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고비아 뒷골목
'세고비아'라는 단어를 듣고는 클래식 기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대학교 신입생 시절에 클래식 기타를 배워 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 구입한 기타 상표가 세고비아였다. 물론 기타는 샀지만 그 기타를 연주해 보지는 못했고 학원에 보름남짓 나가면서 연습한건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 몇 악절이 다였다.
버스를 타고 세고비아 가는 길에 그때 생각을 했다. 지긋지긋한 고3생활을 마치고 처음 생각해 낸 것이 왜 하필 클래식 기타였을까? 버스가 종점에 도착했는지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 모두가 차에서 주섬주섬 내리는걸 보고 그제서야 나도 버스 기사 얼굴을 한 번 쳐다 보았다. "그래.. 바로 여기가 세고비아야" 하는 얼굴이었다.
버스정거장 앞에 있던 수퍼마켓에 들러 물 한병과 담배 한갑을 사들고 어슬렁 어슬렁 이정표 앞으로 갔다. 담배에 불을 붙여 물고 어지럽게 표시 된 낯선 도시의 이정표를 들여다 보고 있으니 순간 현실감각이 떨어졌다. 멍해지는 기분이랄까?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다.
고즈넉한 옛 도시의 초입에서 '알까사르'로 올라가는 계단을 발견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사진을 여기저기서 찍고 있었다. 로마시대 수도교와 알까사르는 보고 가야지 하는 마음으로 이정표가 가르키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구불구불하게 이리저리 연결된 좁은 골목으로 차들과 행인들이 불편하게 공존하는 길을 피해 뒷골목을 발견해 내고 그것을 이용했다. 높은 성벽을 따라 세고비아 외곽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왠지 내 눈에는 그것들이 쓸쓸해 보였다. 하늘이 흐리고 낮아 보여서 였을까?
기타라는 것이 원래 아랍에서 유래했다. '아라비아 류트'가 아랍의 이베리아 반도 침공으로 이 지역의 전래 악기와 융합되어 오늘날의 기타로 완성이 된 것이다. 근대 기타연주법을 확립한 '프란시스코 타레가'나 '안드레스 세고비아' 등이 스페인 출신이란 점은 기억해 둘만 할 것이다. 우리가 '발라드'라고 부르는 음악의 한 장르도 원래 도시화 되는 사회에서 옛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향수를 표현한 아랍식 표현이고 이베리아 반도에서 아랍인들이 완전히 철수하게 되는 '레 콘키스타'시기까지 아랍의 서정성과 이 지역의 애잔함이 서로 융합되어 '알함브라 궁의 추억' 같은 곡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알까사르와 로마시대의 수도교를 한바퀴 돌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광장을 지나자 낡은 모자 하나를 발치에 내려 놓고 기타를 치는 사내를 볼 수 있었다. 그가 튕기는 기타 선율이 흐린 날씨에 잔뜩 녹아 흐르는 느낌이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곡 하나쯤은 내 손이 기억할 수 있게 할 것을. 지금이라고 너무 늦은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