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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아시스 Oct 18. 2020

내가 바라는 CSR

기업의 사회공헌활동과 사회적 책임에 관하여

  한 10년쯤 전이었나....... 내가 노인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할 적에 있었던 일이다. 그 날은 어버이날을 맞아 복지관에서 200명 정도의 어르신들에게 기차여행을 보내주는 큰 행사가 있었다. 해마다 봄가을이면 노인복지관에서 전세버스를 두어 대 빌려서 단체관광(나들이)을 떠나는 일은 매우 흔한 일인데, 유독 그 날은 코레일(한국철도공사)에서 후원하는 행사라 평소보다 일이 더 커졌더랬다. 역시 큰 기업에서 하는 후원이라 그런지 스케일부터 남달랐다. 우선 코레일은 어르신들의 이동을 위해 전세기차를 내어줬다. 사실 나는 노선에도 없는 기차를 통째로 빌릴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아마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비용 때문에 엄두도 내지 못했을 일이긴 하다. 거기에다 코레일에서는 전세기차뿐만이 아니라 직원들도 함께 행사에 참여시켜 하루 종일 어르신들을 쫓아다니며 자원봉사를 하게 했다. 덕분에 어르신들은 난생처음 전용 기차를 타고 아주 편안하고 안전하게 봄나들이를 다녀올 수 있었고, 복지관은 코레일의 도움으로 큰 어려움(예산, 인력 등) 없이 큰 행사를 잘 치룰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 코레일 직원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그 날 이후로도 코레일은 직원 몇몇이 조를 짜서 한 달에 한 두 번씩 정기적으로 복지관을 찾아와 열심히 자원봉사를 했다. 그런데 시간 좀 지나고 나서(몇몇 직원들과 친해진 뒤) 알게 된 사실인데, 복지관에 자원봉사를 나오는 직원들 중 일부는 전날 밤샘 근무를 하고 나온 비번이라는 사실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좀 충격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난번 기차여행을 갔을 때도 직원들의 얼굴에 다크서클이 보였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 아무리 사회적 책임이라고는 해도 쉬지도 못하고 등 떠밀려 자원봉사를 해야 하는 직원들은 또 무슨 죄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코레일 직원들이 봉사활동을 소홀히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난 이상 나는 그 이후로 코레일 직원들이 복지관을 찾아올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은 사회복지사가 아닌 다음에야 눈에 잘 띠지 않아서 그렇지 사회복지분야에서는 아주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큰돈이 드는 낙후된 복지시설을 보수해주는 것은 기본이고, 평소에는 잘 사지 못하는 값비싼 장비들도 기능보강이랍시고 신청만하면 뚝딱 지원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매년 수십 대씩 지원하는 자동차는 복지기관에서 가장 기대하는 기업의 대표적인 사회공헌활동 중에 하나다. (물론 다른 복지기관들과 수 십대 일의 경쟁을 뚫고 당선되어야 하는 게 함정이긴 하지만.......) 어디 자동차뿐이겠나. 코레일이 그랬던 것처럼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예산과 인력을 지원하기도 하고, 정기적으로 사회복지시설을 찾아가 청소며 빨래, 목욕, 시설환경개선 등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해주기 때문에 (사회복지사의 입장에서)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지난해(2019년) 국내 100대 기업의 사회공헌 총 규모는 1조 7,145억 원으로, 기업 당 평균 약 306억 원을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한 해 동안만 기업 임직원 약 40만 명이 270만 5,583시간의 자원봉사를 했고, 이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500억이 넘는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 돈 벌려고 하는 거지 뭐’, ‘하기 싫은 일 억지로 동원되는 거 아니야?’, ‘세금 내는 것 보다야 백번은 나겠지’, ‘뒤로는 비자금 조성하면서 카메라 앞에서만 열심인 척, 눈 가리고 아웅 이지’....... 라며 기업 사회공헌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리 곱지만은 않다. 누구나 한번쯤 (속으로) 생각해봤을 법한 말들이지만 기업들이 힘들게 일해서 번 돈과 직장에서 일을 해야 할 직원들이 금쪽같은 시간을 내서 사회에 봉사를 하고 있는데도 이렇게 욕을 먹어가면서까지 사회공헌활동을 하는 것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모금액의 70% 이상이 기업의 기부금에 의존하고 있는데, 그 기업의 기부금이라는 것이 몇몇 대기업에서 큰맘 먹고 한방에 기부한 게 대부분이라는 문제다. 중소기업이나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상공인들의 기부도 개인이 하는 기부금보다야 크겠지만 대기업에서 하는 기부금에 비하면 새발에 피다. 기부금이 분수에 맞게  성의가 중요한 것이지 큰 기업이 많이 내고, 작은 기업이 적게 낸다고 무슨 문제가 있겠나 싶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기업에서 통 큰 기부를 할 때는 항상 무슨 큰 사고를 저질렀을 때가 많았다. 기업총수일가의 자식들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옥살이를 해야 할 상황이거나 기업 내부의 비리문제가 터져 기업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었을 때 등등 하필이면 그런 요상한 때에 맞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명목으로 큰돈을 기부해 온 것이 우연의 일치만은 아니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옛말에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선행은 남몰래 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람들인데 요즘처럼 기업에서 대놓고 하는 사회공헌활동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오해를 사고도 남을 일이긴 하다. 그런데 나는 평소에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을 자주 접해 본 사람으로서 기업이 이렇게까지 욕을 먹어가면서 힘들게 번 돈을 사회에 헌납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기업의 사회공헌이라는 게 꼭 보란 듯이 꼭 큰돈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 의무는 아닐 텐데 말이다. 물론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은 장애인 고용 의무(장애인고용촉진법)와 같이 사회에 기여해야 할 법적인 의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긴 하지만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기업이 사회적 기대에 기여해야 할 의무는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에서는 복지재단을 설립하고 사회공헌 전담부서를 설치하면서까지 사회공헌활동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어딘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오랫동안 사회복지사로 살아오면서 마음 속 한편에 항상 찝찝하게 남아있던 해도 욕을 먹고, 안 해도 욕을 먹는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에 대해 오늘 한번 생각해본다.


   필자는 사회복지사이기 때문에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을 (업무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은 사회복지분야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기도 하지만 사회복지사에게 기업의 사회공헌사업은(공모사업-일명 프로포절-을 얼마나 따오느냐에 따라) 사회복지사의 능력을 재는 바로미터(barometer)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복지사들은 될지도 안 될지 모르는 그런 불확실하고 일방적인 짝사랑(?)에 1년에도 몇 번씩 프로포즈를 한다. 사회복지사가 기업사회공헌사업에 뭔가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 목을 메는 것은 아니고 그저 사회복지사가 된 숙명으로 되면 좋고(누가 좋을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안 되도 그만인 것이 사회복지사에게 있어 기업사회공헌사업의 단면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는 (사회복지사이니까) 기업에서 뭐든지 작은 것 하나라도 받아내기 위해 그렇게도 열심히 뛰어다녔었다(기업 사회공헌 담당자와 술도 참 많이 마셨었지ㅠ). 기업에서 주는 쌀 한 포대라도 복지기관에서는 실적이 될 수 있기에 그게 업무의 연장인양 그랬다(라떼는 말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사회복지사가 그렇게까지 열심히 뛰어다니지 않아도 기업에서 알아서 연락이 온다. 어떨 때는 막무가내로 떠맡기는 경우도 있다. 기업의 사회공헌활동이 기업 이미지 제고와 마케팅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쯤은 익히 알고 있지만,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는 기업에서 쌀 한 포대를 준다고 해도 고맙다는 생각보다는 어딘가 다른 의도는 없는지 의심부터 들 때가 많다. (이런 생각이 드는 나도 내가 싫지만) 사회복지 바닥에서 10년 넘게 일을 하다 보니 기업의 사회공헌사업도 내가 하고 있는 사회복지사업과 마찬가지로 어딘가 모르게 가치와 철학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때가 많다. 기업은 기업대로, 사회복지기관은 기관대로 사회적 책임이라는 같은 가면을 쓰고 있지만, 서로 다른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 같아 동상이몽(同床異夢)이 따로 없다.


  기업의 목적은 누가 뭐래도 이윤창출이다. 예나 지금이나 기업은 경제 발전을 통해 사회적 과제인 일자리 제공과 기업의 이윤극대화를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업경영이 기초적 운영 수준을 넘어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얼마만큼 다하고 있는지가 중요한 가치척도가 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기업경영 프로세스를 통한 ‘사회적 책임’과 다른 하나는 기업이 사회에 공헌하는 ‘사회공헌활동’이다. 첫 번째 기업경영 프로세스에 의한 사회적 책임은, 기업은 본래 제품을 생산, 판매 또는 서비스 제공을 통해서 이윤을 발생시켜 사회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제공함으로써 기본적으로 사회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는 기업이 큰돈을 사회에 기부하고 봉사활동을 하는 것(사회공헌활동)만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인줄 알고 사회공헌활동에 인색한 기업을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기업으로 낙인찍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이다. 기업의 경영은 사회적으로 일자리를 제공하는 책임뿐만 아니라 고용된 직원들과 그 가족들의 삶까지 함께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두 번째 CSR인 사회공헌활동이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기업에서 CSR은 상품화 내지는 브랜드화가 된 지 오래다. 즉,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마케팅이나 사업전략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말이다. 필자도 기업이 돈도 벌고 사회적으로도 기여할 수 있는 사업전략이야말로 일석이조의 바람직한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기업도 성장하고 사회적인 일자리도 많이 창출될 것이 아닌가. 그런데 문제는 CSR이 사업전략으로서는 기업경영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이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기업의 본업과는 별개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지금까지 내가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가만히 지켜봐왔지만 기업은 사회공헌활동을 마치 본업을 끝내고 난 뒤 자투리 시간(쉬는 시간)에 하는 자선활동으로만 인식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직원들이 밤샘 작업을 하고나서 잠도 못자고 봉사활동을 나오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다. 물론 봉사활동을 나와 얻을 수 있는 보람을 통해 밤새 일한 피로를 한 번에 날려버릴 수도 있겠지만(?) 기업의 이미지와 사회적 책임을 위해 애꿎은 직원들만 (업무의 연장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2012년 일본에서 「벌이가 되지 않는 CSR은 그만두라」는 책이 출간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CSR이 목적과 목표를 상실하고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것은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마찬가지인가보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이 좋겠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쉽겠는가. 그런데 이 책에서는 기업도 얼마든지 자기 일을 하면서 사회공헌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본업과 CSR의 통합’이다. CSR을 기업이 스스로 가진 장점 내지는 전문기술을 활용해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거나 사회적 약자나 소외계층을 돕는 일종의 기업차원에서의 프로보노(Pro bono)활동*으로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래. 바로 이거다. 기업의 CSR이 사회공헌 담당자만의 CSR이 아니라 기업 본연의 경영프로세스, 즉 생산품(product, 제품, 서비스 등)을 생산․판매(제공)하는 과정 안에 사회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바라는 CSR이다.


  벌이가 되든지 안 되든지 간에 CSR의 정확한 의미는 「투명하고 윤리적인 행동을 통해서 기업의 의사결정이나 활동이 사회 및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기업의 책임」이다. 기업의 사회공헌담당자나 사회복지사는 그 의미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은 미덕이지만, 사회복지기관은 사회적 책임을 일로 하는 곳이 아닌가. 사회공헌에 관해서는 사회복지사가 기업의 담당자보다는 훨씬 전문가이니까 기업을 물주(?)로만 생각하지 말고 기업이 사회공헌을 가장 잘 할 수 있도록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알려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복지사의 업무다. 이제는 나도 기업에서 봉사활동을 나오면 직원들을 더 이상 측은한 눈빛으로 눈치 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또 다시 기부의 계절이 찾아온다... 알쓸복잡.


*프로보노(Pro bono) : ‘공익을 위하여’라는 뜻의 라틴어 ‘pro bono publico’의 줄임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전문성(직무상의 지식․기술․기능)을 활용해 공익 차원에서 무료로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돕는 활동을 의미.



※참고문헌

한동우. (2006). 우리나라 기업 사회공헌활동의 현황과 과제. 월간 복지동향

박철, 정성재. (2009). 우리나라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유형에 관한 내용분석

정진경, (2006), 사회복지와 기업 사회공헌의 정당성, 그 균형점을 찾아서, 참여연대

신창균(한국거래소 부장), CSR과 CS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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