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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Jul 08. 2024

본다는 것

“큰이모 저 점자『로 쓴 다이어리』 독자예요. 그거 있잖아요. 불량 슬라임 그게 제일 재미있었어요.”

“큰이모 저 우리 학교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이모 책 신청했어요. 우리 담임선생님이랑 사서 선생님도 읽으신다고 했어요.”

“우리 반에 작가 지망생 친구 있어서 제가 큰이모 자랑했어요.”

“우리 학교에 그 휠체어 타시는 고정욱 작가님 오셔서 강연하는데 제가 이모 얘기 했어요.”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백만번은 만나본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강산이에게 누나집 꼬마들이 그렇고, 유주를 비롯한 조카들에게 강산이가 또 그래.

유주 네 살 때 용인으로 강산이 장례식에 간 것이 유주가 강산이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거였구나.

위에 소개한 누나 독자 꼬마는 막내 누나의 큰아들 ‘시우’야.

현재 5학년이고, 누나처럼 첫째라서 우리 둘이 통하는 것이 좀 있지.

자고로 K맏이들의 설움이란 것이 있어요.

차도남 강산이는 알랑가 몰라.

동생이랑 싸워도 형님만 혼나는 건 기본.

누나는 어릴 때 그렇게 작은 누나가 따라다닌다고 해서 골치가 아팠잖아.

나 친구랑 논다는데 왜 따라오냐고.

막내 누나는 나 초등 때 수업하는 교실에 찔찔 짜면서 찾아온 적도 있었다.

집에 엄마가 없는데 문이 잠겼다나.

담임선생님이 짝꿍을 뒤로 보내고 내 옆에 어린 동생을 앉혀 주셨던 기억이 있구나.

작은 누나랑 같은 방, 같은 책상을 나누어 썼었거든.

싸우기만 하면 서랍을 비우라고 유세를 떨었던 거야.

치사하기도.

언니씩이나 돼서 왜 그랬을꼬.

지금 생각해도 낯이 뜨겁다는….

그럼 또 작은 누나는 연필이며 메모지며 다 꺼내고, 몇 분 안 가서 다시 원위치시키는 것이 우리 자매 일상이었어.

막내 누나는 나랑 다섯 살 차이가 나서인지, 싸운 기억은 없네.

태생이 원체 순딩이잖아.

누나가 한참 자전거 타고 동네방네 휘젓고 다닐 때 막내 누나는 뒤에 태우고 달렸던 기억만 각인돼 있어.

두 발 자전거에 서로 등을 대고 뒤로 태워 준 적이 더 많았거든.

막내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세상 순딩이였는데, 아침 등교할 때마다 옷은 그렇게 까탈을 부렸더랬다.

멋쟁이였어.

시장에서 지 맘에 드는 옷을 사달라고 바닥에 굴러본 이력이 있는 꼬마였지.

뚝심 하나는 인정하노라.

그때나 지금이나 싸움에는 젬병이라 나나 막내나 맥없이 이불킥 선수로 세.

뚝심 강한 그녀가 아들 둘을 낳은 거야.

조카들이 ‘시’짜 돌림이라서 우리 가족 사이에서는 비타민 C형 제로 통해.

유독 가족을 챙기고 동생을 사랑하는 시우 헝아가 기특해서 큰이모가 붙여준 별명은 ‘똑시우 별시우’.

이른 아침 똑시우에게 전화가 온 거야.

“큰이모 제가 강산이 사진 더 찾았어요. 엄마 블로그에 있을 것 같아서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서 찾고, 또 ‘삼성안내견학교’ 홈페이지에도 있고요. 

큰이모 책 나오면 제일 처음 원고 저 사인해서 주시면 안 돼요? 이모, 사랑해요!”     

우리 별시우 다시 태어난다면 ‘개’가 되겠대.

이은경 샘의 초등 매일 글쓰기 책에 나온 주제 중 하나였거든.

“개는요. 헤엄을 잘 치고, 부드럽고, 숙제가 없으니까요.”

반짝반짝하여라!

‘사진!’

누나 손이 미처 가 닿을 수 없는 세계라서….

나, ‘손’이 ‘눈’인 사람이잖니.

사실 카톡 프로필 유주 사진도 언제 것인지 잘 몰라.

바꾸는 것도 남의 손을 빌려야 하니 성가시고, 무엇보다 자꾸 잊어버리게 돼.

그런 맥락에서 강산이 사진이 누나 손에 몇 장 없더라고.

서운해하지는 말아 주라.

내게는 그냥 종이나 액자일 뿐인 물건을 혹여라도 본의 아니게 훼손할까 무서워서 누나 사진은 가급적 안 가지고 있으려고 하거든.

누나 화장대 액자 속에 강산이 웃고 있는 사진 하나는 확실히 여기 내 손안에 있소이다.

신부대기실에서 우리 같이 찍은 사진이며 함께 했던 날들 속에 추억이 무수했을 텐데….

 우리네 삶 속에 시각의 영역이 얼마나 크고 또 찰나인지 새삼 실감한단다.

입원했던 동료가 출근을 했어.

목소리나 행동에 큰 변화가 안 느껴져서 난 생각한 거야.

‘뇌질환이어도 젊어서 회복이 빠른가 보다.’

그런데, 얼굴은 달랐던 거지.

무려 10kg나 체중이 줄었다는 소리를 듣고서야 누나 체감이 되더라.

‘아! 병원에서 많이 힘들었나 보다.’

퇴원한 동료를 맡닥드린 그 순간 한눈에 들어오는 그의 안색과 외모가 매일 통화한 내게는….

누군가의 언어를 빌리지 않고서는 도저히 인지할 수 없는 정보였음을….

‘조심해야겠구나. 내 단편적인 느낌만 믿고 판단하면 큰 실수 하겠다.’

 내 머릿속에 선명한 강산이는 어디까지나 전지적 누나 시점이지만, 사진 속에 강산이는 보는 이들의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시선에 담긴다는 지극히 당연한 진리요, 한계를 확인하게 되네.

사고의 시야만큼은 캄캄해지지 않도록 누나 더 긴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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