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밀도 Jun 17. 2024

번개가 체질이었어

 새벽녘에 일어나 너한테 한바탕 편지를 쓰고 침대에 누웠는데, 조그라미에게 전화가 온 거야.

“친구야, 나 지금 친구 보러 간대이. 두 시간 40분 나온다.”

“헉, 언니 가만있어봐. 내가 갈게. 기차표 없으면 다음 주 어때? 내가 가는 게 낫지.”

“어허, 내가 간다니까.”

“그럼 우리 중간에서 만납시다. 그것이 맞소.”     

이렇게 성사된 번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기차표부터 잡았어.

장애인콜을 접수하고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을 구운 거지.

3시간 후 우린 천안에 있는 브런치 카페에 마주 앉았어.

빠네와 파스타를 주문하고, 입이 너무 바빴지 뭐니.

먹어야지, 말해야지, 웃어야지, 마셔야지.

느긋하게 커피까지 마시고서 근처 쇼핑센터로 향했어.

여름맞이 출근룩을 손으로 구경하며 탈의실을 들락거렸지.

조그라미가 내 손을 행거에 대주면 내가 옷감의 질감을 탐색하고 단추며 디자인을 하나씩 만져보는 거야.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른 다음 친구나 점원에게 색깔을 물어.

보통은 나 블랙을 선호하거든.

얼룩 걱정할 필요 없고, 무엇보다 날씬해 보이니까.

착용감 좋고 시원한 의상을 몇 벌 구매했어.

두 손에는 쇼핑백이, 주머니에는 영수증이 쌓였지.

맨날 살쪘다 하더니, 웬 걸.

 조그라미 사이즈는 매우 바람직했어.

내가 문제였지.

무려 세 시간을 하얗게 불태운 두 여자가 부대찌개로 저녁을 먹었어.

내 친구, 거의 반사 수준으로 펄펄 끓는 찌개를 내 앞접시에 덜어주는 거야.

조그라미 누나랑 밥 먹으면 매번 내 배가 터져요.

마지막 코스는 갤러리 같은 어마무시한 규모의 근사한 카페.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스크린에 바다며 자연 품경이 펼쳐져 있다고 했어.

천장은 높고, 스피커는 맑고, 탁자는 원목에 벽면에는 그림이 걸려 있는 거야.

무엇보다 그 넉넉한 규모에 이 시골 맹인 입이 떡 벌어지더라니까.          

보고 싶어 한 달음에 달려갈 수 있는 친구.

같이 있으면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가는 친구.

무엇을 줘도 아깝지 않은 친구.

나처럼 바람을 좋아하는 친구.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나눠가진 친구.

그녀는 누나에게 그런 친구여라.                                                                                                                                         

매거진의 이전글 랩걸 내 동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