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엔코딩 설정 까딱 잘못 돼
배달 된 메일 하나를 열다 말고
우두컨한 표정 짓고
모니터 화면만 물끄러미 바라보듯이
나는 희랍 문자들 줄줄이 나열된
모나스트라키 지하철역
걸어나와 비둘기 떼 바닥을 쪼아대는
광장 돌바닥의 한켠에 앉았다
투명한 풍선, 붉은 장미를 팔던
어린아이 손 잡은 여자가 행인들에게
한송이 장미 풍선 하나 건네어 보지만
그들은 고개를 몇 차례 흔들었다
동서남북 골목에서 사람들은 쏟아져
들어와 벼룩시장 쪽으로 혹은
신타그마 광장 쪽으로
아니면 그 반대 방향으로 사라졌다
광장을 채운 사람들 돌계단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고
나는 그들이 밤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낯 동안 비둘기들 쪼아댔던 돌바닥 위로
어느덧 어둠이 내려 앉으면
언덕 위 아크로폴리스에서 시작한 점등
언덕 아래 골목길로도 이어졌다
한 닢 드라크마 동전도 없이
모나스트라키 광장 여기저기를
채우고 앉은 사람들은
철학의 밤을 즐기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