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로서 정체성을 다져가는 기분이 썩 뿌듯했다. 타인의 주목을 체질적으로 견디기 힘들어하는 나도 쓰는 사람으로 만큼은 공증을 받고 싶었을까?
첫 수필집이 녹음도서로 제작되어 시각장애인 도서관에 게시됐다. 『점자로 쓴 다이어리-김성은 지음』이란 봉사자님 낭독이 벅찬 부끄러움과 충일감을 몰고 왔다.
나 아닌 다른 저자를 마주하는 마음으로 수 십 번 읽었던 원고를 들었다. 떨리는 손길로 무한 퇴고를 반복했어도 여지없이 군더더기 문장이 남아 있었다.
내가 중증시각장애인임을 증명하는 복지카드처럼 『점자로 쓴 다이어리』는 김성은이 쓰느냐 사람임을 인정하는 표식 같아 고마웠다.
학교에서 제법 큰 규모로 치러지는 저시력 세미나 행사가 올 해도 진행됐다. 전라북도에서 유일한 본교 저시력 센터를 홍보하며, 저명한 눈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저시력인들의 학습과 의학적 관리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온누리·푸른 안과 전문의 강의, 성공적으로 사회 활동하는 저시력인들의 체험 수기 발표, 보조공학기기 업체들의 신제품 전시 및 시연으로 구성되는 매우 알찬 행사였다.
2021학년도 저시력 세미나 무대에 선 시각장애인은 바로 7년 전 본교를 졸업하여 명문 국립대 행정학과에 진학한 남학생이었다. 학업에도 체육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던 호는 대학 생활에 원만히 적응하여 무난히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그것도 국가직과 지방직 관문을 동시에 통과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호는 발표자로 손색없었고 마침 행사 시기에 가까워 모교에 방문한 터였다.
기꺼이 발표를 수락한 호에게 청중들이 궁금해할 만한 사안을 중심으로 원고 작성 방향을 설명했다.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녀석이 성취에 도취되어 부리는 넉살이 밉지 않았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느라 휴학을 하고, 시험에서 낙방하며 묵묵히 견뎠을 불안을 충분히 짐작했으므로.
1차 원고를 받았다. 단답형 답안지 같은 문서 앞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발표 현장을 시뮬레이션하며 서술형으로 써보라는 조언과 함께 1차 수정을 주문했다.
2차 원고를 받았다. 비문이 많았고 청중들이 궁금해할 객관적 데이터보다는 사적인 성취감에 매료된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아쉬웠지만 그의 의도를 존중해야 했다.
2차 수정에 추가되었으면 하는 항목들을 문장으로 정리하여 3차 원고 가안을 보냈다. 그다음은 발표자 몫이라고 생각했다. 행사 당일 아침까지 나로서는 최선을 다 한 작업이었다.
9월에 건강검진을 받았다. 산부인과 진료가 시급했다. 불편하고 불안한 검사가 이어졌다. 수술을 권유받았지만 시술을 택했다. 근퇴도 신경 쓰이고 코로나 상황에서 보호자가 한 명으로 제한된다는 대학병원 지침이 버거웠다. 결정장애 중증 환자 김밀도가 수술과 시술 사이에서 갈팡질팡 어쩔 줄을 몰랐다. 시술 당일, 학교에서는 공들여 준비한 행사가 진행됐다. 병가였던 그날 아침까지 호와 통화했다. 그의 원고를 토대로 내가 완성한 문서를 메일과 카톡으로 보내 놓고 발표 주안점을 당부했다. 호는 넙죽넙죽 “네.”라고 대답했다.
시술이 끝나고 회복실에 누워 있는데 카톡 알림움이 울렸다. 2~3차 원고 수정 과정을 알고 있는 학교 선생님이었다.
“호가 2차 원고로 발표를 했네요.”
의아했고 기운이 빠졌다. 내막을 모르는 선생님들은 나쁘지 않았다는 반응이었지만, 진료를 앞두고 늦은 밤까지 책상에 앉아 원고를 손질한 내 노력이 무색했다.
행사를 마치고 떠난 호에게서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녀석이 3차 원고 메일을 착오 없이 수신했음을 확인하고 나는 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원고 수정해 주신 덕분에 질문에 대답 잘했어요. 그런데 마지막 원고는 제 얘기보다 학교 얘기가 더 많은 것 같아서 그냥 전에 것으로 했어요.”
이미 끝난 행사였다. 나는 헛수고를 했고, 호는 여전히 흥취에 젖어 있었다.
취업 전에 마지막 여유를 달게 즐기라고 덕담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호는 내게 쓰는 사람으로서의 훈련을 선사하고 수화기 저편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