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식구가 방 두 칸짜리 집에서 지내던 시절이었다. 엄마는 석유곤로 하나로 매일같이 밥을 지어내셨고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캐치 프레이즈가 동네마다 나 붙었던 그 시절 '스카이 콩콩'이 전국적인 붐을 일으켰다.
설을 맞아 서울 강남의 S동에 새로 집을 지은 친척 고모댁을 부모님과 함께 방문한 적이 있었다. 명절이라 그런지 얼굴도 모르는 친척들이 잔뜩 모여 있었는데 2층 구조의 그 집이 워낙 컸던지라 그 인원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도 전혀 불편함이 없어 보였다. 컬러텔레비전을 그 집에서 처음 보았는데 리모컨으로 채널을 이리저리 옮겨가는 일도 신기했지만 화면 속의 배우들이 입고 있던 옷의 색깔이며 그들의 피부색은 내가 마치 텔레비전을 생애 처음 접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은 그 댁 고모가 시집을 잘 갔다고 수군댔다. 넓은 2층 집의 안주인이 된 고모는 시종일관 여기저기를 누비며 얼굴 가득 환한 웃음으로 손님맞이에 분주했다. 출판사를 한다는 고모부는 얼굴에 기름이 번들거리는 행색이 누가 보아도 저 사람은 돈이 좀 있는 사람이구나 싶은 타입이었는데 출판사가 돈을 그렇게 많이 버는 업종인지는 그때 처음 알았다. 하긴 전직 대통령의 큰 아드님도 출판사 경영을 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 고모댁을 방문한 일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가까운 친척이 아닌 이유도 있었겠지만 부모님이 서로 나누시던 얘기를 귀동냥해 봤을 때 출판사 사정이 좋지 않아 몇 년 후 그 집을 급하게 처분했다고 한 이유가 설득력을 가질 듯싶다. 몇 년 사이 책이 팔리는 시대에서 팔리지 않는 시대로 바뀌기라도 한 탓일까? 아무튼 부자가 망해도 몇 년은 간다는 말이 있듯이 그 집의 아들. 딸들이 대학을 어디로 갔다거나 취업을 어디에 했다고 하던 이야기를 얼핏 들은 기억이 있지만 이내 내 기억 속에서 흘려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그 2층 집이 누군가에게 팔리고 또 팔려 전직 대통령의 따님 명의가 되었다고 했는데 그분은 나중에 청와대의 주인이 되었다. 대통령에 당선되시고 강남구 S동의 자택에서 청와대로 출발하실 때 인근 동네 주민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시던 그 모습을 텔레비전으로 지켜보면서 저 집이 그때 그 집이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이 잘되어야 복이 들어온다며 집을 지을 때 복을 부르는 관상수를 정원에 여러 그루 심었다던 엄마의 옛이야기가 오버랩되었다.
대주주가 현장을 방문한다는 기별이 오자 회사가 발칵 뒤집혔다. 방문 일주일 전부터 현장 대청소를 실시하고 방문 날짜의 일정을 여러 차례 수정하느라 모두가 온통 난리법석이었다. 대주주가 회사 내 공식 직함을 따로 가진 게 없다 보니 호칭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고민으로 부터도 서로가 설왕설래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되어 대주주가 현장에 도착했는데 비서관과 보좌관 두 명을 대동한 단출한 모습이었다.
공항에서 출발해 바로 현장에 도착한 대주주 일행은 점심식사를 마친 후 회사 근무복으로 갈아 입고 현장 브리핑과 현장 순시를 약 두 시간 가졌다. 현장 근무자 모두가 잔뜩 긴장을 했지만 그 시간 내내 대주주는 별다른 질문 없이 현장 상황에 대한 보고자의 설명을 들으며 시종 고개를 끄덕였고 정해진 일정이 큰 무리 없이 모두 끝나자 현장 숙소에서 옷을 갈아입은 후 일행과 함께 현장을 바삐 떠났다.
대주주 방문 준비로 잔뜩 긴장했던 현장 직원들은 그제야 긴장을 풀었고 서로 고생했다는 덕담도 줄줄이 나누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아침 대주주를 수행했던 비서가 따로 연락을 해서 직원 식당에 걸려 있던 그림에 대주주가 관심을 보이니 그 그림을 사진으로 잘 찍어 보내달라고 했다. 직원 하나가 옆으로 길게 걸려있던 그 그림을 파노라마 사진으로 찍어 비서에게 메일로 바로 보냈다.
그림은 북악산을 배경으로 광화문 전경을 넓게 그린 것이었는데 일찍이 정치에 입문하여 경복궁 뒤 청와대의 주인이 되고자 했던 대주주의 어떤 열망이 그 그림에 그토록 관심을 가지게 한 이유였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과연 집의 주인은 따로 있는 것일까?"
이 글은 작자 상상의 결과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