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야 안녕

육아일기 0

by 엉망
너를 만난 나와 네 엄마의 세상은 더 밝고 따뜻할거라 믿는다. 네가 만날 세상, 그리고 너를 만날 모든 이의 세상도 그만큼 밝고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안녕, 반가워.

#1. 3일전, 우리 부부에게 아이가 생겼다. 아직은 너무 작은 생명이다. 3주도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앞으로 잘 지켜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이나 두려움보다,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는 설레임이 더 크다. 조금 철없는 예비 부모 일지도 모르겠다.


#2. 몇달전, 결혼을 앞두고 일기를 쓰려고 했다. 매일은 너무 빨리 흘러가고, 기억은 너무 쉽게 증발한다. 그래서 적어두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30대 중반의 나도 별로 성실해지진 않았다. 금방 멈추게 되었다. 한번 멈추면 좀처럼 다시 시작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부끄러워서... 그러던 중 큰 사건이 생겼다. 결혼 한달을 겨우 넘긴 시점에, 우리에게 아이가 찾아왔다. 알레르기 때문에 먹지도 못하는, 그래서 평생 사본적도 없는, 그만큼 생경했던 살구 꿈을 꿨을 무렵, 아이가 생겼다. 매일 먹는 저녁 메뉴를 선택하는데에도 거의 고통을 느낄만큼, 결정을 잘 못하는 부부라 다른 태명을 고민할 것 없이 자연스레 살구라 부르게 되었다.


#3. 나중에 살구가 보면 서운할지 모르지만, 처음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의 감정은 생각보다 덤덤했다.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으로 상상했던것만큼 갑자기 감정이 요동치거나 벅차 오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긴시간동안에 걸쳐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했던 많고 많은 감동이나 환희, 감정적 동요를 이 아이를 통해 경험하게 될거라는 직감은 들었다. 분명하게. 그리고, 반갑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근데 당장은 말해줄 수 없으니, 꼭 기록이라도 해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 살구 때문인지 아니면 갑작스런 무더위나 저녁까지 쌓인 피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아내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동안 순간 다리가 후들거렸다. 두렵다거나 자신이 없다거나 그런 종류의 긴장 때문은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책임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정확히 알수는 없다.


#5. 아무튼, 3일이 지난 지금 가장 간절하게 드는 생각은 역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아내를 처음 만나 연애할 때도, 자주 생각하고 자주 했던 말이기도 하다. 나는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원래의 나보다, 내게 주어진 능력을 뛰어넘어, 그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아내와 살구 모두,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존재다. 그리고 한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살구가 태어난 뒤 마주할 세상은 조금 더 좋은 세상이, 그리고 살구가 만나게 될 사람들 각자의 세상 역시 조금 더 밝고 따뜻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좋은 사람이,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면, 살구 역시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조금 더 좋게 만들 수 있을거라 믿는다.


#6. 육아라는 단어 하나가 더 붙은 이 일기는 얼마나 자주, 얼마나 길게 이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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