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아 누나가 학생들과 함께 해보려고 『중학생 글쓰기를 부탁해』라는 교재를 신청해서 샀어.
책을 구매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닌데, 누나가 볼 수 있도록 음성 도서 형태로 제작을 해야 하잖아.
두 달이 넘게 기다려서야 책 내용을 확인했네.
학년 초부터 보고 싶었던 교재를 이제야 점자, 확대 타입으로 다 갖춘 거야.
먼저 목차를 살폈어.
“책임지는 SNS 글쓰기, 상상하는 웹툰 쓰기, 빠져드는 소설 쓰기, 마음을 가꾸는 시 쓰기, 영화와 드라마 감상문 쓰기, 여행의 기억을 보관하는 기행문 쓰기, 주장하는 글쓰기, 건의하는 글쓰기, 의견 제시하는 글쓰기, 비평하는 글쓰기, 연설문 글쓰기”
오오오오! 현란한 이 쓰기의 종목들이여!
학생 아니라 내가 훈련해야겠더라고.
누나가 강산이에게 매일 편지를 쓰잖여.
덕분에 쓰는 훈련을 꾸준히 하면서 내 마음에 더 더 가까이 강산이를 느끼는 시간이 달달한 즐거움이요, 힐링이지.
그런데, 이 달달함에 너무 취한 나머지 그만 서간문 형태로 밖에는 글이 안 써지는 사태에 이르고 만 거야.
프로 아마추어의 고충이어라.
누나 출석하고 있는 야간 수업에 숙제를 내야 하는데 원체 진도가 안 나가서 한 학기 빡시게 고생을 했거든.
점자도서관에 연재하고 있는 글도 독자를 산정해 두고 쓰는 글이라서 가급적 발랄한 문체로 쓰게 되고.
개인 수필은 100% 1인칭 주인공 관점으로 써야 하는 글인 데다가 글감을 잡고 무게를 싣고 에피소드를 첨가하고 결말까지 무사히 ‘의미화’가 완성되도록 직조하는 작업이다 보니 뭔가 짧은 호흡으로 쓰는 편지와는 색깔이 사뭇 다른 거라.
계속 써야겠다는 강박은 있어서 몇 줄 쓰다 치운 파일들만 맥없이 쌓여가는구나.
소재도 그랬어.
누나가 보지 못해서 겪는 어떤 곤궁이나 갈등으로 국한되는 에세이가 가까운 독자들에게는 식상하고 뻔한 느낌이라는 걸 인식하고 보니 그것도 삼가야겠고.
다음 주, 야간 수필반 개강을 앞두고 겨우겨우 한 편을 제출했단다.
2학기에는 죽글이든 밥글이든 성실 제출에 의의를 두려오.
오늘은 연재, 과제, 그리고 거꾸리까지 세 개 마감 성공.
웬 거꾸리냐고?
응, 누나 요즘 퇴근길로 헬스장 가잖아.
한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몰라.
상체 운동 27분, 하체 운동 27분에 거꾸리로 마무리하는 코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유산소는 집에서 하겠노라 매번 다짐은 하면서….
짬짬이 자전거 페달 밟는 것이 전부로 세.
참! 강산아, 유주 큰엄마 요양보호사 시험에 합격하셨대.
이 더위에 공부한다고 고생하시더니 좋은 결실 있어 기뻐.
누나 인생에도 뭔가 시원한 한 방이 있어야 할 텐데.
나름 시간 앞에 정성 쏟으며 산다고 자부하면서도 문득 가슴 허할 때가 있으니.
그러니까 우물을 사랑한 개구리가….
뻔하지 않고, 위험하지 않으며, 예측불허할 우물은 어디에…?
왜 이 시점에 가수 조관우가 부른 『님은 먼 곳에』가 떠오르는 거니?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니가 아니면 못 산다 할 것을.
사랑한다고 말할 걸 그랬지. 망설이다가 가버린 사랑…
마음 주고 눈물 주고 꿈도 주고 멀어져 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