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호텔, 대간, 언론, 스포츠, 프리먼

220319의 기록

by 엉망

#1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도 직장 동료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으리으리한 호텔에서 진행된 결혼식이었다. 내 돈은 아니지만, 하루의 행사에 써서 없애버리기엔 너무 큰 돈이 들어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랄까, 아쉬움이랄까 그런 묘한 감정이 들었다. 물론 각자 선택하는 거지만. 능력이 되면 얼마든지 하고싶은 만큼 하면 되겠지만, 나 역시 결혼 준비를 하는 입장에서 '평생 한번'이라는 말이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는 건 아닌지 때때로 고민되는 지점이 없지 않다. 단순히 돈이 아깝다거나 돈이 부족하다거나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문제이다.

결혼만 그런건 아니다. 돈을 더 잘, 더 행복하게, 더 소중하게 쓰는 방법을 배우고 고민하는 것, 지금과 같은 환경에선 더 중요한 것 같다. 항상 생각해야 할 문제다. 돈이 연관되면 자칫 마음 상하기도 쉽고, 마음 상하게 하기도 쉽고, 무너지기도 쉽고, 흔들리기도 쉽다.

아무튼 이런저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많아서 반갑기도 했고 돌아오는 길에 꽃을 잔뜩 챙겨 올수 있어서 좋았다. 근데 입이 저급해 그런지 식장의 '급'에 비해 밥맛은 생각보다 그저 그랬다.


#2

조선시대에 언론의 역할을 수행했던 대간(臺諫)들에게는 풍문탄핵이라는 권한이 있었다고 한다. 명확한 증거가 있지 않더라도, 풍문을 근거 삼아 관리들의 비위를 지적하고 처벌하도록 하는 권한이었다고. 여기까지만 보면 말도 안되는, 남용 위험이 너무 큰 사기성 권한 같지만 그렇게 단순한 제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풍문탄핵의 대상이된 관리는 일단은 자리에서 물러나고 조사를 거친 후 탄핵의 근거가 된 풍문이 사실로 드러나면 처벌을 받게 되지만, 반대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 탄핵을 제기한 대간이 도리어 처벌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끌어내리려면 자기 자리도 걸어야 하는, 일종의 승부다.

오랜만에, 언론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잠시 생각해본다. 그리고 누군가를 비판하고 공격한다는 것의 무게감, 그리고 나의 일에 대해서도 돌아본다. 항상 눈을 부릅떠야 하지만, 동시에 항상 삼가야 한다.


#3

오늘의 인물, 야구 선수 프레디 프리먼(Freddie Freeman). 응원하는 팀의 프렌차이즈 스타였지만, 지난해를 끝으로 계약기간이 끝나 FA가 됐고, 최근에 다른 팀과 계약했다.

내 스포츠 응원의 역사는 거의 중세 유럽 못지 않은 긴 암흑기였다. 언젠가 한번 따로 기록으로 정리해보고 싶을 정도다. 간략하게 적자면, 한국 프로야구의 경우 고향팀인 롯데자이언츠를 7살때부터 응원했는데, 하필 그게 1993년이었다. 롯데의 마지막 우승은 1992년이다. 지금이야 리그에 10개팀이 있지만, 몇년전까지 긴 시간동안 8개팀으로 진행되던 리그였는데, 30년동안 우승을 못한거다. 좀 심각한 팀이다. 대학 때는 별일 없는 날이면 으레 치킨집에서. 그리고 돈이 없을 땐 자취방에 모여서 친구들과 야구를 보곤 했는데 즐거운 날보다 쌍욕을 한 날이 더 많았다. 매번. 롯데팬들은 대부분 그런 것 같다. 스스로도 이 팀을 응원하는건지 아니면 증오하는건지 헷갈린다.

고등학교 시절 박지성의 등장으로 해외축구, 특히 영국 프리미어 리그가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기 시작했는데 여기서도 하필 리버풀FC 팬이 되어 버리는 바람에 긴 암흑기를 견뎌야 했다. 리버풀은 1989~90시즌 리그 우승을 한 이후 2019~20년이 되어서야 다시 우승했다. 여기도 30년이다. 10년 훌쩍넘게 치욕을 견뎌가며 응원한 끝에, 겨우 우승을 본거다.

이 한을 완전히, 깨끗하게 풀게 된게 지난해였다. 리버풀에 이어, 메이저리그 응원팀인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1995년 이후 26년만에 우승을 한거다. 90년대 후반부터 메이저리그를 봤고, 이 팀을 응원한건 2000년대 중반이니까 우승을 본것도 당연히 처음이다. 미국인도 아니고 심지어 애틀랜타엔 가본적도 없다. 게다가 뭐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떡이 나오는 것도 아닌, 단순히 그냥 취미 생활 중 하나일 뿐인데 그게 참 그렇게 기뻤다. 월드시리즈 마지막 경기가 있던 날 종일 행복했을 정도로. 아마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거나, 열성적으로 응원하는 팀이 없는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일거다. 거의 눈물 날 정도로 기뻤지만, 마음 넓은 여자친구조차 극혐할 것 같아서 말도 못했다.

그런 우승을 이끈 게 오늘의 인물 프리먼이었다. 그는 10년전에도, 그 뒤 암흑기에도, 다시 강팀이 되어 우승에까지 이른 지난해에도 팀에 있었다. 그 대부분의 기간 동안 꾸준히 최정상급의 성적을 냈고, 팀에선 당연히 에이스였고, 리더였기도 했다. 팬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선수가 우승을 하자마자 팀을 떠났다. 그도 남고 싶었다고 말했고, 그건 진심이었을거다. 그러나 이번에도, 세계 최대급 스포츠 비즈니스 세계에 낭만이 설 자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는 더 긴 계약 기간과 더 많은 연봉을 원했을테고, 팀은 그만큼 주고 싶지 않았거나 줄 수 없었을 거다. 항상 그렇듯. 아무튼 내가 좋아하는 선수는 내가 좋아하는 팀을 떠나 내가 싫어하는 팀으로 이적했다... 씁쓸하지만, 동쪽 지구 반대편의 한 팬이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고생했다' 정도 밖에 없다.

그나저나 야구도 잘하고 키도 크고 결정적으로 돈도 수천수만배 많이 벌고 해서인지 '프레디 형' 같은 느낌인데, 실은 2살 동생인걸 새삼 깨닫게 됐다. 뭐지. 이것도 씁쓸하다.


작가의 이전글술자리,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