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참으로 긴 여정이었다. '딴자'에서 '알제'와 '수스', '따라뿔리스'를 거쳐 '룹다스 쿠브라'와 '알 이스칸다리아'를 지나오는 데에만 거의 1년 이상이 걸렸다. 옛 왕조의 흔적을 좇아 '알 카헤라'와 '카나' 그리고 '아이자브'의 길을 더듬은 것은 내 일생에서 가장 경이로운 체험이 되었으며 '베이틀 라흠'에서 '알 꾸드스'와 '안디옥'을 지나 '디마섹'을 방문하였을 때는 더 넓은 세상을 접해 보고자 하는 나의 갈망이 더욱 커졌다.
마침내 '알 마디나'와 '막카'에 도착해서야 나는 내 소망의 한 부분을 온전히 충만케 하였으나 이미 커져 버릴 대로 커진 세상에 대한 내 갈망을 더 이상 스스로에게 숨길 수는 없었다.
압바시아드 왕조의 화려한 중심부인 '바그다드'에서 다시 알 마디나와 마카로 돌아온 나는 우리 인류의 할머니인 하와의 영묘가 있는 '잣다'에서 출발하는 대상을 따라 '룹 알칼리 사막'을 피해 '니즈와'에서 배를 탔는데 우리가 탄 배가 그만 바다 폭풍을 만나게 되었다.
간신히 예멘의 아덴 항구에 도착을 해서는 기진맥진한 상황이었으나 그 혹독한 경험이 나의 의지를 온전히 꺾지는 못했다. 다시 홍해 건너에 있을 '잔지바르'와 '모가디슈'에 대한 여러 정황을 귀동냥하고 있던 무렵 나는 우연히 한 사내를 알게 되었는데 갈색 피부에 키가 크고 하얀 수염이 무척 인상적인 남자였다.
그 남자 역시 나와 같이 홍해를 건너는 여정을 준비하고 있는 듯 보였는데 무뚝뚝해 보이는 첫인상과는 달리 나의 뜬금없는 질문에도 살가운 답변을 곧잘 해 주었다. 살짝 웃을 때 스쳐 지나가는 눈가의 주름이 마치 어린 소년과도 같은 천진난만함을 느끼게 했다. 한편 그가 구사하는 아랍어 발음은 매우 명확했지만 그의 모국어는 '암하르어'라고 했다.
그는 내가 들려주는 지중해 인근의 도시들과 알 꾸드스 그리고 알 마디나와 마카, 디마섹 등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었는데 어쩌다 이야기 도중 마주친 그의 눈을 들여다보면 마치 꿈을 꾸는 듯 나를 쳐다보곤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와 작별의 순간이 찾아왔는데 그것은 그가 문득 일정을 바꾸어 '모카 지방'으로 떠난다고 기별을 전해 주었던 날이었다.
우리는 두 마리 낙타를 각각 나누어 타고 아덴에서의 마지막 밤을 함께 보내기로 했다. 항구를 다소 벗어나 북쪽을 향해 길게 뻗은 산맥의 협곡에 자리를 잡았다. 마른 나뭇가지와 덤불을 잔뜩 주워 모은 뒤 그가 준비해 온 자루에서 숯을 꺼내어 숯불을 피웠다.
저녁 어스름이 우리 주변에 내려앉았고 마지막 빛의 꼬리를 남기고 사라지는 해가 산맥의 밑바닥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그가 왜 모카로 행선을 변경했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것은 여행자의 불문율과 같은 것이었다.
“바람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것과 같이 여행자의 자유로운 영혼에는 정해 놓은 행선지가 따로 없는 까닭이다.”
숯불이 잔 나뭇가지와 가시덤불을 태워 매운 연기를 한가득 피어 올리고 난 후 그가 작은 자루 하나를 주머니에서 꺼내 입구가 넓은 그릇 위에 자루에 든 것을 한주먹 가량 쏟아부었는데 그것은 타원형 형태를 하고 연두색 빛깔을 띤 어떤 씨앗처럼 보였다.
숯불이 벌겋게 타 올랐다. 숯 불 주변에 받쳐 둔 돌멩이 위에 균형을 잡아 씨앗이 담긴 그릇을 올리고 그가 잔 나뭇가지 하나를 길게 꺾어 이리저리 그것들을 빠르게 저어 나갔다. 처음의 연두색 빛깔이 노란 황금색으로 그리고 다시 그 황금색이 짙은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하면서 낙엽 태우는 냄새 같던 것이 점점 묘한 과일 향과 뒤섞이는 듯했다.
검게 그을어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그 씨앗들을 그릇에서 나무로 된 절구로 다시 쏟아부어 이리저리 빻아 내는 동안 불빛을 받은 그의 눈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밤의 적막 속에서 숯이 탁탁거리며 타는 소리와 그가 씨앗을 빻으며 내는 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종교적 의식 속에 내가 들어와 있다는 착각마저 들게 했다. 한참 동안 절구질을 하던 그가 문득 손길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낙타에 함께 실려 온 큰 자루 속에서 도자기로 된 하얀색 주전자와 가죽 물주머니를 꺼내어 주전자에 물을 붓고 그것을 다시 숯불 위에 올린 뒤 물이 끓기 시작하자 주전자 속으로 절구로 막 빻아 낸 가루를 한 번에 쏟아부었다. 쏟아질 듯 한 밤하늘의 별빛 아래 오직 그와 나만이 숯불 하나를 가운데 두고 앉아 끓어오르는 주전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전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어떤 향긋함이 주전자의 입구에서 새어 나오는 하얀 수증기와 함께 내 온몸의 감각을 자극했다. 그가 잔 두 개를 자루에서 꺼내 주전자에 든 것을 잔 가득히 따라 내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중 하나를 내게 권했다.
"아비시니아 말로 '분나'라 부르는 것이죠. 아비시니아는 높은 산지에 위치해서 항상 봄날 같은 기후를 느끼게 하는데 그 땅에서 자라는 이 분나를 마시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머릿속의 나쁜 생각과 걱정들을 모두 잊게 해 준답니다. 저는 이 분나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홍해 바다를 건너 이 곳까지 왔답니다. 여러 사정들이 여의치 않아 모든 걸 포기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으나 당신의 이야기에 용기를 다시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제가 가지고 온 고향 땅의 씨앗들을 모카로 가져가 그곳에서 이것을 한번 재배해 보려고 합니다. 이 한 알의 씨앗이 세상 사람들 모두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군요.”
그의 말이 끝나자 나는 뜨거운 잔을 조심스럽게 들어 그 안에 든 것을 내 입가로 가져갔다. 입 안 가득 쌉싸래하면서도 구수한 향이 깊이 있게 번져 나갔다.
일찍이 세상 어디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맛이었다. 나는 그에게 내 이름이 '이븐 밧투타'이고 세상의 끝까지 직접 나의 눈으로 살펴보는 것이 이번 여정의 목표라고 이야기했고 그는 자신의 이름이 '칼디'인데 분나 열매를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힘으로 알리는 것이 그가 정해 놓은 여정의 목표라 했다.
그 날 이후 그의 소식을 더 이상 전해 들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주 나중에 내가 동쪽의 먼 나라들과 황금의 땅으로 알려진 곳들을 오랫동안 돌아 백발의 노인이 되어 겨우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를 기억해 내게 되었다.
나의 고향 딴자의 궁전에서 내 긴 여정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던 왕과 왕비로부터 한잔의 분나를 건네어 받아 마시게 되었을 때 나는 망각 없이 그의 이름과 그 성공을 온전히 기억해 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