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tart a movement
미국에서 시작해 세계적으로 알려진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 강연회는 각 분야의 저명인사와 괄목할 만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 초대되어 18분 이내의 짧은 강연을 펼친다. 강연에 초대 받은 사람 중에는 영화배우에서부터 노벨상 수상자, 전직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유명 인사들이 출연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 2010년 미국의 인터넷 쇼핑몰 CEO인 데릭 시버스(Derek Sivers)의 3분짜리 TED 강연이 끝나자 청중들은 모두 기립박수를 쳤다. 이 짧은 강연이 사람들을 어떻게 감동시켰을지 사뭇 궁금해진다.
'운동을 시작하는 방법(How to start a movement)'이라는 주제로 시작된 이 강연은 강연시간 내내 한 편의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동영상의 시작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공원 한가운데서 웃통을 벗은 채 춤을 추는 한 남자의 모습에서 시작한다. 그 남자는 사람들의 시선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한동안 계속 춤을 추고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주변에 있던 다른 한 남자가 나타나 춤을 따라 추기 시작한다. 그러다 잠시 후 또 다른 남성이 나타나더니 그들과 함께 춤을 따라 추는가 싶더니 급기야 자신의 친구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한다. 곧바로 춤을 추는 남성이 3명이 더 늘어나는가 싶더니 점점 가속도가 붙어 결국에는 공원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춤을 따라 추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처음에 사람들은 공원에서 웃통을 벗은 채로 춤을 추는 사람을 보고 미치광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뜻밖에 첫 번째 추종자가 나타나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첫 번째 추종자는 공공장소에서 웃통을 벗고 춤을 추는 외로운 미치광이를 리더로 변모시킨다. 그리고 두 번째 추종자가 오면서부터 춤을 추는 사람은 이제 세 명이 되고 하나의 집단을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그 집단은 곧 뉴스가 된다.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스스로 하나둘씩 대열에 합류하게 되고 그전까지 방관하고 있던 주변사람들도 상황이 바뀌었다는 것을 인지하고 참여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집단이 하는 행동은 더이상 돋보이지도 않고, 조롱거리가 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참여하지 않으면 조롱거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새로운 집단을 고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 운동은 그렇게 시작된다.
운동이 성공적으로 끝이나면 사람들은 모든 공을 처음 웃통을 벗은 남자에게로 돌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데릭 시버스의 생각은 달랐다. 시버스는 공원에서 춤을 쓰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웃통을 벗고 춤을 추는 사람이 아니라 그의 춤을 처음으로 따라 추기 시작한 두 번째 사람이라고 말한다. 만약 두 번째 사람이 없었더라면 첫 번째 웃통을 벗은 사람은 그저 외로운 미치광이에 불과했을 것이다. 두 번째 사람이 용기를 내어 미치광이 대열에 합류했을 때 춤은 그냥 미친 짓이 아닌 의미있는 하나의 행위가 된다. 시버스는 강연에서 "우리 모두가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정말로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운동을 일으키려고 생각한다면, 따를 수 있는 용기를 가지세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따라야 하는지를 보여주세요."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현대사회의 리더십은 지나치게 미화되었을 지도 모른다. 리더십이란게 추종자가 있을 때에만 그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마련인데 리더만 있고 추종자가 없으면 리더십이 무슨 소용일까 싶다. 모두가 리더가 되고 싶어하고, 자기혼자만 최고이고 싶고, 추종자가 되면 패배한 것이라는 우월주의적 사고가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2016년 제주도에서 스마트복지관이라는 건물없는 사회복지관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등장했다. 당시로서는 전례가 없는 파격적인 모델이라 주변에서는 이 건물이 없는 스마트복지관을 그저 미치광이(?)로 조롱하거나 아니면 방관했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두해가 지나자 인천시 영종도와 경기도 파주시가 그 미치광이 대열에 합류하면서 스마트복지관은 이제 그냥 미친 짓이 아닌 하나의 의미있는 행위가 되었다. 덕분에 제주스마트복지관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추종자가 나타나면서 그때부터는 미치광이가 아니라 대열에서 일종의 리더가 되었다. 그렇게 스마트복지관이 하나의 집단이 형성되면서 이제는 '스마트복지관 운동'으로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스마트복지관'을 처음 시작한 선구자적 리더십이 아니라 용기와 신뢰와 확신을 갖고 뛰어든 첫 번째, 두 번째 추종자들이다. 이제 스마트복지관은 이러한 추종자들이 있기 때문에 다음번에 참여할 추종자들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훨씬 적은 용기를 가지고도 대열에 합류할 수 있게 되었다.
"우주에 단 하나의 물체만 있다면 이 물체는 일정한 속도로 운동하거나 아니면 정지해 있어야 한다. 물체에 영향을 주는 다른 존재가 하나도 없으니 물체에 작용하는 힘은 당연히 0이다. 정지해 있던 물체는 정지해 있어야 하고, 등속으로 움직이던 물체는 계속 같은 속도로 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다 안다는 뉴턴의 운동 제1법칙, 관성의 법칙이다. 이 세상에서 혼자만의 힘으로 스스로 운동할 수 있는 물체는 없다. 변화의 리더십에는 추종자가 필요하고 새로운 추종자들은 리더가 아닌 앞선 추종자들을 따라한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필요한 리더십의 시작은 아마도 혁신적인 이상과 높은 신념으로 변화를 이끄는 자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일이 아닐까? 그리고 용기를 내서 혁신의 대열에 합류해 보자. 운동은 그렇게 시작된다. 우리나라 남쪽 끝(제주도)에서 시작된 스마트복지관이 이제는 서쪽 끝(영종도)과 북쪽 끝(파주)에 생겼으니 앞으로 네 번째 추종자는 동쪽 끝에 생겼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그렇게 스마트복지관 운동에 가속도가 붙어서 사회적으로도 큰 전환점을 가져오길 기대한다.
... 알쓸복잡
*이 칼럼은 필자가 제주도의회 의정소식지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