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참 가기 싫은 곳이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안과 VIP였다. 1년이 멀다 하고 수술받았고 그때마다 기본 한 달은 입원했다. 환자복 입고 손등에 링거줄을 연결한 채 병실에 갇혀 지내는 동안에는 두 눈에 붕대가 붙어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회진 도는 의료진 무리 발자국 소리가 총, 칼 든 군인들의 그것처럼 무서웠다.
마흔이 되니 생애전환기라 하여 건강보험 의무 검진 종류가 추가됐다. 2년에 한 번씩은 위내시경, 자궁경부암 검사를 받았다. 동행한 활동지원사 대기 시간이 마음에 걸려서 비수면을 택했다. 눈물, 콧물에 침까지 흘려가며 300분 같은 3분을 견뎠다.
주사도 검사도 넘치게 받아봤건만 산부인과와 치과 진료는 유독 곤혹스럽다. 일상적으로 출근하여 업무를 정리했다. 오후 늦게 부인암센터에 입원했다. 관장을 하고 금식을 했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아침이 왔다. 7시 손목에 이름표를 했다. 주삿바늘을 꽂고 양쪽 의안을 제거했다. 간호사와 보호자가 끙끙거리며 나를 수술용 침대에 옮겼다. 바쁘게 바퀴가 굴러가고 엘리베이터가 움직였다. 동생 목소리가 멀어지면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수술 대기실에 누워 있는 30여분이 천년처럼 길었다. 다급한 발소리, 환자 이름 확인하는 소리, 젊은 엄마가 힘주어 우는 아이 달래는 소리들이 두 귀를 어지럽게 채웠다.
“할아버지, 환자분과 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아, 남편이라고 해주세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돼요. 저희도 법적 보호자를 확인해야 해서요. 정확하게 말씀해 주셔야 해요. 남편분 맞으세요?”
“아 그게 저…”
우물쭈물하는 할아버지 목소리를 비집고 톤 높은 할머니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아 그러니까. 그 양반 남편은 아니고. 내가 이혼을 했어. 지금은 그 사람이랑 같이 있고 새끼들은 바쁘고 해서…”
“아 네. 할머니 그럼 할아버지가 남편분은 아니신 거죠? 원래 이렇게 하시면 안 돼요. 오늘은 보호자 등록 해드릴게요.”
“응. 그 양반한테 수술 상황 보내주면 돼.”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조금 난감해하시는 목소리가, 낯선 간호사에게 두 분 사생활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못내 불편해 보였지만, 당신들께 서로는 다시없을 버팀목인가 싶었다. 얼음처럼 굳어진 내 몸에서 용솟음치던 아드레날린이 우연히 들려온 은빛 로맨스 덕에 잦아들었다. 마취 주사를 맞고 의식을 놓기 직전까지 의사들은 내 이름과 생년월일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
어느 날 치과 진료대에서는 이런 소리가 내 귀를 꽉 채웠다.
“너 고개 돌리면 얼굴 찢어져. 똑바로 안 있어? 가만히 있으라고.”
엄마 목소리가 그야말로 표독스러웠다. 누가 들어도 언니와 동생을 대하는 엄마 목소리 온도차가 확연했다. 작은 아이는 무난히 마취 주사를 맞았는데, 언니가 겁에 질려 몇 번을 실패한 참이었다.
“승아가 고생할 줄 알았는데, 언니가 돼서 저게 뭐냐? 치료 끝나면 엄마가 맛있는 거 사줄게.”
‘안 그래도 겁에 질린 아이에게 저런 말을 꼭 해야 하나? 손이라도 잡아주지. 엄마가 달래고 격려해 주면 아이가 덜 불안할 텐데.’
울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언니를 보다 못한 동생이 다가갔는지 엄마가 차갑게 말했다.
“가지 마. 쟤는 혼 좀 나야 돼. 그냥 혼자 둬.”
‘언니를 다독이고 싶어 하는 동생의 기특한 마음 칭찬은 못해줄망정 대놓고 둘을 비교하며 사정없이 큰 아이를 몰아세운다. 저 엄마 자매를 너무 편애하는구나. 저런 태도 아이들에게는 상처가 될 텐데…’
금니를 만드는 동안 턱이 아프도록 입은 벌리고 있으면서 나도 모르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큰 아이는 왜 울음소리조차 못 낼 정도로 주눅이 들었을까? 가장 친밀해야 할 엄마는 어떤 연유로 지킬박사와 하이드에 버금가는 두 얼굴을 가지게 되었을까?’
간호사들이 어르고 달랜 덕에 간신히 언니 마취에 성공했다. 주사를 놓으며 침착한 의사 선생님도 진땀을 빼는 것 같았다. 어렵사리 주사를 맞은 큰 아이를 간호사들이 칭찬해 주었지만 엄마 목소리는 끝내 들리지 않았다.
1인실 사각 침대가 아무리 안락해도 그 위에 누워 있으면 영락없이 두 귀가 팽창했다. 뾰족하고 시리게 자라나 복도를 오가는 슬리퍼 소리를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였다. 발자국 소리들이 커다란 바늘을 들고 당장이라도 나를 공격할 것 같아서 밤이고 낮이고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복강경 수술 후 4박 5일 입원 처방을 받았지만 무리하게 하루 일찍 퇴원했다.
안전한 내 집 안방 침대에 누우니 비로소 잠이 쏟아졌다. 꿈 조각도 없는 깊은 잠이 꿀송이처럼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