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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와 거지

by 밀도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어.

12시 체크아웃이라서 다섯 개 케리어가 모두 입을 쩍 벌리고 일곱 식구 닷샛 짐을 가열차게 받아먹고 있었지.

2층을 오르락내리락 분주하게 짐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조식 시간 마감이 임박한 거야.

서둘러 집을 나섰어.

흥보네 식구들처럼 옹기종기 둘러앉아 빈 접시를 차곡차곡 쌓았지.

연유와 우유를 적절히 조제하여 느긋하게 커피까지 한 잔 마시고서 버기카에 짐을 실었어.

‘진짜 퇴실이구나. 안녕 풀빌라’

리조트 직원들이 10분 정도 비품을 확인하더니, “OK, Bye.”

한낮에 퇴실한 일곱 나그네, 비행기 시간은 새벽 1시.

다시 시내로 들어와 마사지샵을 찾았어.

이번에도 다른 식구들은 낭창낭창한 아로마, 90분 한국 맹인 안마사만 타이마사지.

‘오일 없이, 매우 강하게’를 선택한 거야.

덩치가 좀 있는 언니가 등장했어.

타이마사지는 스트레칭도 있고, 누르기며 흔들기가 주요 수기라서 힘이 필요하거든.

역시 오른쪽 어깨가 문제였어.

다른 부위는 끄떡도 없는데 오른쪽 삼각근부터 극상근, 극하근, 상완이두근, 오훼완근 쪽 만지니까 비명이 절로 나더라고.

“괜찮아? 힘내. 여기 많이 아파.”

“맞아. 고마워.”

난 처음에 언니가 힘 빼라고 말하는 줄 알았거든.

근데, 계속해서 나한테 “힘내!”라고 하는 거야.

힘은 언니가 죽도록 쓰고 있으면서 미안하게….

누나도 학교에서 아픈 사람들 만질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안마 참 잘 받으시네요. 여기 많이 안 좋은데 괜찮으세요?”

90분이 9분처럼 갔어.

나 같은 손님, 사실 업계에서는 ‘진상’으로 통하거든.

아주 호강독에 빠졌지 뭐.

식구들은 모두 아로마 받으면서 숙면을 취하셨다더구나.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즐겼어.

공항 가기 세 시간 전.

과연 나트랑에서의 마지막 행선지는?

작은누나 손에 있는 ‘베나자(베트남 나트랑 자유여행)’ 카페에서 얻은 풋마사지 무료 쿠폰을 아직 못 썼으니.

언제 어디서나 우리들의 두 귀를 솔깃 잡아먹는 주술 같은 한 마디.

‘원 플러스 원’

자정을 넘겨 다섯 시간이나 비행을 해야 하니 에너지도 비축할 겸 쿠폰도 쓸 겸 풋마사지샵에 방문한 거야.

전신에 별도 발마사지까지 넘치게 칙사 대우를 받은 우리 가족.

머리부터 발 끝까지 노곤노곤해져서 공항에 도착.

무난히 출국 심사를 받았어.

거기까지는 매우 좋았더라.

문제는 나트랑 공항에 대기석이 없다는 거였는데….

소문은 들었지만 그 정도일 줄이야.

진짜 레알 찐 그 흔한 의자가 없더라고.

비행기는 30분 지연되어 탑승 시간은 늘어지는데, 당장 세 시간 반을 어떻게 서서 버티냐고.

흥보네 식구, 손에 들고 있는 비닐을 모아 모아 벽이 있는 한 구석 바닥에 자리를 폈어.

유주랑 민찬이는 재워야 했으니까.

어른들은 벽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지.

노숙자가 따로 없나니.

그런데, 공항을 가득 메운 한국 사람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러고 있으니 이심전심 허허 웃을 밖에.

부산행 베트남 항공은 심지어 4시간 지연이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어.

30분 지연, 차라리 안도였지.

드디어 탑승이 개시 됐어.

누나 뒤에 줄 선 부부 대화야.

“고객에서 난민 되는 거 시간문제네. 너무 한다.”

하나같이 잠든 아이들 업고, 안고, 걸리면서 한 손에는 짐 가방 둘러멘 부모들이었어.

우리처럼 3대가 함께 온 팀도 많다더라고.

까만 하늘을 날았어.

‘안녕, 나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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