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born in Seoul.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2학년 영어 시간에 처음 수동태 문장을 배웠다. 마흔이 넘도록 숫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극단적 문과형 인간이 대학 진학할 수 있었던 데엔 언어영역, 즉 국어와 영어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점자책으로 무려 일곱 권, 국민 수학 참고서로 명성이 자자했던 『수학의 정석』을 인수분해 이상 나가지 못했다. 도형이 나오고 함수가 나오면 문과형 인간은 속절없이 정신을 놓았다. 한 문제 풀기 위해 끙끙거리는 시간이 아까워서 그 시간만큼 영단어 더 외우기를 고집했다. 다행히 국어나 영어, 사회과 공부는 억지 아닌 의지로 할 수 있었다. 중등 특수교육과에 진학하여 교과 부전공을 선택할 때 영어를 택하고 싶었다. 유일하게 흥미가 동하는 과목이었으므로 재고의 여지가 없었음에도 난 일반사회 교과 담당 중등 특수교사 자격증을 받았다.
나는 이료교사다. 맹학교에서 시각장애인들의 보편 생업인 안마·마사지·지압 이론과 실기 관련 교과를 가르친다. 초등 입학 무렵 시력이 저하되기 시작하여 중학교부터 점자로 공부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숙명처럼 안마를 배웠다. 안마사 아니면 대학 진학 두 갈래 길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밤일이었던 안마를 업으로 삼고 살 자신이 없어서 진학했다. 특수교사에 대한 선망이나 청사진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 눈뜬 자들의 사회에서 눈감은 소수자로 살아남기 기술로 체득한 것이 주변 상황과 도움 받기 최적화된 조건을 저울질하여 우선순위를 정하는 패턴이었다. 나아가 눈뜬 자들의 선택을 받거나 그들과의 유대관계를 통한 자연스러운 도움이 상호 존중 혹은 우정, 돌봄과 시애 사이 어디쯤에서 적당히 맞물릴 수 있도록 인간관계망을 구축해 놓고, 안전한 방어벽을 치는 행위였다. ‘나’ 아닌 ‘너’ 위주 선택이어도 무리 속에 머물 수 있어야 비로소 안심했다.
스물넷, 꽃다운 나이부터 이료교사로 인했다. 성인 남학생들과 안마 실습하는 것이 못내 불편했다. 상호 간 사심 없었어도 교사가 즐겁지 않으니 물처럼 흐르는 수업은커녕 매차 시 45분 수업이 녹슨 자전거처럼 힘겹게 굴러갔다. 지도안 공식에 맞춰 선행학습 내용을 확인하고, 본시 학습 목표를 공지하고, 안마 술식을 시범 보이고, 학생들이 직접 실습해 보는 방식으로 지도했다. 메마른 풀잎처럼 시든 경력이 쌓여갔다. 학령기 학생들과 장애 관련 문학 작품을 얘기할 때 낯선 생기가 샘솟았다. 감은자들의 애환이나 고충은 남녀노소 닮은 꼴이었으므로 담배 찐 냄새 묻은 푸념 얼레가 술술 풀리면서 흐린 가슴 가슴에 연이 되어 날았다. 스스로 창살 없는 감옥을 쳤다. 완벽한 수동태가 되어 방구석에 숨어 있으면 부딪히고 깨지고 실패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감은자로서 고상한 돌봄 주체는 될 수 없었으나 내 공간 영역에서의 여지는 있었다. 교실 내에서는 누구보다 열심히 웃고 말했지만, 굳이 내 공간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고심 끝에 딸아이를 낳았다. 생전 처음 주체할 수 없는 능동 본능이 꿈틀거렸다. 마음은 저만치 앞서 있는데 손발은 더디디 더뎠다. 감각 아닌 관념으로 축적한 학식은 내 안에 헛된 자아상을 산산조각 냈다. 사정없이 부서지고 망각하기를 반복했다. 뜨거운 마그마가 되어 힘없이 흘러내렸다.
남편은 때때로 내게 분노 에너지를 선사한다. 강력한 불씨는 의외로 능동 의지를 고취시킨다. 안 보이는 것이 벼슬이냐고 조목조목 따져 묻고,, 이사한 새 아파트 현관 세 곳에 시각장애인 음향 유도기를 설치한 후 내 손에 리모컨을 쥐어 준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정확하게 요구하라며 신경질을 부리고, 딸아이 생활 지도는 용돈 인상과 삭감 조항을 들어 지능적으로 관리한다. 탁월한 분석력으로 경제 흐름을 읽어 투자하고, 공무원 집안 출신답게 모든 지출은 영수 금액 기준이다. 에누리 없는 능동 부족이다.
선택 기준이 어디까지나 ‘나’여야 하는 남자는 ‘주변상황’에 따라 경계도 목적도 없이 흔들리는 여자를 이해할 수 없다. 능동을 꿈꾸고 동경하면서도 번번이 수동을 자처하고 마는 여자는 마그마로 펄펄 끓다가 굳고 다시 굳는다. 그렇게 아주 천천히 나만의 가치와 주관을 굳혀 간다.
가가호호 온 식구가 분주한 김장철이 다가왔다. 학교에 기거하며 주말에만 귀가하는 저시력 학생 대중이가 밉지 않게 투덜거린다.
“저는 분명히 도와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저에게는 아무것도 시키지를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게임하고 먹방 보다가 왔습니다.”
‘결과물이 부실하다. 이유도 타당하지 않다. 처분만 기다리며 순하게 크는 너희들아 선생님이 도와줄게. 우리 같이 각자 삶에서만큼은 주인 노릇 해보자. 쉬 설득당하지 않는 주관과 안목 기르며 느리게라도 움직이자. 그래서 실패도 좌절도 눈물도 그냥 맛보자. 두렵지만 함께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