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스만 Dec 28. 2018

맛 대 맛

사우디 아라비아는 뜨거웠다.  연일 46도를 기록하는 수온주의 표면이 뜨거웠고 S사에 파견된  직원들 간에 벌이는 열띤 요리 경쟁이 막판 스퍼트를 향해 가며 그 뜨거운 열기를 더하고 있었다.     


인구 110만의 도시 '알 마디나'는 이슬람의 메신저였던 무함마드가 ‘메카’에서의 박해를 피해 이주했던 '야스립'이라는 조용한 오아시스 마을이었다.

       

이 곳에서 그 힘을 키워 고향 메카를 탈환하면서 명실상부하게 이슬람의 '인큐베이트' 역할을 했던 도시로 오늘날 전 세계 무슬림들은 이 도시를 '빛나는 도시', '예언자의 도시', '메신저의 도시'로 호칭하며 이슬람 세계의 두 번째 성지로 여기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곳이 메카(전 세계 무슬림들의 기도 방향/아랍어로 ‘끼블라')와 더불어 대표적인 이슬람의 성지이다 보니 해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수많은 성지 순례객들을 위한 숙박시설이 여실히 부족한 상황을 오랫동안 겪어 왔고 이 상황이 쉽게 해결되지 않고 있는 데 있었다.     


한국의 S사는 사우디 아라비아 국부펀드인 F사에 자사의 지분을 팔아 현지에 법인을 설립했고 S사의 사우디 아라비아 법인은 그 첫 번째 사업으로 이 곳 알 마디나에 들어설 150개의 신규 호텔 계획 중 5개 호텔을 우선 시공하게 되었다.  알 마디나 '타이바'지역에 직원 숙소를 정한 S사는 우선적으로 한국인 직원 스무 명을 이 곳에 파견했는데 비자 발급이 지연되어 이들에게 식사를 전담해 줄 요리사의 채용이 계속 늦어지게 되었다.   

  

S사의 관리팀장 H는 직원들 중 2인 1조로 식사 당번을 정해 매일 식사를 준비하는 안을 냈고 대안이 없었던지라 대부분 직원들이 이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해외근무자에게 있어 빨래와 청소 그리고 요리를 하는 일은 매우 귀찮은 일로 인식되었기에 식사 당번이 돌아오는 순번 자들은 마뜩잖은 표정으로 밥이나 태우지 않으면 되겠지 하는 심정이었다.  일부 식사 당번들은 햄버거를 사다 나르기도 했고 또 다른 당번들은 라면 등의 인스턴트 음식을 끓여서 냈다.   

  

그러다가 이 소동이 벌어지게 된 계기가 생겼다.  건축 담당부서의 L이 만든 '김치찌개'가 대단한 호평을 받게 되었고 현장 소장의 제안으로 기립박수를 받던  L을 바라보던 직원들의 눈빛이 시샘과 부러움으로 번뜩이기 시작했다.    

   

당장 다음 날 식사 당번을 맡은 P와 J는 전날 늦게까지 마트에서 장을 본 후 '찹 스테이크'와 '닭볶음탕'을 점심. 저녁으로 연달아 냈고 이 역시 직원들의 호평으로 이어지자 다음날 그리고 그 다음날 식사 당번을 맡은 팀들이 연거푸 '인삼을 넣은 닭백숙'과‘메추리 양념구이', ‘오징어 풋고추볶음' 등을 내면서 이것이 단순한 식사 준비가 아닌 각 부서의 사활을 건 남자들의 자존심 대결로 비화하고 만 것이다.   

  

토목 시공 담당인 B는 고심했다.  지방에서 올라 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4년간 자취생활로 단련된 그가 아니었던가?  자존심과 오기가 절로 발동했다.  게다가 건축부서에 자신의 부서가 밀려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그를 더 초조하게 만들었다.

        

식재료만 조달된다면 호텔급 요리도 전혀 불가능하지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평소 국내에서 방영되던 요리 프로그램도 챙겨서 보아 왔던 그였다.  기립박수받는 L의 우쭐했던 그 모습이 쉽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본인이 당번인 날 회사의 사우디 담당 C 전무가 이곳 알 마디나 현장에 방문하기로 되어 있지 않은가?  두 주먹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인터넷 검색 창을 띄우고 호텔 뷔페 메뉴들을 눈으로 훑었다.  평범함을 버리고 고급하고 럭셔리하게 가자.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절대 요리의 세계로 가는 거야.  

   

대망의 그 날이 왔다.  새벽같이 일어 나 오늘 받게 될 기립박수를 생각하니 슬그머니 미소가 나왔다.  준비한 메뉴는 ‘쇠고기 너비아니'와 ‘생선 고추장 양념 숯불구이'이다.   

    

한국인이라면 말할 것도 없고 세계 어디에 내어 놓아도 손색이 없을 요리라고 자신만만하게 생각을 했다.  같이 당번을 맡은 D에게 조차 비밀로 했던, 말 그대로 극비에 속한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것이다.  

   

관련 요리법은 인터넷을 통해 몇 차례 숙지를 해 두었고 해당 재료도 이미 손질을 마쳐 둔 상태였다.  모든 과정이 완벽해 보였다.  C 전무의 흐뭇한 눈길이 벌써 느껴졌다.  오늘 또 한 차례의 기립박수가 쏟아질 것이고 그 주인공은 바로 자신이 될 것이다.   

    

주방을 들어서는 다리가 살짝 후들거림을 그는 느꼈다.  게다가 현지에서 구하기 쉬운 숯으로 불을 피워 직화구이의 참맛을 오늘 제대로 전할 수 있을 것이었다.     


재료 준비와 양념을 하는 과정도 순조로웠다.  같은 당번인 D도 부지런하게 B가 준비하는 과정을 옆에서 도왔다.  실내를 벗어 나 주방 옆 공간에 숯불을 피우고 이제 고기를 구우면 끝이다.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니 식사시간까지 아직 충분한 시간이 남았다.     

  

양념이 잘 밴 쇠고기와 생선을 숯불 위 석쇠 위에 올리자 그 냄새가 미각을 자극하여 입 안 가득 군침을 돌게 했다.       


"성공이다.  완전 대성공이다.  내 인생의 전기를 쓸 때 오늘을 반드시 기억할 것이다.”     

B의 머릿속이 한없이 즐거워졌다.   

  

식사시간이 임박하여 손이 마구 바빠질 무렵 경찰 사이렌 소리가 가까이 들려왔다.  그리고 한 무리의 현지인들이 숙소 문을 쾅쾅 두드리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일까?    

 

 아뿔싸……. 해가 떠 있는 낯 시간 동안 금식을 해야 하는 ‘라마단' 기간임을 그들은 잠시 잊고 있었다.  동네 여기저기 숯불에 구운 고기 냄새. 생선 냄새가 진동을 하자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었다.     

  

숙소로 들이닥친 3명의 경찰관들이 주방에서 물을 길어 와 불길이 활활 타 올라오는 숯불 위로 물을 부었다.  그리고 애써 구워 놓은 점심거리를 검은색 쓰레기 봉지에 모두 털어 넣더니 경찰서로 동행을 요구했다.   B의 어안이 대략 벙벙해졌다.    

   

B가 경찰서에 출두하여 현지인 직원의 안내로 진술서를 쓰는 동안 S사의 남은 직원들은 부랴부랴 라면을 끓였다.  숙소를 방문한 C 전무는 차려진 라면을 앞에 두고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빨리 요리사 비자 해결해서 현장 도착시키도록 하세요.…….”     


악마는 디테일에 산다.

작가의 이전글 그 콩은 어디서 왔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