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pler-438b
비행기 연착으로 인해 다소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예정된 보딩 타임에서 40여분을 훌쩍 넘기고서야 게이트가 열렸는데 무질서하게 사람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리면서 이내 내 기분은 가벼운 짜증으로 변하고 있었다.
승무원에게 탑승권을 확인해 보이고 앉은자리는 날개 뒤쪽의 통로 자리였는데 좌석의 앞 뒤 간격이 그 날의 내 기분 탓이었을까? 유독 좁게 느껴졌다. 게다가 내 옆에는 양 팔의 털이 북슬북슬한 거구의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는 쉬지 않고 떠들어 대기를 좋아하는 남자였다. 그 남자가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그의 한쪽 팔이 내 맨살의 팔꿈치를 툭툭 건드렸고 그때마다 강한 불쾌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연착된 비행기는 사람들을 모두 태우는데도 한참이나 걸렸고 반쯤 체념하고 있을 때쯤에야 겨우 기장의 안내 방송이 시작되었다. 좌석의 벨트를 손을 더듬어 확인하고 눈을 감고 비행기가 이륙하기를 기다렸다. 옆의 남자는 여전히 몸을 뒤척거리며 지나가는 승무원에게 말을 걸거나 왼쪽 자리의 옆 남자에게 이런저런 말을 건네고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서 얼마가 지났을까? 승무원들이 카트를 밀고 나와 식사를 제공했다. 냄새로 짐작하건대 '필레 생선찜'과 '닭고기 조림' 그리고 '쇠고기를 곁들인 롱 그레인 볶음밥' 등이 실려 있는 듯싶었다. 승무원이 건네는 식사 하나를 받아 놓고 그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매번 드는 생각이지만 이 많은 식재료를 인간들이 매일 같이 소비해야 한다는 사실은 너무 생경스러웠다.
식사에 전혀 손을 대지 않자 옆 자리의 남자가 계속 내 눈치를 살피다 결국 내게 말을 걸었다.
"Where are you going?"
"to my home"
내 짧은 대답에 그가 다시 한번 물었다.
"What's your nationality?"
"The Third Planet"
이라는 내 대답에 알 뜻 모를 듯한 머쓱함을 느낀 남자가 이내 고개를 돌려 내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식사가 정리되고 기내의 불이 꺼지자 옆 자리의 남자도 이제 잠에 빠졌는지 그의 작은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좌석 모니터로 비행기가 인도양의 밤바다 위를 외롭게 날아가고 있음을 확인한 후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피라미드나 지구라트를 이용해서 휴가 출발을 했던 게 언제 적이었더라... 이번 휴가에서 다시 복귀하면 이 별의 모습은 또 얼마나 변화되어 있을런지."
불 꺼진 기내 복도를 걸으며 나는 나지막이 중얼거려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