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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워

by 밀도

강산아, 누나 자립생활 전공과 1학년 학생들과 『헬렌켈러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오디오북 듣고 있다고 했잖아.

낭독 파일이 총 4개인데, 앞에 2개 파일을 듣는 동안 여학생 하나가 체전 대비 훈련 관계로 인정 결석이었단 말이지.

오랜만에 은별이가 학교에 왔으니, 앞에 줄거리를 얘기해 줘야 했겠지?

그 반에 은별이에게 유독 친절한 남학생이 하나 있어요.

얼마나 자상하게 설명을 잘하는지, 듣고 있는 내가 다 빠져들더라니까.

“헬렌켈러, 빛도 못 보고, 소리도 못 듣고, 말도 못 하는 장애인인데, 설리번 선생님이 소리 내는 것을 가르친 거야. 그러니까 손 줘봐. 니가 말하면서 목에 이렇게 손을 대면 진동이 느껴지잖아. 그 울림이랑 혀의 위치, 입술 모양 그런 것을 일일이 만져보게 하면서 가르쳤대.”

“헐”

옆에서 다른 남학생이 거들어.

“인형 좋아하는데, 그거 이름 알려주려고, 인형을 갑자기 확 뺏어. 헬렌이 짜증 내고 울면 손바닥에 인형이란 글씨 써주고 인형을 주는 거지. 뺏고 쓰고, 뺏고 쓰고, 그 단어를 알 때까지 계속했대..”

“아하! 대박”

오오오오!

‘협동 학습’의 결정판, 아름다워라.

이전 시간에 들었던 내용을 너무도 상세히 기억하고 또 설명하는 학생들이 그저 어여쁜 거야.

그러니까 누나가 유주 어릴 때 읽어줬던 책 내용을 생각지도 못하게 아이가 기억하고 말할 때 차오르는 그 감격과 같은 느낌!

“엄마, 그 있잖아 이송연 작가가 쓴 동화가 재미있는 거 같아. 전에 엄마가 읽어준 슈퍼 아이돌 오두리 그것도 이송연 작가 거였잖아. 독서평설에 나오는 동화도 그 작가가 쓴 거 많더라.”

선수 학습 확인을 마치고 3번 파일 낭독을 듣기 시작했어.

헬렌이 쓴 ‘서리임금님’이 표절 시비에 붙게 되고, 설리번 선생님은 헬렌을 보호하고자 집으로 데려와. 힘든 시간 끝에 표절이 아니라는 판결이 나고, 헬렌이 선포하거든.

“선생님 저 하버드대학에 가고 싶어요. 무엇을 준비하면 되나요?.”

이 대목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장면이 나와.

“헬렌이 대학에 가고 싶은 꿈을 꾸는 거 같은데 그건 아무래도 힘들지 않겠어요?

으음, 그렇죠. 헬렌이 대학에 가는 건 말도 안 돼요. 보지도 듣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그 어려운 대학 공부를 해요. 헬렌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여기서 우리 학생들 반응.

“지들이 뭔데 감 놔라 배 놔라야. 진짜 웃겨.

아 상관 마시라고요.”

너무 귀엽지 뭐니.

그렇게 끝종 칠 시간이 되고, 내가 물었어.

“얘들아 과연 헬렌은 대학을 갈까 못 갈까?”

“으음 갈 것 같아요.

갔으니까 이 책이 나왔겠지요?

못 갈 것 같아요.”

“그래, 우리 다음 시간에 들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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