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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만 Dec 28. 2018

별똥별

"지금도 가끔 밤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볼 때면 그때 생각이 나곤 해."


워낙에 까마득한 옛날 일이라 그런지 지금에 와서 그 기억을 더듬어 보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아.  하지만 그 해 여름 아버지가 내 열두 살 생일날을 기념해서 작은 오리 한 마리를 선물로 주셨던 기억이 있는 걸로 봐서는 열두 살 되던 해 여름이 막 끝나 가던 계절이었다고 생각을 해.  그 시절에는 열두 살 여자아이의 생일을 기념해서 새끼 오리 한 마리를 선물해 주는 것이 대유행이었지.     


나의 아버지께서는 고기를 잡는 어부셨어.  이른 아침마다 안갯속으로 노를 젓는 작은 배를 가지고 나가셔서 오후 햇살이 저물 무렵에야 생선 몇 마리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시곤 했었지.  아버지가 늦는 날이면 난 강가에 혼자 앉아 아버지를 기다려 보거나 석양이 지는 테베 강물 위로 넘실거리는 물결을 하나씩 세며 아버지가 선물로 주셨던 오리에게 전날 먹다 남은 빵 부스러기를 하나씩 던져 주곤 했었어.  

   

그날도 아버지께서는 많이 늦으셨어.  저녁 해가 강물 위에 마지막 빛을 던지고 멀리 대추야자나무 숲으로 성큼 넘어가는 시간까지 아버지와 아버지의 작은 배는 내 눈에 좀처럼 보이지 않았지.  강가의 나무 등걸 위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내게 말을 거는 목소리가 그때 들려왔어.   

  

"여기서 살고 있니?”     


내가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다보니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남자아이 하나가 나를 보며 빙긋 웃고 있었지.  난생처음 보는 아이였어.     


말끔해 보이는 옷차림에 금실로 수를 놓은 신발을 신고 있던 그 아이는 처음 보는 내게 상냥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내가 앉은 나무 등걸에 같이 앉아도 되겠느냐고 물었지.  유심히 눈여겨보니 그 아이는 심하게 한쪽 다리를 저는 듯 보였어.  나는 조금 옆으로 자리를 옮겨 앉은 뒤 그 아이가 앉을 수 있도록 나무 등걸 위에 작은 공간 하나를 만들어 주었지.    

 

정말이지 잘생긴 아이였어. 달빛에 드러난 그 짙은 눈동자는 묘하게 반짝거렸고 곱실거리는 머리카락은 갈색이 감도는 검은색이었지.  내 나이 또래의 남자아이들이 의례히 까맣게 그을린 얼굴을 하고 있는 것에 비해 창백하리만큼 하얗던 얼굴은 그 아이의 입술을 더욱 붉어 보이게 만들었어.  엄마가 일곱 살 때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단 둘이 지냈던 나에게 그 아이는 은은한 재스민 꽃향내를 떠올리게 했어.     


믿지 못하겠지만 내 눈을 바라보며 말을 걸어오던 그 아이의 짙은 눈썹과 왠지 슬퍼 보였던 그 눈동자는 아직도 잘 잊히지가 않는데 맹세컨대, 지금도 내 눈을 감으면 그 아이의 숨결이 내 얼굴에 직접 와 닿을 듯이 느껴지곤 해.  그 아이가 웃을 때면 마치 태양신 ‘라’의 모습이 연상되었지.  

    

그 시간 밤하늘에는 많은 별들이 반짝거리고 있었어.  신들이 산다는 하늘의 세상을 그 아이와 나 단 둘이서만 바라보고 있었지.  그때 별똥별 하나가 하늘 위를 가로질러 별들 사이로 멀리 날아갔어.  내가 별똥별을 보는 내내 그 아이는 내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지.  그리고 그 아이가 내게 말을 했어. 

    

"어서 소원을 빌어보렴.  반드시 이루어진단다.”     


내가 얼굴을 붉히며 저 별똥별을 가지고 싶다고 말하자 그 아이는 상냥하게 웃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어.  서늘한 밤바람이 불어와 내가 그만 어깨를 움츠리자 그 아이는 자기 어깨를 덮고 있던 옷자락을 풀어 황금빛 망토를 내 어깨 위로 살짝 덮어 주었지. 

    

그날따라 아버지는 꽤나 늦으셨어.  강 건너 이웃 마을에 들러 일을 보고 오셨다고 했었던가?  아마도?     


그날 이후 강가에서 그 아이를 이따금씩 보곤 했었어.  저녁 해가 테베 강물에 잔잔히 잠겨 드는 시간에 그 아이는 대추야자나무 숲 사이의 오솔길을 걸어 천천히 내가 앉은 나무 등걸 옆으로 살금살금 다가왔었지.  멀리서부터 그 아이의 발자국 소리가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부터 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하고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어.  그리고 언제나 상냥한 미소를 짓는 그 아이의 두 눈을 들여다보는 내 마음은 왠지 모를 슬픔으로 가득 찼었지…….  왜 그랬을까?   

  

 어느 날인가 아침시간에 일을 나서는 아버지를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중 한 명이 자기는 이집트 왕인 ‘파라오’의 궁전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지.  그가 나를 장식이 잘 차려진 나귀의 등에 태우고 파라오의 궁전으로 데리고 갔어.  영문을 몰라 우두커니 궁전의 작은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를 찾아온 사람은 그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귀부인이었어.  그녀는 자기가 파라오의 어머니라고 했었지. 

    

나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던 파라오의 어머니는 문 앞을 지키고 서 있던 남자 한 명을 불러 뭐라고 이야기를 했어.  잠시 후 그 남자가 은쟁반 위에 작은 칼 하나를 가지고 와서는 파라오의 어머니에게 그것을 건네었지.  그리고 그녀는 그 칼을 내게로 다시 건네며 파라오가 내게 주는 선물이라고 이야기하더군.  황금으로 된 칼집에 손잡이가 황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멋진 칼이었어.  손잡이 끝에는 투명한 유리알이 반짝거리고 있었지.  내가 어쩔 줄 몰라 머뭇거리는 동안 파라오의 어머니는 내게 다가와 내 두 손을 꼭 잡아 주셨어.  왠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녀의 두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지. 

    

그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누구에게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  심지어 평소 고민을 털어놓고 지냈던 아버지에게도 말이야.  그리고 나는 그 아이가 생각날 때마다 조심스레이 그 칼을 꺼내어 보곤 했었어.  칼집을 열면 은색의 칼날이 반짝거렸는데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신비로운 광채가 거울처럼 내 얼굴을 비치게 만들었지.     

이후로 그 아이를 보지 못했고 시간은 지나 몇 번의 계절이 바뀌고 있었지.   

  

어느 늦은 날 밤 아버지가 술에 잔뜩 취해 집으로 돌아오셨어.  이집트 왕 파라오가 저승의 신 ‘야누비스’와 함께 서쪽으로 가는 태양신 ‘라’의 배를 탄다고 하셨지.  내일 아침 일찍 파라오의 마지막 여정을 준비하기 위해 궁전에서 진행되는 일에 아버지도 함께 하기로 하셨다고 했어.     


그때 나는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충분히 알 수 있는 나이가 되어버렸어.  

     

“파라오가…….  이집트의 왕인 그 아이가 죽었어.  내게 작은 칼을 선물했던 그 아이가.”     


그날 밤 대추야자나무 숲으로 난 오솔길을 걸어 테베 강가를 혼자서 찾았지.  그 아이와 함께 앉았던 오래된 나무 등걸 위에 앉아 달빛에 빛나는 강물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는데 눈물이 쉴 새 없이 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걸 느꼈어.     


좀처럼 멈출 수 없는 감정의 물결이 한동안 이어졌어.  나는 울음을 겨우 멈추기 위해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았지.  쏟아질 듯한 밤하늘의 별들이 내 머리 위에서 반짝거리고 있었어.  그때 그 별들 사이로 밝은 별똥별 하나가 긴 포물선을 그리며 서쪽 하늘로 날아가는 걸 보게 되었어.  그것이 아마도 그 아이의 영혼이었을까?  

   

다음날 새벽, 집을 나서는 아버지에게 그동안 남몰래 간직하고 있던 그 작은 칼을 건네어 드렸지.  파라오의 무덤 안에 그 칼을 함께 넣어달라고 내가 이야기하자 아버지는 내 눈을 쳐다보며 한동안 말이 없으셨어.  그리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을 꼭 잡아 주셨지.  그때 아버지는 내가 말하지 않았던 뭔가를 알고 계셨던 걸까?     

내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흘러버린 후에 이집트를 방문한 영국인 몇 명이 테베 강기슭의 사막에서 오래된 파라오의 무덤 하나를 발견해 내었어.  내게 칼을 선물했던 바로 그 아이의 무덤이었지.  그 영국인들은 그 아이의 이름을 ‘투트 앙크 아멘'이라고 불렀어.  그리고 그 아이의 무덤 속에 있던 많은 보물들 중에서 내가 그 아이에게 돌려주었던 작은 칼 하나도 함께 발견이 되었지.  나중에 사람들은 그 칼이 별똥별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어.     


"오직 그 아이만 알고 있었던 나의 소원.  바로 별똥별을 가지고 싶다고 했던 그 소원은 오래전에 이미 이루어졌다는 걸 그때야 비로소 내가 알 수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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