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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만 Mar 25. 2017

와디 진

루시퍼의 탄생




벌써 닷새째 모래바람이 불고 있다.


시속 100킬로로 줄곧 달리던 차가 '와디 진(وادى جن)' 인근에서 부터는 속도를 줄였다.  길이 한결 좁은 2차선으로 바뀌었고 간간이 역주행하는 차도 왕왕 눈에 띄었다.


오래된 아랍 전승에 의하면 인간이 흙으로 만들어진 것과는 달리 진은 불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애니미즘(Animism)에 기반을 했는지 모든 사물에는 그에 맞는 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이슬람 이전 사람들이 가졌던 믿음이었다.  


물론 이슬람에서도 진의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으며 하나님이 인간과는 별도로 진을 창조해 내셨는데 그 존재가 인간들에 의한 숭배의 대상은 전혀 아니라는 것이 꾸란의 가르침이다.


진의 골짜기라는 의미를 가진 '와디 진 (وادى جن)'에 세상 모든 진들의 왕인 와디 진이 산다는 전승을 처음 들었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난 오랫동안 이 순간만을 기다려 왔다.  오늘은 와디 진을 만나는 날.


우선 계곡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했다.  사암과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계곡의 바위들 위로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모래바람으로 앞이 통 보이지 않았다.  마치 안갯속에 혼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얼마나 그렇게 걸었을까?  온 전신이 땀범벅이 되었다.  모래바람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찰나 문득 눈 앞으로 정상이라고 생각되는 장소가 드러났다.  정상에 솟아 오른 둥근 바위의 반대편에 주저앉아 바람을 겨우 피하고 있을 무렵 와디 진이 내 앞으로 모습을 드러 내었다.


"아담의 아들아... 너는 내게 무슨 볼일이 있어 여기에 있는 거지...?"


모래바람 속에서 와디 진은 붉게 타오르는 모습을 한채 바람결에 그 목소리를 전하고 있었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 이 땅의 반대편에서 왔으니 오래전 당신이 아담에게 했던 계약을 이제 내게 지키시오."


그의 눈에서 푸른 불꽃이 번쩍 튀었다.


"계약?  아담과의 계약?  지금 내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가?"


바람결에 그의 그르렁대는 목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비록 아주 오래된 일이지만 아담의 모든 아들과 딸들이 그 일을 아주 잊고 있었던 건 아니요.  당신이 에덴에서의 실수로 하나님의 분노를 샀을 때 당신을 끝까지 변론해 준 아담에게 했던 약속을 벌써 잊으신 건가요?  아담은 꺼져가는 하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이 곳 와디 진까지 어렵게 왔지만 당신은 그와의 계약을 끝내 지키지 않아 당신 스스로 계약 위반의 암시에 빠졌죠.  이제 그만 당신 스스로를 자책하고 내가 그 저주의 고리를 깨려고 오늘 이곳에 왔으니 아담과 계약을 했던 그 세 가지 소원을 그의 아들인 내게 이루어 주시요."


가 전하는 이야기에 와디 진은 한동안 우두커니 망설였다.  그의 타오르는 두 눈에서 보라색 불꽃이 활활 타오르며 그의 깊은 고뇌를 대변해 주었다.  그러던 그가 입을 열었다.


"아담의 아들아.  하와의 생명을 거두어 가신 것은 전능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이었으니 내가 아담에게 그 계약을 지키지 못한 것은 어찌 보면 불가피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일로 인해 나는 계약을 깬 비겁한 존재로 불리며 이렇게 모습을 숨기며 지내고 있지.  너의 말은 옳다.  이제 그만 나 스스로 걸었던 저주의 암시를 깨고 스스로 자유를 찾아야 할 때도 되었어.  그러면 아담과의 계약을 이제 그만 그의 아들에게 이행하려 하니 합당한 세 가지 소원을 내게 이야기해 보라."


사방에서 모래바람이 소용돌이를 쳤지만 내가 앉은자리는 마치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정적이 감돌았다.


내가 첫 번째 소원을 말하자 와디 진의 눈이 휘둥그레 졌다.  하지만 내 요구에 모순이 없다고 판단을 했는지 잠시 망설였던 와디 진은 이내 나의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했다.


내가 두 번째 소원을 이야기 하자 와디 진의 표정은 한결 더 굳어졌고  마침내 내가 세 번째 소원을 이야기했을 때는 이미 완전히 체념한 듯한 반면 한편으로 홀가분 해 진 듯한 그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와디 진은 아담과의 약속이 이미 모두 이루어졌으니 자신의 저주가 그 고리를 마침내 깨게 되었다는 말을 남긴 채 모래바람을 몰고 인근 산맥의 저편으로 스르르 사라져 버렸다.


와디 진의 땅에서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길에는 모래바람이 거짓말처럼 말끔히 걷혀 있었다.  밤의 별들이 쏟아질 듯한 사막 위 외줄기 도로 위를 줄곧 달려야 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 중에서도 유난히 반짝이는 별 하나,


사람들이 '새벽의 길잡이 별'이라고 부르는 그 이름으로 나는 그날 마침내 '루시퍼(Lucifer)'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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