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계절 겨울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자세
아직 초겨울이긴 하지만 벌써부터 제주도 찬바람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그래서 올 해는 큰 맘 먹고 롱패딩을 하나 장만했다. 머리에서부터 무릎아래까지 100% 거위깃털로 채운 롱패딩을 입고 엉거주춤 지퍼를 잡고 턱밑까지 죽 올리면 마치 날개옷을 입은 듯 포근함이 온 몸을 감싼다. 이 롱패딩 하나면 곧 다가올 본격적인 추위에도 끄떡없을 것만 같다. 나는 그렇게 거금을 들여 겨울나기 준비를 마쳤다. 겨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첫눈 아니면 크리스마스이브의 낭만이라야 젊은 감성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올해는 나이 때문인지 아니면 사회복지사의 직업병인지는 몰라도 겨울이 오기도 전에 뭔가 대비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에 먼저 설레발을 치고 말았다.
사실 사회복지사의 겨울은 사계절 중에서 유난히 더 분주해 지는 것 같다. 바야흐로 겨울은 나눔의 계절로 불리기 때문이다. 수백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광장에 둘러 모여 수천 포기의 김장김치를 담그는 기록적인 행사는 이맘때가 아니면 볼 수 없다. 또한 어느 달동네 어귀에서는 같은 색깔의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수십 미터씩 줄지어 연탄을 한 장 한 장 나르는 모습은 겨울철 사회복지의 진풍경 중에 하나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연말연시가 되면 때맞춰 기업에서 저마다 복지시설을 찾아가 후원물품을 전달하는 일이 잦아진다. 후원물품을 좌우대칭으로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스티로폼으로 만든 전달판을 들고 사진을 찍는 일은 겨울철 사회복지사들의 단골업무다. 작년 겨울도 그랬고, 5년 전, 10년 전에도 사회복지의 겨울은 늘 그래왔었다. 과연 겨울은 사회복지의 계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겨울이 사회복지의 계절이 된 연유에는 사랑의 열매(사회복지공동모금회)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사랑의 열매는 요즘 같은 연말연시에 대대적으로 모금활동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올 겨울도 어김없이 서울 광화문 광장을 시작으로 전국에 일제히 사랑의 온도탑을 세우면서 73일간의 모금대장정의 시작을 알렸다. 사랑의 온도탑은 앞으로 목표된 모금액의 1%가 달성될 때마다 사랑의 온도가 1도씩 올라가게 된다. 올해 사랑의 열매의 목표모금액이 작년보다 1.3% 높아진 4,105억 원이니까 대충 41억 원이 모일 때마다 1도씩 올라가는 셈이다. 그 많은 돈을 두 달 만에 무슨 수로 모금을 하나 싶은데 사랑의 온도탑은 매년 100도가 넘어서서 뜨겁게 잘 마무리가 됐었다. 4,000억 원이 넘는 돈이 70여일 만에 모일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몰라도 ‘사랑의 열매’라고 하면 다 안다. 물론 겨울에만 그렇다는 것이 함정이다. 신기하게도 겨울이 되면 정치인들이나 사회복지쪽 인사들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너나할 것 없이 옷깃에 사랑의 열매를 달고 다닌다. 거기에다가 사랑의 열매는 광장에 온도탑을 세우고 연예인까지 동원해 모금광고를 찍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다. 그래서 일까? 작년 한 해 사랑의 열매가 1년 내내 모금한 금액이 6,000억 원 정도 되는데 겨울철 단 두 달 동안 모금한 금액은 4,000억 원이 넘는다. 이 정도면 사랑의 열매가 기부는 1년 내내 하는 것이고 모금은 겨울에만 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사랑의 열매가 유난히 겨울만 되면 이 난리를 피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보통 나눔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행위로 생각하기보다는 춥고 배고픈 사람에게 시혜적으로 베푸는 행위로 생각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의 열매를 비롯한 전 세계 모금단체의 모금광고를 보면 대부분 최대한 불쌍하고 참혹하게 만들어진 빈곤포르노(Poverty Pornography)인 경우가 많다. 그 이유가 바로 사람들의 이러한 측은지심을 자극해서 인위적으로 나눔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원래 나눔이란 덕(德)을 나누는 것이라고 했는데, 요즘 시대의 나눔은 왠지 다른 의도가 있는 것 같아 ‘덕분(德分)에’라는 말을 무색하게 한다.
나눔은 이제 사회적으로는 국가가 책임지지 못하는 사회안전망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고, 공간적으로는 국경을 넘어섰으며, 시대적으로는 자원과 효용을 늘리고 궁극적으로는 자신도 도움을 받는 사회 구성원 전체의 상호 호혜적 행위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겨울 한 철, 특정한 시기에 동정심에 이끌려 하는 일시적인 나눔은 시대착오적이다. 한 순간 뜨겁게 끓어오른 사랑은 얼마가지 못하고 쉽게 식어버린다. 그래서 사랑의 온도는 100도씨가 아니라 36.5도씨면 적당하다고 본다.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정도면 오랫동안 곁에 두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나눔은 겨울철에만 꺼내 입는 롱패딩이 아니다. 나눔은 일상이다.
...생애 첫 롱패딩을 입고... 알쓸복잡
*심규선 칼럼(동아일보, 2016-01-25일자)에서 일부 내용을 발췌 요약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