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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만 Jun 20. 2017

선녀와 나무꾼

어른을 위한 동화


엄격하게 정해진 연례행사 마냥 엊그제

아내는 아이 둘을 데리고 친정집엘 갔다

여행용 캐리어 가방 여섯 개를 바리바리 싸들고

내게는 손을 흔들며 다녀오겠다고 했다


하늘을 나는 날개옷은 비록 아니지만

날개 달린 비행기를 타고 장장 열네 시간을

날아 간간이 카카오 톡을 통해

잘 다녀오겠다고 했다


아주 어린 내 독서의 기억 속이라 그 내용이

머리 속에 썩 남아있진 않으나 아내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나는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

하나를 마악 생각해 내었다


나무꾼과 선녀의 결혼생활이 내내 어떠

이야기 속에선 어느 누구 하나 말해주지 않지만

어차피 부부간의 일이란 당사자 아니면

아무도 섣불리 말할 수 없는 법


그래도 곰곰이 생각을 해 보자면

나무꾼은 왜 선녀의 친정 나들이에

그토록 인색했던가


굳이 아이들을 볼모로 하여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고만 했

날개옷을 주지 말라던 사슴은 진정

나무꾼의 편이을까


아내가 남기고 간 전기밥통 한 가득한 밥을 바라보면서 선녀도 차마 마음이 안놓여

가마솥 가득 감자나 고구마 따위를 쪄 두고 갔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다가


긴긴 여름이 마침내 그 바닥을 드러내고

바야흐로 아이들 방학이 막바지에 이를 즈음에야

아내는 다시 들고 간 빈 가방을 꽉꽉 채워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돌아올 것이라

달력 몇 장을 만지작 거렸다


가만가만 그런데 선녀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무꾼에게 돌아왔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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