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밀도 Sep 23. 2024

뻔한 사람은 매력이 없어

여름이 퍽이나 사납습니다. 독자님들은 이 더위를 어떻게 이겨내고 계신가요?

저는 짧은 방학 활용하여 짬짬이 출근하면서 알뜰하게 보고 싶었던 사람들과의 시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지방에 거주하는 관계로 평소 여유 있게 만나지 못했던 수도권 친구, 선·후배, 인생 멘토 참우리 언니까지 날마다 반가운 약속과 만남의 축제네요.

딱딱한 공적 모임과는 다르게 소수정예 서로의 흉허물을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지극히 사적인 사람 사이 대화는 그야말로 치유라서.

제게는 참 소중한 인연이 많습니다.

생각해 보면 인간의 행복 조건에 ‘관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제법 크지 않나 싶어요.

성향에 따라 관계지향적인 유형이 있고 목표 지향적인 사람이 있잖아요.

저는 극단적으로 관계지향적인 인간인지라 살면서 이렇다 할 목표를 달성하거나 성과를 낸 것이 없습니다. 이력서로 치자면 쓸 게 별로 없어서 작아지고 마는….

유일하게 흥미와 욕심을 가지고 하는 활동이 쓰기인데, 이력서에 쓰자면 그것도 한 두 줄에 지나지 않잖아요.

주변에 보면 이력이 무척 화려한 이들이 있습니다.

‘나’를 어필하는 능력, 너무너무 중요한 시대인데….

 오늘은 열일곱 살,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무려 30년 전에 맺어진 언니와의 인연을 소개 아니 자랑하려고 합니다.

저는 서울맹학교 중, 고등부를 졸업했어요. 고1이 되니 진로를 정해야 했고, 당시에는 임문반이 없었으므로 꼼짝없이 대입 준비를 일과 외 시간 보충 수업으로 메워야 했지요.

아시는 독자님도 계시겠지만 그 시절 ‘참우리’라는 대학 동아리에서 맹학생들 학습 봉사를 나왔었어요.

학생 셋에 선생님 한 명으로 한 팀이 구성되어 국어, 수학, 영어 수업이 배정되었습니다.

언니는 국어 담당이었어요. 이화여대 새내기 선생님은 우리가 수능 시험을 치를 때까지 목이 쉬도록 문제지를 읽어 녹음해 주었고, 함께 떡볶이를 먹었으며, 노래방에 자주 갔습니다. 팝송 부르는 언니가 멋져 보였고, 언니 인맥으로 우리 수업이 근근이 이어졌어요.

대부분 2~3학년이 되면 대학생들도 바빠지고 취업 준비하랴 공부하랴 봉사활동이 뜸해지기 마련인데, 언니는 문제지 녹음하면서 근사한 음악에 시도 낭송해 주었답니다.

언니 덕에 대학 진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대학 다닐 때에는 사회인이 된 언니랑 영화며 연극을 보러 다녔어요.

언니 결혼식 때 여성 주례 선생님을 처음 봤고, 치열하게 맞벌이하던 언니가 출산을 하면서 결국 일을 내려놓게 되는 일련의 과정이 제자이자 동생으로서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언니가 워킹맘으로 고군분투하는 동안 저도 취업하고 결혼을 했어요.

객관적으로 사회적 성공 모델인 언니는 육아나 부부 문제에 있어 한결같이 훌륭한 조언자였습니다.

심플하게 쓴소리도 마다 하지 않는 인생 멘토를 1년 반 만에 만났어요.

고등학생 시절 같은 조로 묶여서 공부했던 동창까지 셋이 마주 앉은 것은 몇 년 만인지 기억도 가물거렸습니다.

전공과는 관계없이 중국 문학 전문 번역가가 된 언니는 두 아이를 완벽하게 뒷바라지하면서도 프리랜서로서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고 있습니다.

아내요, 엄마로 살기도 빠듯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언니는 한 사회인으로서의 고유한 영역을 꿋꿋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구축해 가는 거예요.

“밀도, 몸은 어때?”

“그럭저럭 괜찮은데, 퇴근하면 우선 자야 돼요. 왜 그렇게 만사가 귀찮은지 모르겠어요.”

“새로운 도전을 해 보면 어떨까?”

요가에 필라에 아주 부지런하고 스타일리쉬한 동창이 거듭니다.

“운동 한 번 해봐. 진짜 좋다니까. ”

“난 솔직히 엄두가 안 나.”

“해보고 말을 해. 해봐야 알 수 있지.”

“PT 말고 뭐 없을까?”

“넌 너무 정적이야.”

조직에서 벗어나 작은북마사지 카페 조용하게 운영하면서 살고 싶다는 내게 언니가 말합니다.

“그렇게 살면 네 글의 소재가 좁아지지 않을까? 뻔한 사람은 매력이 없어. 유주 눈에 비친 엄마, 남편에게도 자기 관리하는 아내여야 좋은 관계 유지할 수 있지. 남녀노소를 떠나 자기계발은 꼭 필요해. ”

변명의 여지가 없더라고요.

최근 몇 년 간 피곤하다는 핑계로 제가 남편과 딸에게 가장 많이 보여중 모습은 늘 아무렇게나 누워 있거나 자는 것이었습니다.

아‘, 이제 더는 안 되겠구나. 각성하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렀구나.’

퇴근 후 뭐라도 루틴을 만들어 봐야겠는데, 딱히 구미가 동하지 않습니다.

매력적인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쑥과 마늘이라도 먹어야 하는지, 이거 참 큰일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행복, 성적순은 아니지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