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기부 체감온도에 관한 소고
연말연시 사이웃돕기 모금현황을 보여주는 사랑의 온도탑이 올해(2017년)도 100도를 넘어 100.5도를 기록하며 마감되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연말연시 동안 모금 캠페인을 통해 모금한 금액이 목표액인 3천268억 원보다 16억 원 많은 3천284억 원으로 마감됐다고 자랑스럽게 밝혔다.
날이 갈수록 서민경제가 어렵다는 요즘같은 시대에 수천억 원의 돈이 매년 모금된다고 하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경제는 얼어붙었다고 아우성이지만 사람들의 마음만은 온기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나처럼 사회복지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은 매년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불어오는 기부바람 때문에 평소보다 더 바빠지기 때문에 겨울이 그리 반갑지 않은 계절이다. 하지만 얼굴도 모르는 이웃을 돕겠다며 한푼 두푼 모은 사람들의 정성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게 없는 것 같아 그나마 마음만은 따뜻해지기도 한다.
매년 모금액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이유야 물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직원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겠지만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기부의 형태도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한 푼이라도 후원을 더 받기 위해 동네가게나 기업들을 찾아다니며 도움을 요청하곤 했었다. 이건 정말 적성에 맞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굳이 사회복지사가 발벗고 나서지 않아도 기업이나 단체 등에서 스스로 알아서 복지관으로 찾아와 기부하는 절차에 대해 문의하거나 어떨 때는 아예 기부물품을 억지로 떠맡기는 경우도 있을 정도여서 사회복지사로 그리 오래 살진 않았지만 격세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 일일이 기업을 찾아다니지 않고서도 기부를 받을 수 있어서 귀찮은 업무를 덜어낸 것 같지만 마냥 기뻐할 만한 일은 아닌 듯하다. ------------ 기업의 기부문화가 사회공헌이라는 명목으로 마케팅의 수단이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기부의 계절을 맞아 어려운 이웃을 도와서 기업 이미지가 좋아질 뿐만 아니라, 세제혜택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으니 기업의 입장에서는 마다할 일이 아니다. 개인의 기부도 마찬가지다. 기부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급급한 모습이 요즘 기부문화의 단면이다. 기부하는 행위는 있지만, 뭔지 모르게 숨은 의도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 한 곳이 허전한 느낌이 든다.
우리는 누군가에게서 도움을 받았을 때, ‘덕분에’라는 말을 자주 쓰게 된다. 덕분(德分)은 말 그대로 ‘덕을 나눈다’는 의미로 베풀어 준 은혜나 도움을 말한다. 덕(德)이라는 한자는 ‘얻는다’는 뜻의 ‘득(得)’이란 글자와 ‘마음’이라는 뜻의 ‘심(心)’이란 글자가 합성된 형태다. 그런데 요즘 내가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는 덕(德)을 나누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기부를 통해 소득공제 혜택을 얻었을 수 있겠지만, 온전히 마음까지 전해지지 않는 느낌이다. 진정한 덕은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때 그 빛을 발할 것인데 말이다.
소설 삼국지(三國志)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은 역시 유비라는 인물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유비는 조조, 손권과 함께 중원대륙을 삼분한 군주 중에서 사람의 마음을 얻는 능력이 가장 뛰어난 인물로 기억된다. 그 유비의 자(字)가 바로 현덕(玄德)이다. 왜 유비는 인생의 좌우명과 같은 자신의 자를 현덕으로 택했을까? 현덕의 현(玄)은 어둠을 뜻한다. 다시 말해, 현덕은 ‘어두운 덕’, 즉 ‘보이지 않는 덕’을 말한다.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 덕을 베풀 때 자신을 속을 드러내지 않고 자연스러운 애정으로 전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받는 사람이 이를 눈치챈다면, 그 덕은 마음(心)이 빠진 득(得)에 불과하다. 이렇듯 유비는 현덕의 의미를 자신의 이름에 깊게 새겨 한시도 잊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에 항상 훌륭한 신하들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 우리사회의 기부문화는 어떠한가? 매년 100도 넘는 사랑의 온도탑처럼 우리의 마음이 뜨겁게 끊고 있는 것일까? 기부금액만 보면 예전보다 훨씬 많은 나눔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실상 나눈 만큼 세상이 따뜻해진 것 같지는 않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거나, 밤새 몰래 볏짚을 나르던 의좋은 형제의 모습을 요즘엔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동화 속 의좋은 형제는 서로 자신의 볏짚을 몰래 나누느라 결국 밤새 헛수고를 하였지만, 뒤늦게 형제의 마음을 알아챘을 때는 따뜻한 정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하는 나눔에는 과연 덕이라는 것이 남아 있는 것일까? 아쉽게도 우리는 주는 사람의 마음을 너무 쉽게 알아채 버린다. 이러한 덕이 빠진 나눔에 정작 필요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까지 전해질리 만무하다. 2천년 전 ‘보이지 않게 덕을 베풀라’ 라는 유비현덕의 교훈을 우리는 한번쯤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보이지 않은 덕(현덕)이 필요한 알쓸복잡
유비와 조자룡
서기 208년. 천하통일을 위한 조조의 50만 대군이 남하를 시작한다. 형주 신야에 머물던 유비는 조조군의 추격을 피하기 위해 십 만 명의 백성들과 함께 강하로 퇴각한다. 그런데 이때 부인과 아들이 미처 적진을 빠져 나오지 못했음을 뒤늦게 알아챈 유비가 걱정하자 조자룡이 단기필마(單騎匹馬)*로 수 십 만이 추격해오는 적진에 홀로 뛰어든다.
수백명의 조조군에 맞써 힘겹게 전투를 하던 조자룡은 우물 옆에서 부상을 당한 유비의 미부인과 아들 유선을 발견한다. 그런데 미부인은 부상당한 자신이 짐이 되는 것을 염려해서 아들을 조자룡에게 맡긴 후 우물에 뛰어들고 만다. 조자룡은 구사일생으로 조조의 대군을 해치고 적진을 빠져나와 유선을 유비에게 바치지만 미부인을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해 크게 자책한다. 조자룡이 구출해 온 아들을 받아 든 유비는 아들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조자룡을 일으켜 세우며 이렇게 말한다. “못난 자식 때문에 나의 훌륭한 장수를 잃을 뻔 했다.”
유비는 자신의 장수들을 전쟁의 승리를 위한 도구로 대하지 않고 동반자로 바라봤다. 유비는 자신의 가족보다 부하에 대한 배려와 신뢰가 우선이었던 것이다. 유비는 비록 천하통일의 업적은 이룰 수는 없었지만 주위에는 항상 목숨을 걸고 충성을 다하는 용장들을 거느릴 수 있었다. 이는 바로 자신의 목숨까지도 아깝지 않은 주군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단기필마(單騎匹馬): 한 필의 말을 타고 홀로 적진을 향해 가는 것, 홀로 적진을 향해 나아가는 용사의 용맹스런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