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하는 공항은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이었다. 경유시간이 반나절이라, 이스탄불 시내를 잠깐 다녀왔다. 시내라고 해봐야 '술탄 아흐맛' 전차역을 중심으로 세 정거장 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 다닌 게 다였다. 세 시간 일찍 공항에 도착을 했지만, 그날 입국장 들어가는 절차는 무척 삼엄했다. 얼마 전에 사상자가 발생했던, 공항 테러 여파임에 분명했다.
티켓을 한 손에 쥐고, 탑승 게이트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였다. 쥐색 양복을 차려입은 덩치 큰 남자 하나가 돌아다니며 탑승객 여권을 일일이 확인했다. 얼핏, 보안요원으로 추정했다. 내 여권을 잠시 들여다보던 남자는 행선지를 한차례 묻고는, 여권을 다시 돌려주며 가볍게 목례를 했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가는 듯한, 내 앞 쪽에 줄곧 머물던 중년 사내가 건네는 여권을 들여다보던 보안요원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곁눈으로 보니 이라크 여권이었다.
보안요원이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묻는 몇 차례 질문에, 이라크 사내는 점점 주눅이 들어가는 듯 보였다. 이라크 사내는 보안요원이 하는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 보였고, 그래선지 보안요원 목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어차피 내 문제도 아닌 데다, 공항 측에서는 지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대응이 있을 것이고 아니면, 곧 해결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게이트 전광판에 오픈 안내가 떴는지 확인차 고개를 돌리다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초라한 행색. 낡은 캐리어 가방. 잔뜩 주눅 든 표정.
중년 사내가 느끼고 있을 그 곤혹스러움이 딱해 보였을까, 아니면 대책 없이 발동한 내 오지랖 때문이었을까.
얼굴을 붉히고 있는 보안요원에게 무슨 대단한 문제라도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묻자, 그가 난처하다는 듯 양 어깨를 으슥해 보였다.
"묻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에요. 이런 경우 통역이 있는 곳으로 임의 동행을 해야 하는데요. 그 말도 이해를 못하는 듯하군요."
"질문이 뭔가요? 괜찮으시다면 제가 한 번 확인을 해 드려도 될까요?"
"일행인가요?"
"아. 그런 건 아닙니다. 초면입니다."
보안요원은 갸우뚱한 표정을 잠시 지어 보였다가, 그럼 한 번 해보라고 했다.
"행선지가 어디인지 그리고, 왜 거길 굳이 가려고 하는지 확인이 될까요?"
보안요원은 나와 그 사내를 번갈아 쳐다보았지만, 여전히 반신반의한 표정이었다. 겁에 질려 있는 이라크 사내를 돌아다보며 별 문제가 없을 거라고, 잘 해결이 될 거라고 연신 안심을 시켰지만, 사내 표정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행선지가 어디고, 왜 가려고 하시나요?"
".. 프랑크 푸르트에서 일하고 있거든요. 근로 비자를 가지고 있어서 독일 입국에도 문제가 없고요. 모처럼 휴가를 얻어 이라크 집에 다녀오는 길이에요."
그 말을 전하자 보안요원이 나와 이라크 사내 사이를 한차례 더 쳐다 보고는, 사내로 부터 받은 여권 낱장을 휘리릭 한차례 더 넘겨 본 후 그에게 돌려주었다.
보안요원이 갑자기 큰 소리 내어 웃었다.
"감사합니다. 최근 발생한 공항 테러로 해서 프로토콜이 조금 바뀌었네요. 그런데 어떻게 한국 사람이 이라크 사람이랑 의사소통을 하시는지? 허허.. 참. 이라크에 가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요. 그런 건 아닌데, 언젠가 꼭 한 번 가 보고 싶네요.."
보안요원이 돌아서고 이라크 사내와 내 눈이 잠시 마주쳤다. 사내는 별 말없이 눈빛으로 살짝 안도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일로부터 한 1년 즈음 지났을까.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인근에서 근무를 해 볼 기회가 생겼다. 업무차 들렀던, 바그다드 시내 'R호텔' 앞에는 티그리스 강물이 흘렀다. 강 건너편 대추야자 농장이 강기슭으로 길게 이어졌다.
만나기로 한 일행이 도착하기 전까지, 대추야자 숲으로 시선을 줄곧 두는 동안에는 이스탄불 공항에서 잠시 스쳐 지났던 그 이라크 사내 생각도 잠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