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릅 앗순나 앗나바위- درب السنة النبوى'
창문을 열자 창틀에 들러붙어 앉았던 연기처럼 미세한 먼지가 햇살에 풀. 풀 피어올랐다. 섭씨 45도. 훅 하고 더운 열기가 열린 창을 통해 차 안으로 성큼 들이닥쳤다.
하람 지역을 지나 '쿠바아 모스크'를 향하는 길은 링 로드를 따라 길게 이어졌다. 익숙한 길이 어느 순간 끊기면서 낯 선 풍경들이 이내 다가왔다. 10여분을 더 가서야 큼지막한 이정표로 목적지가 무척 가까워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메카에서의 박해를 피해 '헤지라' 당시 처음 야스립의 초입에 들어서던 예언자의 소회는 어떠하였을까? 이런 생각으로 잠깐 상념에 잠기다 링로드를 빠져나오자 대추야자 숲이 우거진 인근 '쿠바아'모스크의 둥근 돔들이 눈에 들어왔다. 쿠바아 모스크는 예언자가 야스립에서 처음 기도를 드렸던 곳으로 이 곳에서의 한번 기도가 '우므라'와 같은 의미를 지녔다고 하는 알 마디나 3대 모스크 중 한 곳이다. 석양을 배경으로 하얗게 반짝거리는 모스크에는 들고 나는 무슬림들의 발걸음이 무척 분주했다.
쿠바아 모스크의 지척에는 금요 모스크라는 의미로 '앗주므아'모스크가 보였다. 예언자가 야스립에서의 첫 번째 금요일에 이 곳에서 기도를 드렸다 하여 금요 모스크라고 불리는 곳이다.
금요 모스크에서 중앙 모스크인 '앗나바위'모스크 까지는 약 3킬로미터의 곧은 길이 연결되어 있고 예언자가 머물며 기도를 올렸던 장소 하나하나마다 모스크가 세워져 있는 듯했다.
이 길을 '다릅 앗순나'라고도 하는데 우리말로 하자면 '이슬람의 길'정도로 표현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정조가 사도세자를 추모해 수원. 화성을 준비했듯이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는 이 길 위에 세워진 대부분의 건물들을 철거해 내고 쿠바아 모스크에서 중앙 모스크까지 약 3킬로미터 되는 이 길 위에 성지 순례객들을 위한 고급 숙박시설과 각종 편의시설들을 새롭게 세워 예언자가 걸었던 외롭고 힘겨웠던 헤지라의 과정을 다소나마 위로할 계획이라 했다.
차량 행렬이 길게 늘어선 길을 간신히 빠져나오자 드디어 '예언자의 모스크'라고 불리는 '앗나바위 모스크'의 초입에 들어섰다. 녹색의 돔은 오스만 튀르크 시대에 원래의 흰색에서 지금의 녹색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돔 아래에 예언자의 무덤이 위치해 있는데 본래 그 무덤 자리는 41살의 나이 차이가 있던 예언자의 아내 '아이샤'와 함께 지냈던 그의 방이었다가 예언자 사후에 자신을 신격화하지 말라는 그의 유지를 받들어 오각형의 벽을 둘러 세운 후 지금까지 그의 유해가 봉인된 무덤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특히 이 곳은 웅장한 차양막이 매우 유명한데 일몰 전까지 양산처럼 펼쳐진 거대한 차양막은 매우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해 냈다.
모스크 경내를 거닐며 오래전 야스립 시대의 이슬람 풍경과 예언자의 모습을 연상해 보다 게이트 앞에 세워 둔 차 앞을 서성거리는 교통 경찰관의 눈치에 황급히 차를 빼고 앗나바위 모스크 인근을 빠져나와 다시 링로드로 들어섰다. 도로변의 카르푸를 지나자 웅장한 바위산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메카와 격전을 치렀던 '우후드'산이다. 야간에는 특히 흰색의 조명으로 단장해 마치 하얀 눈이 내려앉은 착각을 가지게 했다.
우후드산 전망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천천히 언덕을 오르자 야트막한 전망대 앞으로 알 마디나시의 전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소박하지만 단정하게 꾸며진 예언자의 도시 '알 마디나'. 그곳에도 이제 밤이 내려앉고 있었다.
어스름한 빛 속에서 주차장으로 내려오다 예쁘게 지어진 '알 마디나 특산품 판매소'에 들렀다. 손님 없이 한산한 가운데 현지 아가씨 한 명이 니캅을 쓰고 판매대에 앉아 있었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하자 판매원이 내게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다소 신기해서 어떻게 아는지 되묻는 내 질문에 자기가 한국 드라마 팬이라고 하면서 초콜릿을 한 주먹 내 손에 건넸다. 내가 우후드산을 방문한 첫 번째 한국인이라고 하는 말과 함께 니깝 사이로 환한 눈웃음을 보인 그녀는 이름이 '주믈라'라 했다.
커피 한잔을 마시고 링로드를 따라 돌아오는 길에는 예루살렘에서 메카로의 기도 방향이 처음 바뀌었다는 '알끼블라타인'모스크의 새하얀 모습이 유난히 아름다웠다. 마치 신랑을 처음 맞는 신부의 수줍음 같은 모습이었다.
타이바 지역에 우뚝 솟은 산 위에 왕의 궁전이 하나 있다. '까스르 앗따이바'다. 광야에서 40일간 고행을 했던 예수에게 보인 지상의 거룩한 성채 모습이 과연 이러하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