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숲에서 만난
가을 낙엽길에 은행알 떨어지듯
타흐리르 광장 '무감마' 들어가는 진입로 입구에는
다 익은 대추야자 열매들 후두둑
바닥을 구르고 있었지
연례행사처럼 돌아오는
비자 발급을 기다리다
가을 볕 피해 반갑게 들렀던
카이로 아메리칸 대학교 구내서점
1049 페이지 짜리 '아라비안 나이트'
빽빽한 이 활자의 숲속엔 천 하룻밤 내내
샤흐라자드가 들려 주던
그 이야기들 모두 꽁꽁 숨었나
이야기 속 주인공
잠자는 마신을 깨우느라
낡은 램프 소심하게 문질러 보았듯
책 속 페이지 몇장 혹시나 뒤척거리다
읽힐지 말지는 영 모르겠다만
책꺼풀은 또 왜 이렇게 멋지게 보여
에라 책 한 권쯤 하는 소박한 욕심에
덜렁 사고 말았다.
[페르시아어 '샤흐라자드'의 이름이 가진 뜻은 '도시에서 태어난'이라고 한다
하지만 같은 문자로 읽히는 아랍어 뜻은 '늘어난 달'이다
개인적으로는, 왕에게 들려 준 기묘한 이야기로 인해 하룻밤으로 끝나고 말 운명을 천 하룻밤으로 늘여 놓았던 그녀에게 더 적합한 이름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