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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만 Jun 03. 2017

오래전, 그 여자

마그달라(Magdala)


사내가 그 마을의 초입에 막 들어서던 시간에 날은 이미 꽤 어두워져 있었다.  그의 일행 중 하나가 마을 외곽의 주막 한 곳에 숙소를 정하여 사내를 그곳으로 안내하였으나 마침 유월절이 가까워 그곳에는 빈 방이 하나뿐인지라 사내만 주막에 남기고 다른 이들은 인근에서 각자의 잠자리를 구하느라 전부 뿔뿔이 흩어졌다.


주막집 나이 든 여종 하나가 사내에게 간단한 요깃거리를 제공하며 그의 행색을 유심히 살피다 이내 자리를 떴다.  저녁식사를 마친 사내가 여종에게 발 씻을 물 한동이를 구하자 여종은 사내를 다시 한번 흩어본 후 방으로 가져다주겠노라고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방으로 돌아온 사내가 좁은 창으로 들어오는 달빛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을 무렵 베일을 뒤집어쓴 여자 하나가 물 한 동이를 들고 방문을 불현듯 두드렸다.  사내가 그 여자로부터 물동이를 받아 옮기려는 순간 여자가 몸을 숙여 사내의 발 앞에 말없이 물동이를 놓고 앉았다.  


여자가 사내의 낡은 튜닉을 조심스레 걷어 올리자 사내의 맨 종아리가 반쯤 드러났다.  여기저기 물집이 잡히고 굳은살이 밴 사내의 상처 가득한 발을 여자가 말없이 바라보았다.  볼품없이 된 먼지투성이 발이었다.  여자는 자신의 베일을 벗어 물동이 속의 물에 흠뻑 적신 후 그것으로 사내의 발에 묻은 흙먼지를 조심스레 걷어 내기 시작했다.  


작은 창을 통해 방 안으로 들어온 바람에 등잔 불빛이 파르르 춤을 추었다.  여자가 밤의 정적 속에서 사내의 발을 내내 씻기는 동안 사내는 여자를 지켜만 보고 있었다.  여자의 머리에서 풍기는 은은한 향유의 냄새가 방 안으로 들어온 바람을 타고 사내에게로 전해질 무렵 여자는 사내의 젖은 발을 자신의 긴 머리카락으로 닦아 주었다.


"여자야.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사내가 입을 열자 그제야 여자가 고개를 들어 사내와 눈을 맞추었다.


"비천한 계집이 무슨 이름이 있겠습니까?"


사내가 여자의 눈을 한동안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검은 눈동자 속으로 등잔 불빛이 아른거렸다.


사내는 그 여자를 바라보며 한 순간을 생각해 내었다.  일전 성전에서 그녀와 일면식을 가졌다는 사실을 이내 기억해 내었지만 그녀 앞에 별다른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남자와 여자 간에 행해지는 간음은 결혼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라 내 아버지께서도 엄히 금하신것인데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가 간음을 범하였을 때 다윗도 함께 했더니 결국 그 죗값을 나중 피할 수가 없었다."


"저를 기억하고 계십니까"하고 여자가 물었다.


"그 날 네게 사람들이 몰려와 그들 손에 돌이 들려 있을 때 내가 네게 물어 이 자리에 있는 자들 중 너와 관련된 자들의 이름을 모두 대라 하지 않았더냐?  내가 땅 위에 너의 호명하는 자들의 이름을 하나씩 적어 나가자 그 자리에 몰려들었던 이들이 하나 둘 자신의 이름이 호명될까 저어히 여겨 자리를 피하였다.  얼마나 이 세대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인가..."


말을 이어가는 내내 사내는 표정의 변화가 없었으나 이미 여자를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는 듯이 그의 말투는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여태 절 기억하고 계셨습니까?"


여자의 눈에서 굵은 눈물 한 방울이 바닥으로 뚝 떨어지더니 금세 어깨를 들썩대며 여자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사내가 여자의 어깨에 손을 얹고 우는 여자를 조심스레이 달랬다.


"여자야... 울음을 그쳐라.  너의 조상들을 내가 안다.  그들은 가나안 족속이라.  아브라함과 롯의 다른 자손들인 암몬인과 모압인 그리고 사마리아인, 나바티아인, 아람인들에 대해 편견을 갖지 않았고 비록 풍족하진 않았으나 그 이웃들에게 죄짓지 않고 하나님의 율법을 대대로 지키며 살았다.  이제 네가 한 푼 '데나리온'의 유혹에 죄짓지 않고 너의 조상들처럼 네 이웃을 위해 살고자 하니 그것으로 모두 되었다.  네 마음속 생각을 괴로워 말고  더 이상 슬퍼하지도 말아라."


"제가 이제 어찌해야 좋겠습니까?  저는 오랫동안 죄인이었습니다.  죄인이 감히  누구를 섬길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저에게 이제 죄짓지 말고 살라 하였으나 제가 그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제가 알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부디."


여자가 사내의 튜닉 자락을 붙잡고 울음을 그치지 않자 사내가 여자의 손을 잡아 주며 조용히 달랬다.


"너는 '마그달라(Magdala)'라.  내가 이 탑으로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능히 이기지 못할 것이다. 너는 시몬이라 불리는 베드로와 더불어 그 바위 위에 무너지지 않을 믿음의 탑을 세워라."


말을 마친 사내가 여자를 겨우 일으켜 세워 돌려보내자 밤이 이미 깊어 있었다.  기도를 마친 사내가 문 옆에 덩그러니 놓인 물동이를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마그달라.  울지 말고 강해져야 해... 세상 앞에서.  너와 함께 할 날들이 이제는 많지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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