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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만 Apr 21. 2021

될 듯, 말 듯


브뤼셀을 출발한 기차가, 파리 북역에 섰다.  나는 그곳을 경부선 동대구 역쯤으로 생각한 듯싶다.  곧 파리 중앙역에 도착할 거라 믿었다.  첫 파리 방문이었, 다음 역은 '리옹'이었다.  파리에서 기차로 두 시간 떨어진 거리였다.


제복을 입은 객실 승무원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하는 자초지종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정차역을 미리 확인하지 않은 내 불찰이었다.  이미 밤은 깊었고, 리옹에서 파리까지 바로 되돌아갈 수 없다며, 대신 리옹까지 가는 추가 운임은 면제하겠다 했지만 아무 위안도 되지 않았다.


리옹역 도착 20여분 전에, 객실 승무원은 내 자리로 돌아왔다.  리옹에서 파리로 가는 마지막 열차가 한대 있긴 한데, 지금 리옹 역에 막 근접하는 중이라 했다.  문제는 지금 타고 있는 열차 정차 예정 시간에서 약 3분 후, 파리로 출발할 거라 했다.  대단히 비관적인 투였다.  이론상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실제론 가능할 것 같지 않다는.


기차가 리옹역에 도착했을 때, 객차 문이 열리자마자 가방을 끌고 뛰었다.  가방에 달린 바퀴소리 '덜덜덜덜' 요란스러웠다.  타야 할 플랫폼은 가깝지도 멀지도 않았다.  아무튼 3분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입석으로 파리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에 가까웠다.  말이 통하지 않던 흑인 택시 기사와는 내려서 택시비로 실랑이를 벌다.  크리스마스가 며칠 남지 않은 밤이었고, 파리엔  눈 대신 비가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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