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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아시스 Feb 22. 2019

커뮤니티케어, 혁신을 넘어 혁명으로

사회복지는 혁신이 아니라 혁명이 필요하다.

  최근 대한민국 사회복지계는 정부에서 추진 준비 중인 ‘커뮤니티 케어’ 정책이 뜨거운 감자다. 2018년 3월 보건복지부는 앞으로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에 거주하면서 개개인의 욕구에 맞는 복지급여와 서비스를 누리며 지역주민들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커뮤니티 케어’ 즉, ‘지역사회통합돌봄’ 정책을 발표했다. 그 첫 단추로 2019년 6월부터 전국 8개 지방자치단체를 선정하여 선도사업을 실시하고 2026년부터는 보편적으로 정책을 확대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필자는 얼마 전 커뮤니티케어 정책의 취지와 선도사업의 진행방향을 설명하는 정책설명회에 참석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미래 사회복지혁신 정책을 발표하는 복지부 공무원의 목소리에는 기대와 확신에 차 있었다. 반면에 나는 수백 명의 공무원들 틈바구니 안에서 정책 설명을 듣는 내내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과연 정부의 바람대로 커뮤니티 케어 정책이 대한민국의 사회복지 혁신을 넘어 혁명을 가져올 수 있을지 전국 사회복지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우리나라 사회복지는 과거에도 전달체계를 혁신하고자 하는 시도는 여러 번 있어왔다. 1차 사회복지 혁신의 시도는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 초부터 사회복지전달체계 개편에 관한 논의가 지속되다가 1992년에 이르러 공공복지전달체계의 비효율성과 전문성 부족 등을 해결하기 위한 ‘복지사무전담기구’ 설치에 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새롭게 등장한 것이 보건복지사무소다. 당시 아는 사람만 알았던 보건복지사무소는 1995년부터 4년 간 전국 일부 지역에만 시범사업으로 추진되다가 2003년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사회복지사무소로 변경되면서 사업이 확대되는가 싶었는데 지역주민들 뿐만 아니라 공무원에게 조차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후 2차 사회복지 전달체계 혁신은 2005년 공공과 민간의 복지공급자 및 수요자 간의 협력기구인 지역사회복지협의체의 탄생으로 볼 수 있다. 이미 1차 혁신 때 논의되고 있었던 지역사회복지협의체는 시군구 지역의 사회복지네트워크를 통해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One-Stop으로 제공함으로써 공공복지제도의 한계를 보완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시범사업으로 출발해 실행 과정에서 본래의 취지대로 주민의 참여 기반을 확립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정작 정책의 추진 주체인 공무원들의 참여마저 미비해 지금까지 명맥만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3차 혁신의 시도는 2012년부터 추진된 읍면동 복지허브화 정책 추진이라고 볼 수 있다. 읍면동 복지허브화 정책은 읍면동에 있는 주민센터에 맞춤형 복지전담팀을 설치하고 사회복지 공무원을 대거 채용해서 현장상담을 강화하는 등 주민 중심의 찾아가는 복지서비스를 전달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민간 사회복지기관에서 해오던 일까지 공무원들이 하기 시작하면서 주민 중심이 아닌 공무원 중심 복지정책이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적지 않다. 급기야 2017년부터는 시군구에만 있던 지역사회보장협의체(구 지역사회복지협의체)를 전국에 모든 읍면동까지 확대 시행하고 있지만 민관협력을 위한 협의체의 역할과 정체성은 지역마다 제각각이고 사회복지기관과의 역할 갈등은 여전한 채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사회복지 전달체계는 혁신의 혁신을 거듭해왔지만 괄목할 만한 혁신은 보여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차 사회복지혁신, 이른바 읍면동 복지허브화 정책이 지금도 활발히 추진되고 있는 와중에 정부는 또다시 새로운 혁신정책카드를 들고 나섰다. 물론 복지부에서는 5년 후 본 사업을 염두에 두고 시범적으로 시행하는 선도사업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지난 과거 수차례 시도되어 왔던 혁신정책들을 지켜보고 실행해 온 일선 공무원들과 사회복지사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가 추진해 온 사회복지 혁신정책의 로드맵은 누가 보더라도 바람직한 방향인 듯 보이는 데 일선에서의 반응이 이토록 시큰둥한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그 원인을 두 가지로 본다. 첫 번째 원인은 정책을 추진하기 전 먼저 시행하는 시범사업에 있다. 예나 지금이나 정부는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기 전 항상 시범사업을 먼저 시행해왔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것을 누가 뭐라 하겠는가마는 돌다리는 정부가 만들어 놓고 두들겨보는 것은 지자체에게 떠넘기는 격이니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일선 실무자들에게 공감을 얻기 힘들었다. 그리고 시범사업은 말 그대로 시험 삼아 한 번 해보는 사업이다. 성공을 위한 절박함보다는 실패의 가능성을 전제로 한 안일함이 기저에 깔려있다 보니 시작 소리만 요란할 뿐 분위기는 쉽게 식어버리기 일쑤였다. 정부도 이런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이번에는 시범사업을 선도사업으로 개명하면서 지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지난 수 차례 양치기 소년에게 당한 민심이 쉽게 돌아설지 의문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시범사업, 아니 선도사업을 추진한다고 하니 공을 넘겨받은 지자체가 정부의 뜻을 잘 이어갈지 지켜볼 일이다.


  두 번째는 사회복지정책의 혁신(혁명)을 대하는 관점이다. 지금까지 정부에서 추진해 온 사회복지 전달체계 혁신정책에는 모두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혁신정책을 추진할 때마다 기존 방식을 대체할 새로운 체제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사회복지사무소가 그랬고, 희망복지지원단이 그랬고, 지역사회복지협의체가 그랬다. 국가경제는 혁신 성장이 가능하겠지만 휴먼서비스인 사회복지는 혁신해서 성장할 수 없다. 그동안 수차례 사회복지 전달체계 개편 노력이 실패로 끝난 이유는 다름 아닌 사회복지를 기술혁신의 관점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서비스는 엘리트들의 혁신만으로는 변화할 수 없고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개혁, 즉 혁명이 일어나야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다. 사람의 생활양식과 사회적 인식과 같은 기존의 체제를 내팽개쳐 놓고 새로운 체제를 도입해서 하루아침에 혁명이 일어난 예는 사피엔스 역사상 존재하지 않는다. 필자가 누누이 강조하는 말이지만 혁신은 개선하는 것이지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정책을 설명하는 복지부 사무관은 이번 커뮤니티 케어정책 선도사업은 기존 정책의 개선과 복지자원들 간의 유기적인 협력모델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라고 몇 번이고 강조했는데 이 또한 공을 넘겨받은 지자체의 몫으로 남겨져 버렸다.


  사실 필자는 이번 커뮤니티 케어정책에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스마트복지관사업이 이번 정책과 많이 닮아있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케어는 단어가 생소할 뿐이지 본래 사회복지의 궁극적 목적이다.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커뮤니티) 안에서 돌봄(케어)을 수행한다는 것은 사회복지실천의 오랜 숙원이었다. 그리고 일선에서 사회복지사들은 오랜 시간 묵묵히 그 일을 해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지현장에서 커뮤니티 케어를 실현할 수 없었던 이유는 우리의 사회복지환경(정치, 제도, 인식 등)과 현실이 그만큼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아니더라도 사회복지정책의 혁신만큼은 새로운 전달체계를 만들어 현실을 변화시키기보다 사람과 환경의 관계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혁명의 관점에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혁명의 과정은 냉철하면서 평등하게, 또한 단호하고 과감하게 추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를 바꿔놓은 혁명적 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간을 거쳐 문제를 개선하고 환경에 적응한 결과라는 것을 잊지 말자.


#첨언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한 때 학자들은 농업혁명이 인간성을 향한 위대한 도약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사람들은 너무나 똑똑해져서 자연의 비밀을 파악하고 양을 길들이며 밀을 재배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게 가능해지자마자 지겹고 위험하고 가혹했던 수렵채집인의 삶을 기꺼이 포기하고 농부의 즐겁고 만족스러운 삶을 즐기기 위해 정착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환상이다. 농업혁명은 안락한 새 시대를 열지 못했다.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 사피엔스 본문 中


... 식물이 호모 사피엔스를 길들였지, 호모 사피엔스가 식물을 길들인 게 아니었다. - 알쓸복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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