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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로 말해요

by 밀도

주말을 맞아 누나가 효도 한 번 해보겠다고 이웃 도시에 ‘임영웅’ 콘서트 영화를 예매한 거야.

가는 길은 차편이 있어 수월했어라.

음향 빵빵한 공간에서 임영웅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들으니 그야말로 힐링이더라고.

가사도 어쩌면 그렇게 이뻐.

누나 사실 임영웅 노래를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어.

왜 드라마 OST “사랑아 왜 도망가” 있잖아.

그 노래를 우리 학생이 엄청 좋아했었거든.

그래서 같이 흥얼거릴 정도로는 알고 있었지.

“이제 나만 믿어요”라는 노래 가사.

흐미, 앞으로 누나는 임영웅만 믿고 살란다.

객석은 여유가 있었어.

혼자 오신 어머니들도 많은 것 같더라고.

모처럼 엄마랑 문화생활을 누리고, 근처에서 점심을 먹은 다음 뜨거운 커피를 한 잔씩 손에 쥐었어.

이런, 커피를 사긴 했는데 우리가 돌아오는 길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잖여.

도저히 뜨거워서 입에 대지 못하는 컵을 들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한 거야.

차 많이 밀리더라.

바로 이웃 도시인데도 누나가 사는 동네와는 사뭇 다르더라고.

누나나 엄마나 서울 살면서 교통 체증은 아주 원 없이 배불리 겪었잖아.

이제 시골 사람들 다 되었는지 차 밀리는 것이 생경하더라니까.

영화관에서 시외버스 터미널까지 거리가 제법 됐어.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50분을 달렸지.

터미널에 내려 다시 우리 집까지 택시를 타야 할 거리인데, 형이 유주 먹을 장조림을 사가지고 오라는 거야.

중간에 가게 들러 가려니 택시 타기가 애매한 거지.

“못 먹어도 고.”

우리 모녀, 그 뙤약볕에 걷기 시작.

우아는커녕 땀 뻘뻘 흘림시롱 숨 헉헉거림시롱 아주 모양 빠지게….

자가용 있는 사람들 세련되고 품위 있게 4~50분 주파 거리를 산 넘고 물 건너 다녀온 거지.

과연 이것은 효도일까 아닐까?

퀴즈 하나 더.

강산이는 ‘짜장’이야, ‘짬뽕’이야?

아 그것이 아니고.

‘과정’이야, ‘결과’야?

누나가 귀가를 하니 집안 공기가 무거워.

유주가 열이 좀 나면서 온몸이 쑤신다는 거야.

오후 4시가 다 되어 들어갔는데, 그 시간까지 부녀 점심도 안 먹었다 하고, 속이 터지지 않겠어?

부랴부랴 유주 손발을 주물렀어.

말도 잘하고 컨디션은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더라고.

전날 저녁에 무슨 댄스 퍼포먼스 연습한다며 거실에서 혼자 앞돌기를 그냥 사정없이 해대더니 피곤하셨나 봐.

5시가 넘어가는 데 또 잠이 들더라고.

원래는 저녁 외식할 공산이었는데, 공주가 자니 나갈 수가 없잖아.

그때부터 꼬인 거야.

일요일이 형 생일이었거든.

내 계획은 저녁 나가서 먹고 케이크를 본인 원하는 놈으로 직접 사 줄 생각이었어.

그런데, 다 망한 거야.

형 입장에서야 나가지도 못했고, 아침 밥상도 못 받았고, 케이크 촛불도 못 붙였고….

변명하자면 누나 낮 동안 교회도 못 가고 유주 살폈거든.

오후에는 욕조에 물 받아 아이 목욕시키고.

점심 먹고 나니까 유주가 아빠 미역국을 끓여 보겠다는 거지.

얼마나 기특해.

손이 빠른 공주가 얼른 백종원 레시피를 검색하더니 마늘과 미역, 소고기를 볶아서 국을 끓인 거야.

간 보라고 몇 번을 불러대는지 아주 내가 한 냄비 다 먹는 줄 알았다니까.

열심히 끓였어.

그런데 그걸 졸이려고 했는지 이 녀석이 누나도 모르게 가스불을 켜뒀던 거야.

어느 순간 탄내가 나서 보니까 공들여 끓인 미역국이 저 세상으로.

버렸지.

저녁 식탁에 미역국 올랐겠어?

유주 할머니가 119마냥 급파되어 미역국 끓이고 갈비 굽고 하여 저녁상을 마련했지만 형 마음에는 차지 않았던 것이었으니.

“아빠 아니라도 누구에게든 해주고 싶으면 열심히 연습을 해. 그다음에 하는 거야.

선물? 배송이 늦는다 싶으면 차선책을 찾아야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아픈 애가 끓여 보려고 한 시도가 중요한 거 아닌가? 실패했다고이게 혼날 일인가?’

결과주의자와 살기 힘듦이로세.

보다 못한 내가 말했어.

“유주 미역국 2시간 넘게 열심히 끓였어. 그게 막판에 타는 바람에 식탁에는 못 올렸지만.

당신 노래 부르던 마스크팩도 유주가 주문했는데….

배송이 이렇게까지 늦어질 줄 알았나 뭐.”

한 마디로 깔끔하게 종결.

“핑계 대지 마.”

강산아, 누나 맨날 분주하고 바쁜데 왜 이렇게 실적, 결과 뭐 이런 측면에서 맥없이 가난한 거니?

이제는 내면적으로나 외면적으로나 좀 부유하게 살아도 될 나이이거늘.

주변에 보면 포장, 과장, 생색, 선전에 능한 사람들 있던데….

결과에 집중해 볼게.

이 나라, ‘법’도 결과가 우선이잖니.

‘과정’이 다 무슨 소용이라고.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그 누가 외쳤느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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