저녁밥을 먹고 두어 시간이 지났을 일요일 밤,
그러니까 어제저녁 일이 되겠다.
어느새 하루가 지났다.
남편은 뭔가 입이 심심하다며 마켓에 간다고
시장바구니를 어깨에 걸치고 서 있다.
그러면서 날 보고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라며 내 대답을 기다린다.
난 딱히 땡기는 게 없었지만, 생각해 주는 그 맘 이 고마워 굳이 생각을 해냈다.
그건, 색도 이쁜 노오란 단감이다.
난 단감을 좋아하지만 사과는 좋아하진 않는다.
아삭아삭한 그 특유의 단감 식감이 특별히 좋아서다.
그러고 보니, 한 개도 맛을 보지 못하고 겨울을 보낸 셈이다.
(절기상으로는 입춘이 지났으니 봄이다)
“딱히 당기는 건 없는데 당신 맘이 그렇다면, 단감이요!”
그렇잖아도 말을 하고 잠깐 생각해 보니 그냥 지나가나 싶어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데,
그 마음을 남편이 알고 채워 주는 것 같아 내심 고맙기까지 했다.
남편은 내 말이 끝나자마자 현관문을 밀고 나간다.
얼마 후 남편이 돌아왔다 구매한 물건을 가득 담은 가방을 어깨에 메고 온 남편은
힘에 부치는지 한쪽 발을 미처 다 안으로 들이지 못하고 휴! 하며 한껏 깊은숨을 몰아 내뱉는다.
그걸 보니, 또 치근 한 맘이다.
숯댕이처럼 검던 머리카락은 어느새 세월이 삼켜버렸고
두 눈 크게 뜨고 찾으려 아무리 둘러봐도 찾을 길이 없다.
대신 그 자리엔, 이미 주인의 허락 없이 지 맘대로
세월만큼 백발을 잔뜩 토해 놓았고,
세월은 그렇게 또 자취도 없이 뻔뻔하게 도망쳐버렸다!
찾을 수 없는 곳으로...
하지만 그 맘은 잠시고 난, 맛있는 단감 먹을 생각에
얼른 남편 어깨에 있던 가방을 내 손으로 받았다.
들어보니, 무게가 상당했다.
은근 걱정이 됐다.
이 무게면 어깨가 아팠 을법해서다.
암튼, 난 확인하고 싶어 급했다.
받은 장바구니를 열어젖혀 담겨 있는 내용물들을
하나씩 확인하며 꺼내놓는다.
남편 좋아하는 맥주와 사과만 손에 잡힐 뿐 도대체
단감은 어디에 있는지 눈에 뵈지도, 잡히지도 않는다.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이다.
그래도 난, 밑바닥 어딘가에 단감이 있겠지 하며
남편이 현관문 나설 때의 그 맘을 믿고 내용물을
끝까지 확인했으나 웬걸?
단감은 끝내 볼 수 없었다.
나중엔 애꿎은 내 두 눈을 의심하며 빈 장바구니만 탈탈 털어대며 패 댔다.
중요한 건, “읍었다”이다. 단감은.
결국 남편이 사 온 건, 본인이 좋아하는
맥주와 사과였다 분명 의도적이다.
오! 마이 갓...!
남편에게 물었다.
‘단감은 오디 있는 거유 읍네유 왜 읍어유?’
난, 말도 안 되고, 이해도 안 되는 이 상황이 궁금해서
어찌 된 일인지 머뭇거리고 있는 남편한테 설명을 부탁했다.
본인도 찔리는지 제대로 말을 못 하고 더듬어댄다.
‘아 그 그 그게 말이야 그랬어’
그러면서 사과를 가리키며
‘거기 있잖여 사과’
날 보고 사과를 먹으란다.
“헐...”
난, 단감을 먹겠다고 했지 사과를 말한 적이 없다.
남편은 마치 사과가 감인 냥, 아무 일 없이 그냥 먹어줬으면 하는 눈치가 역역하다.
어이가 없다.
참말로 기가 막혔다.
더 기가 막힌 건, 이거다.
감 대신 사과를 사온건,
사과는 7개에 11800원 이고,감은 5개에 12800원 이어서
감이 사과에 비해 개수는 적은데 비싸서 감을 대신해 사과를 사 온 거란다.
결국 아내한테 비싼 감을 사다 줄 필요가 없다는 게 아니겠는가.
처먹든 말든 아무거나 갖다 주면 된다는...
난 사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남편의 이런 행동에 난 할 말을 잃었다.
뭐가 먹고 싶냐고 물어봤을 때의 고마운 그 맘은 이미 사라졌다.
그러니 나로선 드는 생각은 본인 거만 사러 가기가 미안하니
물어본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남편 맘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왠지 씁쓸하다.
더 어이없는 건, 맘 상해하는 내가 이해가 안 된단다.
내가 이러는 건, 단감을 못 먹어서가 아니다.
그깟 단감 안 먹으면 어떠랴!
‘아니 내가 사 달라한 것도 아니고 본인이
물어보길래 대답을 한 거고, 남편은 알겠다고 했으면 말에 책임을 져야 하지 않는가’
휴! 슬퍼진다.
남편한텐 내가 감이 아닌, 사과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에 그렇다.
내가 내 돈으로 사 먹을 거다.
남편이여 그러니 아까워 맘 졸이지 말고
맘 편히 가지소서.
이젠, 묻지도 마라
“뭐 먹고 싶냐고”
괜히 인심 쓰는 척하며 사람 염장만 질러놓을 바엔,
이젠 더 이상 기대도 하지 않을 테다.
그래야 서로 상처 안 받고 선한 마음
다치지 않을 테니까.
기대를 거둔 지 오랜데, 어쩌다 그날은 그랬는지 ...
제가 속이 좁은 걸까요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