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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스트라스부르'에서

함박눈을 맞으며 보낸 그 해 겨울 이야기

by 오스만

크리스마스를 유럽에서 지내보면 어떨까 하는 것은 나의 오랜 희망이었다. 알록달록한 전구들이 형형색색 불을 밝힌 시청 광장 앞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따뜻한 와인 한 잔을 마시며 캐럴이 울려 퍼지는 길을 걸어 보고 싶었다. 저녁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옛 시절의 성당에 들어가 '네로'가 그토록 갈망했던 루벤스의 그림을 우두커니 지켜보는 것도 무척 낭만적 이리라.

그리고 기회가 왔다. 2주간의 휴가 기간 동안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독일 등의 도시들을 기차로 돌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도 마침 크리스마스 시즌에.


네덜란드 스키폴 공항에 내려 암스테르담 중앙역을 향했다. 풍차의 나라. 안네 프랑크의 이야기와 무너지는 둑을 목숨으로 막았다는 네덜란드 소년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여정을 시작했다.

겨울 날씨는 차가웠고 바람과 함께 비까지 흩뿌리자 낭만과는 다소 괴리가 있는 암스테르담의 모습이 다가왔다. 12월 22일.

12월 23일

아침 9시경.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잔세 스칸스를 향했다. 암스테르담이 세련된 도시 남자의 느낌이라면 잔세 스칸스는 얌전한 시골 아가씨의 수줍음을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간간이 비가 흩뿌렸다.

마을 초입에 있던 나팔 부는 천사

마을로 통하는 긴 다리를 지나자 강물 위에 떠 있는 풍차들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아기 자기한 네덜란드식 가옥들이 운하를 따라 자리하고 있었고 여기저기 운하를 헤엄 치는 오리들이 무척 태평해 보였다.

잘 정돈된 모습이었다. 쇼윈도에 놓인 인형들과 주변 풍경 사이에서 눈을 번갈아 두리번거리며 조용히 길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가 튤립의 나라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사용되는 실내 장식품들 속에서 왠지 크리스마스가 성큼 가까워졌다는 기분이 새삼 느껴졌다.

나무를 깎아 만든 튤립의 색이 무척이나 곱다. 그러나 가격은 비싸다.

딸기 소녀의 모습이 아주 앙증맞다. 딸기의 요정인가?

찻잔들이 무척 예뻤다. 이런 잔과 식기를 가지고 한 끼 식사를 한다면 한층 더 식탁 위의 느낌이 남다르게 느껴지리라.

가지런하게 진열된 선반 위의 향신료 그릇들. 유독 닭그림이 그려진 것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성탄 장식품들

이게 네덜란드 태생의 유명한 '미피'라는 캐릭터 토끼인데 '딕 브루너'가 그린 동화책 속의 주인공이다. 한때 '헬로 키티'로 유명한 일본의 산리오와 저작권 분쟁을 벌이기도 했다.

미피가 그려진 나막신의 모습이 무척 앙증맞다. 하지만 모양이 앙증맞다고 가격이 앙증맞은 건 아니더라.

돈키호테가 거인으로 착각을 하고 그의 애마 로시난테와 함께 돌진했던 풍차의 모습은 저러했을까? 대학시절 조정선수였던 나로서는 이런 곳에서 배를 한번 타 보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운하의 나라답게 네덜란드는 조정경기에서 순위권에 입상하는 조정 강국이다. 유럽에서 평균 키도 가장 크니 여기가 바로 조정의 나라인가?

천천히 강변을 거닐다 보면 우리나라 양수리의 풍경이 오버랩되곤 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방문했던 양수리는 여름 장맛비 속에서 물안개가 자욱했는데 여기서는 겨울비가 이따금씩 흩뿌렸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플란더즈의 개'의 두 주인공인 네로와 아로아는 결국 서로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이 소년과 소녀의 사랑은 제발 이루어지기를. 아로아는 나중에 누구에게 시집을 갔을까?

한결같이 무뚝뚝한 표정의 남자가 있다. 빈센트 반 고흐. 그가 그린 '밤의 카페테라스'의 리플리카가 현재 우리 집 거실 벽에 걸려 있다. 휘몰아치는 그의 별빛이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유독 천재들은 왜 불운을 평생의 벗으로 삼아야 했을까?

비가 한차례 흩뿌리고 지나간 하늘에 무지개가 걸렸다. 잔세 스칸스의 하늘에 참 잘 어울리는 일곱 빛깔 무지개.

바람개비가 돌아 가면 이 목각의 남자가 바빠진다. 바람이 바람개비를 돌아가게 하는지 아니면 목각의 남자가 바람을 돌리는지 묘하게 착각을 일으켰다. 그걸 무심히 바라보는 소 한 마리의 표정이 익살맞다.

대문의 장식들이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길 가에 걸린 한 식당의 간판 속에서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고래 한 마리가 더 깊은 곳을 향하고 있는 듯 보였다.

마을을 천천히 걸어 둘러보는데 두어 시간이 꼬박 걸렸다. 날이 좀 풀렸으면 자전거를 타고 어슬렁 거려 봐도 좋았을 것이다. 커피 한 잔을 비우는데 걸린 시간까지 염두에 둔다면 세 시간. 저 철길이 구불구불하게 이어져 역과 역들이 서로 연결되고 그 이어진 길들은 또 어디까지 닿는 것일까?

반 고흐 박물관을 관람하고 나오는 길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I amsterdam"

아침에 중앙역 인근의 스타벅스에서 간단한 요기를 마치고 이제 벨기에 브뤼셀로 간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마침내 벨기에 브뤼셀에 도착했다. 와플과 초콜릿의 나라. 에르제가 그린 땡땡의 나라.

크리스마스이브인데 거리는 오히려 한산했다. 휴일을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오랜 유럽인들의 관습 때문인지. 거리에는 유독 중국인 관광객들의 길게 이어진 줄들이 눈에 들어왔고 그들의 손에는 어김없이 와플이나 감자튀김이 들려 있었다. 후렌치 프라이 감자튀김의 원조가 벨기에라는 것이 사실일지도.


땡땡과 그의 벗 밀로 그리고 트러블 메이커인 선장. 항상 고주망태가 되는 선장과 그가 망쳐 놓은 일들을 말없이 바로 잡아 놓는 땡땡의 또 다른 활약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비록 땡땡의 아버지인 '에르제'는 천국으로 갔지만. 그리고 벨기에인들은 땡땡을 모르더라. 그들이 아는 이름은 '땅땅'.

유명한 브뤼셀의 오줌싸개 소년. 크리스마스라 산타복을 입혀 놓았는데 크기가 너무 생각보다 작았다. 여전히 오줌을 싸고 있더군.

벨기에 하면 역시 와플인가? 게다가 또 다른 명물인 초콜릿과의 앙상블이 무척 조화롭게 느껴졌다.


그랑 플리스 광장에는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손에 손에 카메라를 들고 찍고 찍히고 모두가 한껏 들뜬 표정들이었다. 광장 앞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나무가 우뚝 서 있다.


인상적인 건물. 노란 색감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물어보니 유명한 식당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브뤼셀에서는 홍합이 유명한 요리라고 했던 기억이 살짝 들었다.


시내 중심에 스케이트장을 만들어 놓았다. 한밤중에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빙판 위에서 환한 조명을 밝히고 혼자 빙글빙글 돌아보면 그 기분이 어떨까?

뭔가 스파이들의 각축장으로 보이는 브뤼셀의 단면을 보여 주는 것일까?

땡땡과 미루는 기차를 타고 오늘 또 어디로 향하는 것인가? 이제 프랑스 파리로 간다. 프랑스어로 크리스마스를 '노엘'이라고 한다. 노엘은 파리에서...


바보같이 파리 역을 놓치고 리옹까지 갔다. 파리와 리옹이 TGV로 두 시간 거리인데 중간에 정차역이 없었다. 객실 역무원에게 상황을 설명했더니 리옹에서 파리 가는 마지막 기차가 있긴 한데 환승시간이 3분이라 환승이 거의 불가능하니 리옹에서 내일 아침에 출발하는 기차를 알아봐 주겠다 했다. 하지만 나는 그 3분을 놓치지 않았고 원래 도착시간에서 4시간이나 지나 도착한 프랑스 파리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나 어떡해? 프랑스어 한 마디밖에 못하는데. "봉주르"

12월 25일 노엘 아침. 대학교 신입생 시절에 보았던 '소피 마르소' 주연의 '유 콜 잇 러브'의 나라 프랑스 파리에서 나는 서성대며 몽마르트르 언덕길을 걸어 올라갔다. 가파른 계단을 헉헉거리며.

관광객들로 붐비는 몽마르트르 뒷골목은 기념품 가게들이 줄 지어 있었고 젊은 화가들이 내다 파는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파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사크레 꾀를 대성당'에서 내려다보는 파리의 전경이 인상적이었다. 성당 앞에 진을 치고 있는 거지들과 팔찌를 파는 흑인들 그리고 소매치기는 여기에 덤이다.

파리의 개선문을 지나 상제리제 거리를 걸었다. 크리스마스 아침의 파리는 인파로 북적였고 그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밝았다.

이정표를 따라 걷다 보니 에펠탑이 보인다. 어릴 적 엄마가 사다 주셨던 '사브레'라는 과자에 그려진 것이 바로 저 에펠탑이었지.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항상 세상은 경이로운 것일 텐데 내가 어른이 되면서 어린아이의 것을 버리고 살았구나. 파리의 슈퍼마켓에서 맛 본 사브레는 OO제과 사브레의 맛과 다르더라.

에펠탑은 바로 앞 지근에서 보는 모습보다는 역시 멀찍이 떨어진 하나의 풍경이 되는 모습이 제격이었다. 날이 맑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에펠탑은 파리를 돋보이게 만드었다. 쓸쓸하고 우수에 젖은 파리의 크리스마스와 에펠탑.

쁘렝땅 백화점 옥상에 올라 빗 속에서 파리 시내를 지긋이 내려다보는 시간도 나쁘지 않았다. 비록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아니었지만 비 내리는 파리도 낭만이 있었다. 게다가 옥상 출입은 돈을 받지 않았다.

센 강을 지나는 유람선을 바라보고 있으니 "여기가 바로 파리구나." "세느 강이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고색창연한 건물들 사이를 센 강이 흐르고 나의 하루도 저 강물과 함께 흘러가고 있구나. 내 시간도 내 인생도 한 번 흘러간 강물을 두 번 다시 바라볼 수 없듯이 내 기억 속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것이지.

지하철에 올라 행선지를 정하다 나도 모르게 발 길이 향했던 '미라보 역'. 이유는 모르겠지만 역의 모습이 홍콩스럽다.

'기욤 아뽈리네르'가 연인과 헤어지고 난 이후 이 곳 미라보 다리 위에서 당시의 심경을 절절이 적은 시가 생각났다. 사춘기 시절 연습장 표지에 적힌 그의 시와 일본 화가 '오오타 케이분'의 소녀 그림은 나를 또 얼마나 설레게 만들었던가?

미라보 다리에 서서 센 강이 흐르는 모습을 30여 분간 내려다보았다.

"날이 가고 세월이 지나면 가 버린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만 흐른다."

브렝땅은 프랑스어로 '봄'이라는 뜻인데 시내에 자리 잡은 쁘렝땅 백화점 내부는 봄처럼 화사했다. 둥근 유리 돔 아래 생명의 나무를 연출한 듯했다. 조명을 받아 그 빛들이 내부로 쏟아져 내렸다. 빛의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성당에 들러 성탄 미사를 지켜보았다. 유럽의 크리스마스는 요란스럽지 않았다. 스테인드 글라스 창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마리아가 두 손을 들어 빛 속에서 그 빛을 두 팔 가득 안고 있었다.

몽마르트르 인근에 자리 잡은 숙소로 다시 돌아와 짐을 꾸렸다. 스트라스부르를 거쳐 독일 뮌헨으로 떠날 시간이다.

12월 26일

지난밤 12시를 넘겨 도착한 스트라스부르의 아침이 밝았다. 유럽 최고의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다는 곳이고 '작은 프랑스 (쁘띠 프랑스)'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의 배경으로 유명한 알자스 지방 주도에 속하는 곳이다.

날이 무척 추웠고 바람을 따라 눈보라가 몰아치는 거리를 걸었다. 날씨 탓인지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골목과 골목이 이어지는 거리를 걷다 보니 크리스마스 마켓이 눈에 띄어 반가웠다. 화려한 불빛이 눈보라 속에서 더욱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성냥팔이 소녀가 성냥을 하나씩 그으면서 느꼈던 그 반가움 같은 것이었다.

성탄절이 하루 지났지만 스트라스부르의 거리와 건물들은 성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휴일이 끝나면 저 장식들은 다시 어두운 지하실로 들어 가 긴 시간을 보내리라. 화려한 성탄제의 꿈을 다시 꾸면서.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한 인형들이 진열된 쇼윈도 앞을 지나면서 문득 이런 생각도 해 보았다.

"누군가 저 인형을 갖기를 원해 부모를 조르기도 하고 길을 걷다 창가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아이도 있을 것이며 저 인형들 중 하나를 들고 함께 꿈나라에 드는 아이도 있겠지."


스트라스부르 성당에 들러 오후 미사에 참석했다. 추운 날씨 탓인지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따뜻했다. 그 느낌이.

성당 앞으로 또 다른 크리스마스 마켓이 들어서 있었다. 그냥 바라만 보아도 좋다. 딱히 호객행위를 하지도 않으니 뱅쇼 한 잔을 손에 들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면 족한 것이다.

느긋하게... Largo....


12월 27일

스트라스부르에서 독일 뮌헨으로 가는 길에는 눈이 펑펑 내렸다. 폭설이었다. 온 세상이 눈으로 덮여 솜이불을 덮은 듯이 보였다.

뮌헨에 있는 내내 눈이 내렸고 눈 내리는 유럽의 겨울을 상상했던 내 기대가 우려로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

길을 걷기가 힘들었고 계속 발이 미끄러져 휘청댔다. 그런데 뮌헨에는 왜 아랍인들이 그렇게도 많이 사는 것일까? 아랍어 간판들과 안내문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이틀을 뮌헨에서 보냈다. 딱히 어디를 방문하고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고 배가 고프면 갤러리아 백화점 식당가에 앉아 시내를 바라보며 밥을 먹고 눈의 기세가 좀 잦아들면 시내 중심가를 어슬렁거렸다. 같은 독일어를 사용하는 접경지 오스트리아에 비해 독일의 건물들은 다소 투박스러웠지만 독일인의 근면함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고 이방인을 경계하는 눈빛을 전혀 느낄 수 없어 나는 자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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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겨울이 무르익어가는, 단 일주일 남짓한 시간 동안 성탄절 언저리에 나는 유럽 4개국을 어슬렁거렸다. 이방인의 눈에 다소 생소한 모습도 있었고 또 한정된 시간 동안 여러 나라를 방문했던 것은 분명 무리가 있었지만 딱히 목적이 없는 방문이었기에 그 아쉬움 또한 크지 않았다. 설령 아쉬움이 있었다 해도

그것이 인생. C'est la 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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