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es”, mom

by 밀도


“엄마, 내 얘기 끝날 때까지 화내면 안 돼.

그러니까 태권도 품새 대회가 단체전이 있고 개인전이 있잖아.”

“시끄러워. 대회는 무슨 대회야.

너 지금 중학생이야.

초등 때 그만큼 했으면 됐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어.

너 운동하고 싶다 해서 학원 공부 시간 쪼개가며 도장 가는 것도 엄마 마음에 안 들어 죽겠는데…. 나 지금 최선을 다 해서 너 존중하고 있어.

그 대회가 너한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왜 의미가 없어? 난 나가고 싶단 말이야.

그날 다른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왜 엄마 마음대로 판단하는데?”

“됐어. 엄마 처음부터 대회 같은 거 안 된다고 얘기했다.

태권도는 못 가는 날이 더 많으면서 무슨 소리 하고 있어.

엄마 이제 독서 토론 해야 돼. 끊어.”

할머니 집에 가서 소녀 펑펑 울고 한바탕 성토를 했나 봐.

할머니 전화하셔서는

“왜 안 해주고 그러냐, 해줘라, 저렇게 울고 원하는데 그냥 해주면 돼지, 유주도 스트레스 풀 곳 있어야 하지 않겠냐…”

“유주 안 해 준 게 뭐가 있다고 엄마 그러는데? 내가 알아서 한다고.”

고요히 마음을 가다듬고 독서 토론을 준비해도 모자랄, 시작 2초 전에 이게 무슨 난리굿이라니?

나 ‘집사’인데, 머리 깎고 절로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한 다음 흩어져 버린 정신 챙겨서 목소리를 가다듬고 부랴부랴 보이스톡 방에 들어갔어.

이미 토론은 진행되고 있었지.

오늘의 도서는 김승섭 작가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

질병이나 재난을 사회적 관점으로 연구하고 역학 규명하는 내용인데,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래.

책을 읽으면서 누나 머릿속에 남은 문구는 ‟너희들 고통을 증명하라고 말하는 사회„였어.

«답답한 마음에 ‘부모님이 원하는 게 면제나 특혜를 달라는 게 아니잖아요. 트라우마는 짧은 시간 검사하는 것만으로 놓치는 게 있으니까 좀 더 주의를 기울여 정확하게 신체검사를 하도록 조치해 달라는 말은 하실 수 있잖아요’라고 부모들에게 이야기했다. 돌아오는 답은 ‘경험상 내가 그 말을 하면 내일 언론에 나온다’였다. 그 정도 말도 특혜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도된다는 뜻이었다.

“어떤 공동체에서 우리가 건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개인이 맞닥뜨린 위기에 함께 대응하는 공동체, 타인의 슬픔에 깊게 공감하고 행동하는 공동체의 힘이 얼마나 거대하고 또 중요한지에 대해서요. 당신에게도 그리고 저 자신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당신과 나, 우리의 공동체는 안녕하신지요?”

곰곰이 생각하다가 ‘어린 시절 특별히 정의롭지도 또 용감하지도 않던 내가 어쩌다가 지금처럼 사람에 대한 꿈을 꾸고 이렇게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마도 제가 했던 활동들이 제게는 마치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 같은 것들이기 때문 아닌가 싶어요. 예를 들면, 의과대학 본과 1학년 겨울방학 때, 산업재해를 당한 분들이 모인 사무실에서 한 달 동안 자원상근을 한 적이 있는데요. 어느 날 저녁에, 제가 기타를 치면서 함께 여러 노래를 부르다가 기타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려고 주변 사람을 둘러봤을 때, 손가락 열 개가 온전히 있는 사람이 저 하나뿐이었어요. 그때 느꼈던 묘한 낯섦 간은 거요. 또, 고무장갑을 돌돌 말아 만든 큐대로 양손 합쳐 단 두 개뿐인 손가락으로 당구 150을 치며 아무리 쳐도 50을 넘기지 못하는 저를 놀리던 순간 느끼던 그 경쾌함이나, 밤새 민주노총 신문방송 작업을 하고서 모두가 피곤에 곯아떨어져 있을 때 산업재해를 당한 후 유일한 직업이 되어 버린 우유배달을 하러 가야 한다고 아무 말 없이 오토바이를 끌고 새벽에 나가던 그 뒷모습에서 느꼈던 삶의 끈질긴 생명력 같은 거요.»

〖아픔이 길이 되려면/김승섭/동아시아〗

전반적으로 짠했어.

‘삶의 끈질긴 생명력’

숙연한 기분이 됐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아는 인간, 타인의 인권을 지켜줄 줄 아는 사람이면 이 사회가 조금은 덜 각박할 수 있을 텐데….

어린이집 학대 뉴스가 끊이지 않아.

자기 보호가 안 되는 연약한 생명체에게 무자비하게 자행하는 폭행.

자기보다 약한 대상에게 거침없이 화풀이하는 잔혹한 속성.

어차피 혼자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라면 서로 긍정적인 영향 끼치는 것이 윈윈 아니겠어?

누나는 그래서 문학이 좋아.

픽션 혹은 논픽션 속에서 인간을 탐구하는 일련의 감흥이 매번 벅차고 흥미롭거든.

미울 수 있지.

살다 보면 때로 증오도 느껴져.

그렇다고 진짜 주먹으로 상대를 해하는 것은 해답이 될 수 없으니까.

우리 사는 궁극적 목적은 결국 ‘행복’ 일 거잖아.

그리하여 누나는 깔끔하게 입금을 했나니.

소녀 그토록 품새 대회를 나가고 싶으시다면, 암만 나가야지.

며칠 전에 주문하신 나이키 검정 티셔츠를 두 개 사들고 퇴근한 참이었어.

하나밖에 없는 따님 원하시는데, 여부가 있겠습니까?

토론을 마치고 보니 카톡에 장문의 메시지가 와 있는 거야.

“엄마, 내가 갑자기 대회 얘기 해서 당황했지? 미안해.”

‘당황할 일은 아닌데요.’

“엄마 나는 이 대회 꼭 나가고 싶어. 처음 대회 나갔을 때 기억나?

엄마랑 이모랑 왔었잖아.

내가 죽도록 연습해서 메달 따고 하는 것이 나를 성장시켰다고 생각해.”

‘품새대회 응원 간 엄마랑 할머니 왜 왔냐며 가라고 폐악을 부릴 때는 언제고. 어이없으심.’

“엄마랑 한 약속도 안 지켜 놓고 미안해. 이번만 나 이해해 주면 안 될까?

나 집에서는 휴대폰 안 보고 책 읽을게.”

‘딱 보니까 이미 신청하셨네. 그러니까 선 신청, 후 허락이라.’

“엄마는 유주 위해서 돈 벌어. 7만 원 아니라 700만 원도 안 아까워.

그런데 너 순서가 틀렸잖아.

엄마가 이번에 유주 얘기 들어주는 이유는, 첫째 니가 간절하다니까.

둘째 니가 사범님과 한 약속이니까 지킬 수 있게 해주고 싶어서.

엄마 입금 완료했으니, 기분 좋게 대회 나가서 기량 뽐내고 와.”

월요일, 하루가 무슨 라푼젤 머리카락마냥 길고 기나니.

강산이, 아까 누나 전화로 소리 꽥꽥 지르다가 우아한 척 토론하는 꼴이 좀 웃겼다고?

그래그래. 많이 웃어라.

웃으면 복이 온다는데, 이모로나 저모로나 강산이 웃겼으면 누나의 전쟁 같은 오늘도 성공이로세.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결과로 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