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따라서 동네 목욕탕이라는 데를 들락거리던 시간은 솔직히 별다른 기억을 내게 남기지 않았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유별하다는 그 자각이 없었던 날들이었고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에 대해 까마득히 모르고 지내던 세월과 별반 다름없었다.
목욕탕을 나서면서 엄마가 사 주시던 요구르트와 백설탕 잔뜩 묻힌 왕 꽈배기 생각을 했고 설령 탕 주변에서 같은 반 여자애와 한 번씩 마주치게 되었다 한들 어색한 부끄럼도 없었으리라. 시간이 지나갔고 동네 목욕탕을 지나칠 때마다 내 얼굴이 한 번씩 붉어질 무렵부터는 남탕의 탈의실 한 구석에서 조심스럽게 옷을 갈아입는 일도 문득 어색한 일이 되어 있었다.
사춘기 무렵에 들른 수영장에서는 유독 나이 든 아저씨들의 한결같이 볼록 나온 배가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수영복 하나만 달랑 걸친 그 몸뚱이에서 유독 볼록 나온 그 배들이 모두 낯설어 보였다. 그러다가 군대를 전역하고 학교도 졸업한 몇 해 후에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나 또한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동네 목욕탕에 들를 때면 점차 불어나는 내 몸집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마흔을 넘어서 부터는 또 다른 일들이 생겼다. 샤워를 마친 후 내 정수리 인근에서 빠져나간 한 움큼의 머리카락으로 인해 이발소를 방문하는 일이 더 이상 내게 마음 설레는 일이 되지 않았고 인터넷 검색으로 '알로페시아'니 '프로페시아'니 하는 단어들을 줄곧 검색하게 했다. 한 번은 허리가 갑자기 아파 병원에 들러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척추 신경이 흘러나온 디스크에 눌려서 생기는 '퇴행성 질환'이라는 알 수 없는 의사의 진단을 낯 선 모니터 속의 척추를 들여다 보며 십여분 이상 듣고 있어야 했다.
안경을 쓰지 않던 내가 수정체의 탄력이 떨어져 돋보기를 챙겨야 한다거나 '라식수술'을 했다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들에 하나씩 귀 기울이게 된 요즈음엔 하루가 저물어 욕실의 거울 앞에 선 나의 모습에서, 사춘기 무렵 낯설게 느꼈던 수영장 아저씨들의 모습을 아주 찬찬히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