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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만 May 08. 2017

알 마디나 호텔

2030년 5월 26일


비행기가  공중을 천천히 선회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 기내 점멸등이 켜지는 소리가 몇 차례 반복되었다.  고개를 살짝 기울여 창 밖을 내다보자 가지런한 시가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승무원 몇몇이 부지런하게 통로를 오가며 승객들의 벨트 착용 여부와 의자 등받이가 제자리로 돌아와 있는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얼마만인가?  햇수로 따지면 대략 10년 만이었다.


여권에 붙은 방문 비자 확인이 끝나고 가방을 찾아 공항 청사를 걸어 나오자 오후 4시경의 햇살이 다소 따갑게 느껴졌다.  선글라스를 주머니에서 꺼내어 쓰고 주변을 둘러보자 호텔 상호가 선명하게 적힌  흰색 GMC 차량 한 대가 비상등을 켜 둔 채 대기하고 있었다.  차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사에게 내 이름을 확인시키자 는 서둘러  내 가방을 차 뒷좌석에 실어 주었다.  차가 천천히 공항 인근을 빠져나왔다.  


공항도로에서 순환도로로 진입한 차량이 차츰 속도를 줄였다.   옛 기억의 흔적을 좇아 창 밖으로 한동안 시선을 옮겨 보다가 운전기사에게 이것저것을 묻기 시작했다.  운전기사는 인도 사람이었다.  30대 초반의 나이인 그는 이 곳에 온 지 이제 5년이 다 되었다고 대답하며 내게 이 곳 방문이 처음이냐고 했다.  내가 고개를 살짝 저으며 이전에 이 곳에서 얼마간 지낸 적이 있다고 대답하는 순간 차가 순환도로 옆  '파키스탄 궁전'의 대추야자 숲을 지나 '우후드 산'을 오른쪽으로 지나고 있었다.


2차 순환도로를 벗어 난 차가 빌딩 숲 사이로 들어서는 찰나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순간이 이내 찾아왔다.  옛 기억을 떠올리다 말고 살짝 멍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넓게 뻗은 도로의 이정표에는 'طريق دار الهجره(다르 알 히즈라 도로)'라고 크게 적혀 있었다.  5분 정도 신호등 대기를 마친 차가 도착 한 곳은 호텔 정문이었다.  운전기사와 악수를 하고 차에서 내려서자 호텔 문을 지키고 있던 직원이 차에서 가방을 내려 리셉션 앞 까지 옮겨 주었다. 여권 확인을 마친 후 배정받은 방은 808호실이었다.  커튼을 열어젖히자 '쿠바 모스크'에서 '나바위 모스크'까지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가방을 열어 편안한 차림의 옷으로 갈아입은 후 양치를 하고 욕실의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희끗한 머리 색깔이 염색을 다시 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넌지시 알려 주고 있었다.  객실 담당에게 전화를 걸어 스카이라운지 영업시간을 확인한 후 지갑을 꺼내어 챙긴 뒤 스카이라운지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두리번거리며 찾다가 결국 지나가는 객실 청소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고층으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에 올라 스카이라운지라고 적힌 층의 버튼을 살짝 눌렀다.


엘리베이터는 아주 천천히 올라갔다.  19층에 막 도착했음을 알리는 붙박이 모니터의 불빛이 반짝거리자 소리 없이 스르륵 문이 열렸다.  붉은색 카펫이 둥글게 깔려 있는 한적한 로비를 지나치자 스카이라운지로 통하는 유리문이 눈에 들어왔다.  입구에는 'Al Buraq(알 부락)'이라는 금색의 팻말이 붙어 있었다.  "이슬람에서 천국으로 사람들을 태워 나르는 하늘의 말을 의미하는 것일 테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문으로 들어서자 입구에 서 있던 웨이터 한 명이 "웰 컴~"하고 웃으며 다가섰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의 스카이라운지는 텅 비어 있었다.  시내 방향으로 난 넓은 통유리 옆에 자리를 정하고 앉은 후 기다리고 있던 웨이터에게 터키쉬 커피 한 잔과 물 한 병을 주문했다.  통유리 전체를 통해 쏟아져 내리 5월의 햇살이 테이블 위를 가득 덮었다.  웨이터가 내려놓고 간 터키쉬 커피의 잔을 들어 쌉싸름한 몇 모금을 홀짝이다 웨이터를 향해 담뱃갑을 들어 보이자 그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담배에 불을 붙여 물고 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시내 쪽 전경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멀리 '나바위 모스크'의 뾰족한 '미나렛(첨탑)'들이 보였고 '쿠바 모스크'로 통하는 '다릅 앗순나 거리' 주변은 여러 대의 타워 크레인들이 여전히 공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웨이터가 다가와 재떨이 하나를 테이블 위에 놓은 뒤 뭔가 더 필요한 게 없는지를 물어 약간의 잔돈을 쥐어 주었다.  


얼마를 그렇게 앉아 있었을까?  '마그립(석양) 기도'를 알리는 아잔 소리를 배경으로 해가 뉘엇 지려하고 있었다.  웨이터에게 계산서를 부탁한 후 셈을 치르고 스카이라운지에서 1층 로비로 내려가는 길을 물었다.  엘리베이터를 한차례 갈아타고 1층 로비까지 내려온 후 호텔 정문을 빠져나와 길게 뻗은 도로를 천천히 걸었다.  어느덧 거리에는 가로등의 불들이 하나 둘 켜지고 있었다.  도로변에 줄지어 선 대추야자 나무들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 유난히도 반짝거렸다.


긴 도로의 중간에는 물을 뿜는 대형 분수대가 하나 서 있었고 분수대를 조금 지나자 원형의 로터리가 나왔다.  로터리 중앙에 서 있는 대형 입간판에 자연스레이 눈길이 갔는데 조명을 환하게 받고 있는 간판의 하얀색 바탕 위로 청색의 글씨들이 영어와 아랍어로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그 글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는 동안 한 방울 눈물이 내 뺨 위로 흘러내리는 걸 느꼈다.


Together, Towards Tomo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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