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는 지적장애가 있다. 잠꾸러기이고 자
기 주장이 매우 강하다. 그 학급 수업을 들어가기 전에는 홍시가 그렇게 수다스러운지 미처 몰랐다. 쉬는 시간이면 어슬렁거리며 소리도 없이 이교실 저 교실 문을 열어보고, 안마 실습대가 있는 교실에 들어가 내 집 안방인 양 편안히 누워서 유유자적 휴식을 즐겼다. 단순 시각장애 학생의 경우 안마사 자격증 취득을 위해 군사 훈련에 버금가는 고된 연습을 반복하지만 홍시처럼 지적장애가 있는 친구들에게는 개별화된 교육 내용을 적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3월부터 유심히 홍시를 관찰했다. 기분이 좋으면 친구들에게 장난을 걸었다. 자발적으로 말했고, 다른 친구들 얘기를 듣다가 불숙 대화에 끼기도 했다. 아이유 노래를 좋아했고, 교사가 묻는 말에 가끔 적절하게 답했다.
“홍시, 민수가 왜 좋아? ”
“잘 생겼어.”
이런 식으로 본인이 좋아하는 사람이나 물건에 대해 명확한 의사를 표했다.
문제는 홍시가 심술을 부릴 때인데….
주관이 뚜렷한 녀석이고 보니 황소고집이 따로 없다. 교사라면 마땅히 학생의 돌멩이 같은 고집도 폭신한 카스텔라처럼 요리할 줄 알아야 할진대, 내 소양이라는 것이 미천하기 짝이 없다.
실습실에만 오면 침대 하나를 차지하고 누워 다디단 오침을 즐기시는 폼이 영 못마땅했다.
색칠공부와 애니메이션 캐릭터 퍼즐과 간단한 사칙 연산 등 홍시 주의를 끌만한 아이템을 늘어놓고, 아이유 노래로 풍악까지 울려댔다. 다른 학생들이 실습하는 동안 홍시가 해야 할 과제를 상냥하게 설명했다. 기세 좋게 묵묵부답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홍시가 보란 듯이 베개를 가지고 오더니 침대에 길게 누웠다.
“김홍시 일어나. 지금 수업 시간이야.”
꿈쩍도 안 했다. 오히려 안경을 벗고 머리끈을 풀었다.
다른 학생들 진도도 나가야 하는 상황에 실랑이가 길어지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몇 번인가, 자고 있는 홍시를 모른척했다. 작심하고 한 번은 꺾어야 했다.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가가 아이를 일으켰다. 홍시는 완강하게 나를 밀어냈다. 어찌나 힘이 좋은지 몸무게라면 빠지지 않는 내가 휘청 뒤로 밀렸다. 분이 안 풀렸는지, 옆에 있는 알코올통이며 미니뜸 등을 모조리 바닥으로 쓸어버렸다. 1차전이 끝났다.
그렇게 침대를 다시 차지한 홍시가 유유히 취침에 들어갔다.
모범생 민수가 한숨을 쉬며,, “선생님, 다친 데 없으세요?” 걱정해 주었다.
이튿날, 이번에는 홍시가 교실 전등을 껐다. 수업 중에 갑자기 불이 꺼지자 저시력 학생들이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처음 몇 번은 홍시가 끄고, 내가 켜기를 반복했다. 다음엔 대중이가 스위치를 온몸으로 막고 철통 수비했지만 실패했다. 홍시가 무서워하는 침을 컨트롤러 위에 놓아 봐도 아무 소용없었다. 전등으로 발동된 홍시 고집은 지독했다. 30번도 넘게 전등을 꺼버리는 홍시에게 불끈 화가 치밀었다. 참다못한 내가 홍시를 교실 밖으로 내보냈다. 다른 친구들 수업 방해하면 여기 있을 수 없다고 엄포를 놓으며 문을 닫았다. 쫓겨난 홍시는 기가 죽긴커녕 수업 중인 옆반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부랴부랴 사과하고, 데리고 나왔다. 빈 교실로 가서 불 끄는 거 아니라고 힘주어 몇 번을 말했다.
“집에서는 꺼야 돼.”
“여긴 홍시집 아니잖아? 집 아니야. 불 끄면 안 돼. 민수 있는 데 가서 불 끌 거야, 안 끌 거야?”
“안 끌 거예요.”
독립투사처럼 결연히 실습실에 입장했다. 우리를 기다리며 도란도란 서로 안마하던 학생들이 일제히 홍시를 주시했다. 찰떡같이 약속해 놓고…. 딸깍 불이 꺼졌다. 2차전이었다. 번번이 진안 한 실랑이를 지켜봐야 하는 학생들 피로도 극에 달해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침대로 걸어가는 홍시였다. 기가 막히고 약이 올랐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선생님이랑 뭐라고 약속했지?”
대답도 안 했다. 나의 빈곤한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홍시 휴대폰 줘. 약속 안 지켰으니 선생님이 가지고 있을 거야. 빨리 꺼내.”
휴대폰은 홍시의 최애 아이템이었다. 자기 물건에 대한 집착이 강한 친구니, 치사하긴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안돼. 휴대폰 내 거예요.”
짜인 각본처럼 발끈 반응했다. 3분 정도 기다렸지만 순순히 꺼내놓을 리 없었다. 홍시 주머니를 확인해 볼 요량으로 내가 손을 뻗으니 앵무새처럼 말했다.
“몸 만지면 큰일 나요. 몸 만지지 마세요.”
지적장애가 있는 딸이 걱정되어 엄마가 훈련시켰을 그 말에 스민 불안이 일순 공감되어 멈칫했다.
“그래. 누가 홍시 몸 만지면 그렇게 말해야 돼. 근데 지금은 수업 시간이니까 여기 예쁘게 앉아보자.”
자리에 잠깐 궁둥이를 붙인 홍시가 다시 불을 껐다. 그날 수업은 그냥 그렇게 끝났다. 전등은 둘째 치고, 후줄근해진 내 멘털 수리가 다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