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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사랑하시는 제자

Beloved Disciple

by 오스만

다시 그 해의 유월절이 가까워 오자 예루살렘 성문 안팎으로 드나드는 사람들의 왕래가 훌쩍 늘어났다. 유대 땅 각지에서 양 떼를 몰고 성 안으로 몰려드는 목동들의 행렬과 성전을 방문하려고 시골에서 막 상경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한데 어우러져 명절이 비로소 가까워졌음을 실감 나게 했다.


사내가 성전에서 열렸던 삼 일간의 '산헤드린' 회합을 마치고 빠져나온 시간에 '칼리굴라' 황제의 명을 받아 유대 지역을 관할하는 '무를루스' 휘하의 장교들이 늘어난 군병들을 예루살렘으로 통하는 길목 곳곳에 새로 배치하며 예루살렘 주변의 경계를 한층 강화하고 있는 모습이 유독 사람들의 눈에 띄었다.


성전 맞은편으로 보이는 모리아 산이 봄을 맞아 환하게 그 색이 변해 가는 걸 바라보던 사내는 길가에 함부로 핀 무화과나무와 올리브 나무줄기에도 물이 차 오르는걸 무심히 보던 중에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상념에 잠겼다.


"메마른 겨울이 지나니 또 봄의 새 기운이 차 오르고 있구나... 하나님의 섭리가 참 이렇게 위대하시다."


사내는 무화과나무에 무화과 열매가 맺히어 있는지 이리저리 살피다 가지에 달린 무화과 몇 개를 발견해낸 후 반가운 미소를 짓고는 손으로 그걸 따서 입고 있는 튜닉 위로 비스듬히 메고 있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사내가 집으로 돌아온 시각엔 집안 여기저기서 하인 둘이 그날 밤을 맞기 위해 분주한 몸짓으로 등불을 켜고 있었다. 그중 나이 든 하인 한 명의 마중을 받으며 사내가 집 안으로 막 들어섰을 무렵 주인이 집에 도착한 걸 전해 들은 여종 하나가 사내 앞으로 급하게 달려왔다.


"주인님. 지금 한 번 가 보셔야 하겠습니다. 어제 아침경부터 큰마님께서 아무것도 드시지 않으십니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여종을 앞세우고 별채로 통하는 좁은 회랑을 지나 사내가 방으로 황급히 들어서자 덩그러니 휑한 방안에 등잔 하나가 불을 밝히고 있었다.


침대 옆에는 이미 식어버린 점심 무렵의 음식들을 담은 그릇들이 손도 하나 대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었고 그 방의 주인 곁을 옆에서 지키는 '마리아 막달레나'가 우두커니 웅크리고 있었다. 침대 곁으로 다가사내가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말을 건넸다.


"성전 의회에서 유월절 회합이 있어 삼일 동안 어머니께 안부를 통 여쭙지 못하였습니다. 여종으로부터 어머니가 통 식사를 하지 않으신다고 들었습니다만 그간 무슨 일이 있었고 또 어머니께서는 건강이 좀 어떠하신지요?"


사내의 말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소리 없는 울음을 왈칵 터트렸다.


"어제 아침부터 식사를 전혀 하지 않으시려고 하십니다. 저러다가 크게 잘못되실까 그게 참으로 걱정입니다."

사내가 침대 방향으로 나지막하게 "어머니. 어머니... 저 왔습니다. 왜 식사를 전혀 하지 않고 계세요?" 하고는 몸을 숙이자 침대에 누웠던 그녀가 슬며시 감았던 눈을 반쯤 떴다. 잠시 눈꺼풀을 몇 차례 더 깜빡이던 그녀가 몸을 침대에서 일으켜 세우려 했다.


"누워 계세요. 어머니. 식사도 통 못하셨는데. 지금이라도 당장 의원을 부르겠습니다."


그녀가 사내의 손을 잡고는 힘없이 양 옆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러지 마세요. 의원으로 고칠 수 있는 일이 아닌걸 잘 알지 않습니까? 이제 마침 때가 된 걸 제가 알아요. 그동안 너무 염치없이 폐만 끼치며 지냈죠."


"그런 말씀하시지 마세요. 당신은 제 어머니가 아니십니까? 제가 오히려 소홀히 해 드려 항상 죄송할 뿐인걸요. 제게 부족함이 있다면 망설이지 마시고 꾸짖어 주세요."


사내의 말에 침대에 누운 여자가 애써 미소를 지어 보이려 했으나 그 얼굴은 생의 기력이 역력히 쇄 한 모습이었다.


"어제 새벽녘에 그 아이가 나를 불쑥 찾았답니다. 어린아이적 모습 그대로 티 하나 없이 세상모르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이 방 안으로 막 뛰어들어서는데 방 안이 아침 해처럼 환해지는 기분이었답니다. 그 아이가 이제는 그만 자기와 함께 지내자고 보채며 내 품속으로 뛰어들었지요."


사내가 마리아 막달레나를 한 번 쳐다본 후 여자에게 말했다.


"어머니. 꿈을 꾸신 게지요?"

"꿈이 아닙니다. 분명 그 아이였어요. 내 품 속에 안겨 환하게 웃던아이의 모습이 도무지 잊히지가 않는걸요."


사내가 여종을 다시 불러 시드르 나무에서 딴 꿀 한종지를 더운물에 타 오도록 시킨 후 들고 온 주머니 속에다 넣어 두었던 무화과 몇 개를 마리아 막달레나 앞에 조심스레이 꺼내어 놓았다.


"그분께서 평소 즐기셨던 무화과 열매가 보이길래 문득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맛이라도 보게 해 드려야 할 텐데요."


마리아 막달레나가 사내로부터 무화과 몇 알을 받아 들고 침대에 누운 그녀와 사내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 이내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내가 이런 상황에 겸연쩍은 표정을 짓다 다시 시선을 돌려 침대에 누운 여자에게 물었다.


"어머니. 그분이 다른 말씀은 하시지 않던가요?"


사내의 질문에 여자의 입술 주변이 가볍게 떨려 왔다.


" 그 아이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 아이의 몸을 껴안고 멈추지 않는 울음을 터트린 것 말고는 어느 것도 할 겨를이 없었는걸요..."


"어머니. 제가 그분 가시고 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의 이야기를 틈틈이록해 두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보고 들은 것들 말고도 아직 알려지지 않은 많은 일들을 상세히 기록해 두는 것이 제 삶의 소명이라는 생각이었고 또한 그분이 제게 주신 온전한 역할이라는 생각으로 일들을 줄곧 해올 수 있었습니다. 혹시 어머니께서 그분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를 더 들려 주실이 없으신지요?"


여종이 마침 꿀 물 한종지를 들고 들어오자 사내가 그 종지를 건네어 받아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다시 건네었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도움을 받은 채 나무 침대에서 반쯤 몸을 일으켜 세운 그녀에게 마리아 막달레나가 조심스럽게 종지에 든 꿀물로 그녀의 입술몇 차례 축였다.


"내 태가 채 열리기도 전 흰 옷을 입은 천사 하나가 내 앞에 나타나 그 아이가 내게로 올 것을 미리 알려 주었지요. 남자를 알지 못했던 내가 아이를 낳는다는 일도 알 수 없는이었으나 여자로서 아직 아이를 품을 몸이 아니었는데 마침 그 꿈을 꾸고 난 얼마 후에 내 태가 열리는 걸 경험하였답니다."


여자의 말에 사내가 몇 마디를 거들었다.


"아브라함의 처인 사라가 나이 아흔 살이 넘어 첫 아이인 이삭을 몸에 품었듯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란 원래 그이겠지요."


사내가 여자의 얼굴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남은 이야기를 더 기다렸다. 여자의 얼굴은 마치 어제 일을 회상하기라도 하는 듯이 상기되어 있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어느 누가 온전히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요. 그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젖을 막 떼었을 무렵 제 몸 태가 비로소 닫히는 일이 일어났답니다."


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가 하는 다른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제 마지막 부탁을 하나 들어주시겠습니까? 그 아이가 잠시 머물렀던 그 무덤이 여전히 비어 있다면 제가 그 아이의 곁으로 갔을 때 저를 부디 그곳으로 보내 주세요. 그 아이가 누웠던 바로 그 자리로 말입니다. 평생 눈물외에는 그 아이에게 하나 것 없던 이 어미가 세상에 바라는 마지막 소망입니다."


그 순간 사내는 몇 해 동안 비워 두었던 무덤 하나를 생각해 내었다. 어느 해인가 자신 사용하기 위해 마련해 두었던 곳이었으나 한차례의 사용이 있은 후 여전히 주인 없이 비워진 곳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 그곳은 그분이 돌아오시기 전에 제가 그분이 돌아오시기를 간절히 다렸던 곳이었고 이제는 온전히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준비된 곳입니다."


여자가 사내의 대답에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는 표정을 짓다가 반쯤 앉아 있는걸 힘겨워하자 마리아 막달레나가 그녀를 침대에 조심스레이 눕혔다. 사내는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말고 집안 대소사를 관장하는 집사를 곧 방으로 불러내어 몇 가지 일을 일렀다.


"내 어머니께서 하나님의 나라로 곧 가고자 하시니 지금 베다니 '나사로'의 집과 성전 밖 '니코데모'의 집으로 사람을 보내 그들을 급히 이리 부르고 가장 빠른 인편으로 갈릴리에 있는 '베드로'와 그분의 형제. 자매들에도 사람을 보내 사연을 전하고 급히 예루살렘으로 올라 오라 전갈해라. 초와 세마포와 향유 백근 가량을 넉넉히 준비하되 이 모든 일이 밖으로 일체 드러나지 않게 은밀히 진행해라."


집사는 사내가 이른 말꼼꼼히 전해 들은 후 종 하나를 데리고 황급히 집을 빠져나갔고 사내는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어머니의 상태를 계속 더 지켜봐 줄 것을 한번 더 부탁하고는 여종 한 명을 불러 남긴 후 그 방을 나섰다.


사내가 여자를 방에 남기고 밖으로 나왔을 때 밤하늘은 유월절이 가까워진 달로 온통 환했다. 뜰 앞에 혼자 선 사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주여... 당신이 사랑하시던 제자입니다. 세상의 눈을 피해 여전히 저를 세상 사람들 앞에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여 당신 앞에 서기 참 부끄러우나 참으로 제게 보여 주셨던 주의 그 마음이 오늘따라 더 그립습니다. 당신께서 골가타 언덕 위에서 제게 부탁하셨던 그 어머니를 이제 당신 곁으로 다시 보내 드려야 할 때가 되었사오니 주여 부디 우리 어머니의 영혼을 평안히 받아 주십시오. 당신께서 영영 제 곁에 계신 것을 믿습니다. 당신과 함께 있었던 일들을 제가 증언할 것인데 그 시작은 이러할 것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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