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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아시스 May 04. 2018

'푸른 눈의 돼지신부'가 남긴 유산

故맥그린치 신부의 일생에서 찾는 지역공동체정신

  1954년 4월, 25살의 아일랜드 출신 한 젊은 신부님이 제주도를 찾아왔다. 당시 제주도는 6.25전쟁과 제주 4.3의 아픔이 체 가시지도 않은 터라 사회혼란과 기근으로 처참함 그 자체였다. 타국에서 아무런 연고도 없는 푸른 눈의 외국인 신부님은 이 척박한 땅에서 제주도민의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한 가지 묘책을 생각해 낸다. 그는 당장 인천으로 달려가 새끼를 품은 암퇘지 한 마리를 구입해 제주도로 가져왔다. 돼지가 자라 새끼 10마리를 낳자 신부님은 아이들에게 돼지를 나눠주며 돼지가 새끼를 낳으면 한 마리만 돌려달라고 말한다. 훗날 이 돼지는 해마다 3만 마리를 생산하는 동양 최대의 양돈목장의 씨앗이 된다.

 ‘푸른 눈의 돼지 신부’라는 별명으로 불린 J.맥그린치 신부님(한국명 임피제, Patrick James McGlinchey)의 이야기다. 맥그린치 신부님은 얼마 전 향년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60년 넘게 제주도에 살면서 제주도민과 함께 가난을 극복하고 교육과 사회복지 분야에서 선구자 역할을 한 신부님의 선종소식에 제주도는 한 동안 슬픔에 빠졌다. 전쟁과 사회혼란으로 희망마저 잃어버린 낯선 이국땅에서 신부님의 희생이 없었다면 아마도 지금의 제주도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제주도는 냉전시대 반목의 역사와 지독한 가난을 딛고 일어나 지금은 신부님의 고향인 아일랜드보다 더 잘 사는 섬이 되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지난해 제주지역 농가소득은 가구당 5,292만원으로 전국 9개 광역도평균 3,823만원보다 38.3%(1,468만원)나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비록 맥그린치 신부님은 떠나셨지만 지난 반세기동안 제주도민의 먹고사는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 듯하다. 그런데 지금의 제주도의 모습은 살아생전 신부님이 꿈꾸던 제주도의 모습은 아닌 것 같다. 한 마리의 씨돼지로 시작한 양돈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지만, 최근 일부 악덕 양돈업자들이 무단으로 방류한 축산폐수로 인해 제주도의 생명수인 용천수를 이제는 더 이상 마실 수 없게 됐다. 그리고 전국 최고수준의 농가소득을 자랑하기도 하지만 농약과 화학비료 사용량 또한 최고수준이고, 농사를 짓고 버려진 영농폐기물은 더 이상 제주도 안에서는 처리가 안 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 뿐만이 아니다. 제주관광활성화의 명분하에 시작된 각종 개발사업으로 인해 울창하던 곶자왈과 드넓은 초원이 있던 땅에는 골프장과 리조트가 대신 들어섰다. 그리고 자연방파제 역할을 하는 모래언덕 숨부기왓(해안사구) 위로 거미줄처럼 해안도로를 만들어 해변의 모래는 점점 사라지고 용천수는 말라버렸다. 산업화와 인간의 이기주의로 인해 점점 변해가는 제주도의 모습을 보고 신부님은 편히 눈을 감으셨을까 싶다.


  올해는 故맥그린치 신부님이 제주도에 오신 지 64주년이 되는 해였다. 자신이 태어난 고향보다 타국에서 더 오래 살다 간 외국인 신부님이 꿈꾸던 세상은 어떤 곳이었을까? 필자가 취재를 한 바에 의하면 적어도 신부님은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을 꿈 꿨던 것은 아닌 것 같다. 신부님이 우리나라 축산업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고, 현재의 지역경제 활성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책이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자 신부님은 지역주민의 사회복지에 눈을 돌린다. 가장 먼저 돈 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료병원을 개원한다. 개원당시에는 하루에 2~300명씩 찾아와 북새통을 이뤘다고 신부님은 회고했다. 그 이후에는 말기암환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병원과 무의탁 노인을 위한 요양원, 청소년 수련원 등을 계속해서 설립하였고 현재까지도 목장과 사료공장 운영을 통해서 얻은 수익은 지역의 사회복지사업에 쓰이고 있다.

  “제주다움을 잃지 말라” 

  신부님이 살아생전에 늘 강조했던 말이다. 과연 그가 말한 ‘제주다움’이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정한 제주의 환경을 보존하는 것을 ‘제주다움’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필자는 사회복지사의 시각으로 ‘제주다움’을 찾고 싶어졌다. 60년 전 신부님이 처음 제주도에 오셨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전란이 휩쓸고 지나간 제주도는 황폐해진 농촌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사진자료를 보던 중 사람들의 눈에서 슬픔과 절망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신부님을 중심으로 결성된 ‘4H’회원들의 모습에는 희망이 가득 차 있었고, 동네 아이들의 모습은 천진함까지 느껴졌다. “기술은 모자랐지만 도민들이 협동심과 성실성이 뛰어났기 때문에 한국의 축산업을 선도할 정도가 될 수 있었다" 신부님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렇다. 신부님이 말한 ‘제주다움’은 당시 제주도민들의 협동심과 성실함 즉, ‘지역공동체정신(Local community sentiment)’이었다. 성당을 지을 자재가 없어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신자도 아닌 주민 수백 명이 좌초된 목재 수송선을 향해 배를 몰고 바다에 뛰어든 모습에서 신부님은 ‘제주다움’을 발견하지 않았을까?


  90이 넘은 노 신부가 던진 이 짧은 메시지는 우리가 ‘제주다움’을 잃어가고 있다는 역설이다. 그러나 그가 살아온 삶을 되짚어 보면 ‘제주다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신부님의 마지막을 함께한 이어돈 신부님(現이시돌협회 이사장)은 “맥그린치 신부님이 가장 행복해하셨던 때는 당신 일이 잘 안되어도 옆 목장이나 옆 사람, 누구든지 잘 되면 같이 기뻐하셨다”라고 말했다. 지역공동체는 자기 혼자만의 이익을 추구하면 절대로 만들어 질 수 없다. 지역공동체는 자연생태계와 같아서 각각의 차이가 서로 연결되어 상호작용하면서 공생진화 할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제주도가 지닌 본래의 지역생태계와 문화적인 다양성을 보존하고 60년 전 도민들이 서로 협동하며 성실하게 살아 온 제주만의 ‘지역공동체’를 되찾는 것이 진정한 ‘제주다움’이 아닐까? 

Patrick James McGlinchey 신부(1928~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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